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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민 Jul 23. 2021

원하는 곳을 이동하며 일한다는 것

노마드워크 프로젝트 실험기

"원하는 곳을 이동하면서 자유롭게 일하기, 가능할까?"



이런 생각을 처음 하기 시작한 건 바야흐로 4년 전, 그러니까 2017년 즈음이었을 것이다. 당시 우리(혜민 & 백구)는 900KM(구백킬로미터)라는 이름으로 하고 싶은 일의 방향성을 찾고 있었다. 바로 전년도에 둘 다 퇴사를 하고 결혼식 대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돌아와 부부가 되었고, '조금 다른 방식도 가능하구나'라는 것을 몸소 경험한 뒤였다. 



결혼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 삶의 방식 전반에 있어서 조금 다른 선택지들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다름아닌 '그 선택지를 탐구하는 일'을 우리의 '일'로 삼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바로 '요즘 것들의 사생활' 채널이자 인터뷰 프로젝트였다. 조금은 다른 관점과 방식으로 자신들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있는 우리 또래의 '요즘 것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영상과 책으로 제작하면서 그 이야기를 통해 우리 스스로도 힌트를 얻고 싶었다.


첫 프로젝트를 시작한 뒤로 우리는 매주 주말마다 전국을 누볐다. 그때는 차도 없어서 공유자동차나 가족의 차를 빌려 촬영 장비를 싣고 만나고 싶은 인터뷰이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서울, 경기, 강원, 충청, 제주까지. 이런 우리의 일상을 아는 이들의 반응은 정확히 두 가지로 갈렸다. "주말까지 일하느라 고생이 많다"는 반응과 "주말마다 여행다니고 좋겠네"라는 반응.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조금 모호했다. 그 여정은 생활반경을 벗어나 환기를 할 수 있는 쉼이기도 하면서, 우리가 우리 방식으로 먹고살기 위해 시도하는 진짜 '일'이기도 했고, 우리 스스로의 삶의 방향을 찾는 탐구의 과정이기도 했으니까. 실제로 매주 만나는 '요즘 것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상상력을 확장시켜주었다. 아파트가 아닌 오래된 집을 직접 고쳐 사는 분들, 30대에 탈서울을 꿈꾸며 유럽여행에서 삶의 레퍼런스를 찾은 분들, 4년 넘게 집 없이 여행하며 먹고사는 분들을 만나고 오면 자꾸만 가슴 속에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아마도 그건 어떤 가능성에 대한 어렴풋한 확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 날 인터뷰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런 말이 툭 튀어나왔다. 


"우리가 하는 일도 여행하면서 할 수 있지 않을까?" 


산티아고 순례길과 유럽 여행을 몇개월씩 다녀오면서도 그 전까지 '여행하는 삶'이란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서의 일상을 다 정리하고 여행하며 떠도는 삶을 떠올렸기에 우리가 하기에는 너무나 큰 결심이 필요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여행'과 '일'을 합쳐서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주말마다 전국을 누비는 출장도 우리에겐 여행이자 일이었고, 어쩌면 기획일이나 출판사 업무도 인터넷만 된다면 어디서든 가능할 것 같았다. 지금이야 이런 이야기가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디지털노마드'라는 개념도 무척 생소하던 때였기에 이런 생각이 전환이 우리에겐 꽤 설레는 발견처럼 느껴졌다. 처음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결혼행진을 하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던 때처럼 눈이 번쩍였다. 그때부터 우리는 수시로 다양한 상상을 더해갔다. 전세계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프로젝트부터, '여행하는 출판사' 같은 모델도 구상했다. 그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마도 이것이 '노마드워크 프로젝트'의 시초였을 것이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당장 우리가 만든 '일'은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해주지 못했고, 백구는 '우리의 일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만' 다닐 생각으로 다시 들어간 회사를 계속 다녀야 했다. 우리가 원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의 일이 여러 면에서 안정 궤도에 접어들어야만 했으므로 할 일은 점점 더 많아졌다. 콘텐츠 기획과 제작을 쉬지 않고 계속 하면서도, 외부에서 협업을 요청하면 입지를 다진다는 마음으로 뭐든 크게 가리지 않고 했다. 물론 우리가 가진 질문에 답을 찾아나가며 새로운 자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할 때는 설레고 신났지만, 그렇다고 콘텐츠로 만들어내는 모든 과정이 괴롭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단지 그 고통을 견딜 만큼 우린 그 일이 좋았고, 언젠가는 이 일만으로도 먹고살 날을 꿈꾸며 '존버'의 시간을 버텼다. 지독한 짝사랑이랄까.

