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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공정식의 덫과 윤시아의 이중 계산

공간의 연금술사: 망해가는 카페를 살리는 4D 설계

by 잇쭌
적의 전략은 눈에 보이는 가격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부동산이라는 거대한 덫이었습니다. 컴온커피 본부장은 폐업 예정지를 사냥하는 '공간 포식자'였고, 저는 이제 빚을 갚는 것을 넘어 이 거대한 시스템에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더욱 불안한 것은, 제 파트너가 그 사냥꾼의 곁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냉철한 데이터 속에서, 그녀의 진짜 목적을 찾아야 했습니다.



1. 프랜차이즈의 숨겨진 전략: 부동산 먹이사슬


이든은 윤시아에게 공정식 본부장의 이름이 투자 법인 주주 명단에 올라 있는 스크린샷을 보냈다. 메시지는 짧고 단호했다.



"이게 당신이 말한 '현실'입니까? 경쟁이 아니라 상권 강탈이군요."



답장은 즉각적으로 왔다. 놀랍게도 윤시아는 놀라지 않았다.


"강이든 씨, 그건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저희는 그들의 전략을 '도미노 리플레이스먼트(Domino Replacement)'라고 불렀죠. 한 상권의 '폐업 예정 후보지'를 찾아낸 뒤, 그 매장이 문을 닫도록 가격 공세를 퍼붓습니다. 매장이 정리되면, 본사가 임차인으로 직접 들어가는 대신 우호적인 투자 법인을 통해 건물 전체를 장악하는 겁니다."



"왜요? 단순히 매장 하나를 늘리려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윤시아의 설명은 차가웠다. "매장 하나가 아닙니다. 그들은 '앵커 테넌트(Anchor Tenant)' 전략을 씁니다. 가장 목 좋은 자리에 저희 브랜드를 꽂아 넣어 주변 상가의 가치를 올리죠. 그리고 몇 년 후, 그 상권을 통째로 매각하거나 대형 임차인에게 넘겨 막대한 차익을 남깁니다. 당신 아버지의 카페는 그 도미노의 첫 번째 조각이었을 뿐입니다."


이든은 자본의 거대함 앞에 절망을 느꼈다. 상대는 단순한 장사꾼이 아니었다. 상권을 설계하고 해체하는 금융 엔지니어였다. 윤시아는 그들의 전략을 너무나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윤시아 씨, 당신이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왜 그만두었습니까? 그리고 왜 저를 돕는 거죠?"



윤시아의 메시지는 평소보다 길었다. "제 목적은 당신이 알 필요 없습니다. 다만, 저는 '수익 없는 저가 공세'가 결국 시장 전체를 망가뜨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정식 본부장이 만드는 그 시스템은 '가치'를 파괴하는 시스템입니다. 당신은 지금 그 시스템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있어요. 당신의 '가치 경쟁'이 성공할 수 있는지, 제 데이터로 확인하고 싶을 뿐입니다."




2. 낡은 메뉴판, 새로운 가치로 채우다



윤시아의 조언을 받은 이든은 리모델링의 마지막 단계인 '메뉴 리포지셔닝(Menu Repositioning)'에 들어갔다. 그의 목표는 Zone B의 '포커스 패스' 고객들이 추가 소비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아빠, 이제부터 아메리카노 가격은 5,000원으로 올립니다."



강현수는 뒷목을 잡았다. "미쳤니? 옆집은 1,500원인데 5,000원이라니! 누가 와서 마시겠니?"



"오피스 상권의 고객은 점심시간이 12시부터 1시까지 정해져 있어요. 이 짧은 시간에 줄 서서 1,500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것과, 5,000원을 내고 30분간 방해받지 않고 업무 효율을 높이는 것 중 무엇이 더 가치 있을까요? 우리는 시간 대비 효율을 파는 겁니다."



이든은 메뉴판을 완전히 바꿨다.


Zone A (테이크아웃): 아메리카노 4,000원. (기본 가격 방어)


Zone B (포커스 랩): '집중력 증진 콤보' 메뉴를 개발. 4,500원짜리 커피 대신, 16,000원짜리 '포커스 패스 세트'를 주력 상품으로 내세웠다. 세트에는 브레인 푸드(고단백 에너지 바, 견과류)와 3시간 공간 이용권이 포함되었다.