900KM 작업실


그렇게 4년이 후루룩 흘렀다. 어느새 채널에는 2만 여명의 구독자가 생겼고, 작은 작업실도 생겼다. 인터뷰이들을 이곳으로 초대해 인터뷰를 하는 시스템을 만들었고, 이제 인터뷰를 하러 멀리까지 찾아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어느새 우리의 생활반경은 아주 좁아졌다. 한동안 집과 작업실을 오가며 일했다. 이 일이 끝나면 또 저 일이 있었기 때문에 여행은 생각도 못했다. 우리가 벌여놓은 일이라 누구 탓도 할 수 없었다. 백구씨는 회사를 퇴근하고 나면 다시 집으로 출근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해가 뜨고 지는 줄도 모르고 편집에 편집을 이어가다 보면 여기가 집이 아니라 가내수공업 공장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던 여행은 코로나가 터지며 아예 먼 얘기가 되어버렸다. 조금 다른 삶을 이야기하는 콘텐츠를 만들면서도, 정작 우리는 꿈꾸던 삶의 방향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임계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왔다. 몇몇 케이스를 거치며 900KM가 우리의 어엿한 생계 기반이 되려면, 멤버 한 명이 반 발만 걸친 지금의 상태로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는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백구씨 또한 처음에는 흥미를 가지며 병행하던 회사일이 점점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업친데 덥친 격으로 사내 구조에 대한 회의감에 나날이 한숨만 늘어갔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말이 둘의 목구멍에 가득 차올라 있었다.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퇴사할래?"


백구씨의 회사는 복지가 꽤 좋은 편에 속했고, 야근도 거의 없었다. 올해는 연봉까지 오른 상태였다. 매달 꼬박 꼬박 들어오는 일정한 수입, 신용 대출을 무난히 받을 수 있는 신분이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꽤 큰 사회적 안전망으로 작용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덕분에 한 편에서 900KM가 돈이 되든 안되든 계속 해나갈 수 있었던 것도 분명하다. 이 상태를 유지한다면 이 정도 버짓에서 적당히 하고 싶은 콘텐츠도 만들고 안온한 삶을 꽤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안정감에 젖어들 수록 우리가 원하는 삶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은 확실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월급이 주는 안정감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가 진정 꿈꾸는 우리만의 '안정 궤도'는 절대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다시 한 번 도전을 감행해야 함을 직감했다. 어떤 믿는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 선택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는 계기는 되어주리라. 그렇게 백구씨의 퇴사가 결정되었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까




일에 매몰되어 있을 때, 여행은 늘 갈망이었다. 옛날 여행 사진을 꺼내보며 과거의 좋았던 순간들을 허우적대다가, 문득 그렇지 않은 현실을 직시하면 가슴이 답답해졌다. 지금 나를 이곳에 붙잡아두는 게 그토록 내가 좋아하는 일인 것만 같았고, 자꾸만 일이 미워졌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고 있어"


그러다 불씨를 당기는 일이 생겼다. 외주 경쟁 피티에서 고배를 마신 것이다. 처음 기업에서 우리 채널의 영상을 보고 비슷한 콘텐츠를 만드는 프로젝트에 용역을 맡는 피티 제안을 해왔을 때, 지금까지 해온 일에 비해 등치가 좀 큰 일이어서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일의 성격이 우리가 하고 있는 일과도 결에 맞았고, 그 일을 계기로 등치를 키우면 또 새로운 기회들이 만들어질 것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민 끝에 용기를 냈다. 이왕 하기로 했으니 잘 하고 싶었고, (원래 예정되어있긴 했지만) 백구씨의 퇴사일정을 이 피티 일정에 맞추어 당겼다. 두 번의 제안서 작업으로 몇주간 밤을 새며 몸과 마음은 갈아넣었고, 그 일을 위해 심지어 우린 몇가지를 포기하기까지 했다. 같은 시기에 진행되는 지원사업을 포기했고, 원래 예정되어 있던 모든 계획들도 피티 결과가 나올 때까지 유보해야 했다. 


그러나 얼마 뒤, 마음 조리는 시간이 지나고 받아든 결과는, 허무하게도 낙방이었다. 아쉽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만약 그 일을 시작했다면 우리는 함께 일할 동료를 채용해야했고, 장비를 새로 세팅해야했으며, '요즘 것들의 사생활' 채널은 한동안 운영이 불가능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우습게도 한 순간에 그 모든 고민들을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물론 생계에 대한 고민은 다시 시작됐지만, 이상하게 우리의 낯빛에는 다시 생기가 돌고 있었다. 갑자기 생겨버린 빈 시간이 설렘으로 다가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주일을 보내고, 문득 몇년 전 뱉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 이 참에 디지털 노마드 실험 해볼까?" 

"근데 코로나 때문에 어디 갈 수도 없잖아."

"해외로는 못가지만, 국내에서 실험해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면 되잖아."


그렇게 한 달간 머무는 공간을 이동해보며 일해보는 실험 '노마드워크 프로젝트'에 대한 기획이 시작되었다. 





노마드워크 프로젝트의 시작 

https://youtu.be/JFaHueUMRTQ


노마드워크 프로젝트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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