Zone C (소셜): 간단한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추가하여 점심 시간대의 객단가를 10,000원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이든은 메뉴 이름마저 바꿨다. 아메리카노 대신 '클래식 아키텍트(Classic Architect)', 라떼 대신 '디자인 스케치(Design Sketch)' 등 자신의 건축 철학을 녹여 '가치'에 대한 고객의 심리적 저항을 낮추었다.




3. 오픈 첫날: '예쁜 쓰레기'의 첫 시험대



드디어 리모델링이 완료되고 새로운 간판이 걸렸다. '포커스 랩 (Focus Lab)'.


오픈 당일, 컴온커피 점주가 1층에서 비웃듯 지켜보고 있었다. "저 가격에 저렇게 삭막한 공간이라니. 일주일 안에 백기 들겠구만."


오전 8시. 출근 전쟁이 시작되었다. 예상대로 대부분의 고객은 1층 컴온커피의 1,500원짜리 커피 줄에 섰다. '포커스 랩'의 2층 문은 고요했다. 아버지 강현수는 초조함에 손을 비볐다.



"이든아, 이럴 줄 알았어. 아무도 안 오잖아! 이 비싼 인테리어가 다 무슨 소용이야!"



이든은 침착했다. "기다리세요, 아빠. 우리의 고객은 8시에 오지 않습니다. 우리의 고객은 '일이 터졌을 때' 옵니다."


오전 10시 30분. 오피스 타운이 가장 바쁘게 돌아가는 시간. 그때, 30대 후반의 직장인 한 명이 급하게 2층으로 올라왔다. 그의 표정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 노트북을 든 그는 곧바로 Zone B의 1인 스탠딩 바로 향했다.

그는 카운터에서 망설임 없이 '포커스 패스 세트(16,000원)'를 주문했다.



"죄송하지만, 혹시 지금 바로 프린트도 가능할까요? 미팅 자료가 급한데…."



이든은 미소를 지었다. Zone B 옆에는 작게 '프린트 & 스캔 서비스(유료)'가 마련되어 있었다.



"물론입니다. 저희는 건축 스튜디오의 테스트 공간입니다. 업무 지원은 완벽합니다."



그 직장인은 안도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에게 16,000원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당장 급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시간과 환경', 그것이 바로 가격 이상의 가치였다.


그 고객이 좌석에 앉자마자, 한 명, 두 명, 초조한 표정의 다른 직장인들이 2층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1층의 컴온커피가 아닌, '방해받지 않는 집중의 공간'을 찾아 헤매던 이들이었다.


오후 2시. 윤시아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윤시아]: 오늘 Zone B, 1일 목표 고객 수 50% 달성. 평균 객단가 17,500원 기록. 당신의 가설이 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입니다. 오피스 외의 다른 상권 공략이 남아 있습니다.


이든은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공정식의 덫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이든은 자신의 '공간의 연금술'이 거대한 자본 시스템에 균열을 낼 수 있음을 증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5화에서 계속......




경영 인사이트: '가치 소비'의 명명(命名) 전략


� 논리적 진단: '메뉴 리포지셔닝(Menu Repositioning)'은 단순히 가격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마케팅 행위입니다. 강이든은 아메리카노를 '클래식 아키텍트'라 명명함으로써, 5,000원이라는 가격을 '프리미엄한 경험의 일부'로 인식하게 만들었습니다.


� 따뜻한 제언: 메뉴판은 단순한 가격 목록이 아니라, 당신의 철학과 가치를 전달하는 매개체입니다. 당신의 공간이 제공하는 '차별화된 기능(집중, 휴식, 사교)'을 메뉴 이름이나 설명에 녹여내십시오. 이는 고객이 가격을 비교하는 대신, '가치'를 소비하게 만드는 가장 섬세하고 강력한 심리 전략입니다.


✨ 핵심 전략: 프랜차이즈는 상품을 팔지만, 독립점은 '솔루션'을 팔아야 합니다. (예: 집중력 증진 콤보, 힐링 브런치 세트 등). 고객의 특정 문제(업무 효율, 피로 해소 등)를 해결해 주는 솔루션으로 메뉴를 포장할 때, 당신의 카페는 가격 경쟁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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