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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노래 Aug 31. 2023

꿈같은 네덜란드 여행 #2
(힘스테데 우리 집)

#6인 숙소 찾기 #근교의 매력

6인이 머물기에 적당한 집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화장실은 적어도 두 개 이상이 있어야 하고, 방도 세 개 이상,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주방과 함께 담소를 나누거나 여행에 관한 회의할 수 있는 거실 공간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렌트 비용도 우리의 예산에 맞게 들어와야 한다.

네덜란드는 북유럽 가까이에 있어 그런지 북유럽에 맞먹는 물가였다.

무엇보다 암스테르담 시내에 있는 호텔이나 아파트들은 하나같이 비쌌다.

6인이 머물 수 있는 호텔은 아예 없어서 룸을 두 개 빌리려면 가격이 어마어마했고, 시내에 있는 아파트는 화장실 두 개 조건으로 검색하면 대개 1박에 6~70만 원이 넘었다.

그러다 에어비앤비에서 힘스테데(Heemstede)에 위치한 아름다운 집을 발견했다. 렌트비도 생각보다 저렴했다. 집주인이 소개한 글을 보니 힘스테데란 곳은 암스테르담 근교 같았다.

힘스테데 기차역에서 도보 5분 이내라는 힌트를 보고 구글맵에 힘스테데 기차역을 검색해 보았다.

스키폴 공항에서 기차로 20분 이내의 거리였고 암스테르담 중앙역과도 20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오호.. 이거야!'

대도시 근교의 매력이 넘쳐나는 곳 같았다.

아름다운 자연 속의 넓은 저택에 방은 무려 네 개, 1층엔 벽난로가 있는 거실과 화장실, 주방과 분리된 멋진 다이닝룸이 있었고, 2층과 3층엔 방과 화장실이 두 개씩 있었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숙소비 등을 다 갖춘 곳이었다.

나되사 회의 공간인 패들렛에 링크를 올리고 회장인 지니에게 나중에 취소할 때 하더라도 먼저 예약부터 잡아두자고 했다.

워낙 후기가 좋은 곳이라 조바심이 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여행 5개월 전에 숙소 예약과 항공 예약을 마쳤다.

현관 앞엔 수국이 만발했고 기울어진 나무도 아주 멋스러웠다.

아침과 저녁식사는 집밥으로!

힘스테데 집에서 머문 날은 열흘이었지만 나되사 멤버 전원이 함께 지낸 날은 날은 일주일 남짓이었다.

세 명씩 교대로 2박 3일 일정으로 다른 도시 여행을 하고 왔기 때문이다.

두 도시 여행 이야기는 따로 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어쨌든 각자 조금씩 챙겨 온 재료들을 주방에 모으니 한식 재료 양이 꽤 되었다.

제니는 된장과 참기름 그리고 찹쌀(!)을 꺼냈다.

유럽의 쌀은 대부분 안남미 종류이기 때문에 찹쌀을 섞으면 밥맛이 조금이나마 나을 것이라는 혜안이었다.

유희는 숭늉 가루와 멸치를, 지나는 볶음 고추장을, 세렌은 코인 육수를, 지니는 볶음김치와 참치 통조림을 꺼냈고 나는 마른미역, 곱창김과 누룽지를 꺼냈다. 아, 그리고 비장의 보리차까지..

회원 공통 준비물은 햇반 2개와 라면 1개였다.

모아놓으니 그 양도 양이지만 다양한 식재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

젊을 땐 햄버거로 끼니를 때워도 괜찮았고, 국물 없이 며칠을 버텨도 괜찮았지만, 나이 들수록 DNA에 저장되고 기록된 음식과 멀어지면 즐거운 여행도 곧 지치고 우울해진다.

동네 마트에서 장 봐온 과일, 특히 납작 복숭아와 호밀빵, 요거트와 그래놀라 이외에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화려한 샐러드와 국과 밥, 마른 멸치와 고추장, 누룽지와 숭늉까지가 기본 메뉴였다.

그리고 그날 그날 메인 요리가 있어 날마다 집밥 두 끼를 아주 잘 먹었다.


우리는 매일 이른 저녁에 귀가했다.

하루 종일 여행객으로 다니기보다 예쁜 동네의 예쁜 집에서 살아보는 시간도 소중했기 때문이다.

누구는 마트에 가고 누구는 산책을 나가고 누구는 휴식을 취했다.

한 시간쯤 그렇게 시간을 보낸 뒤 다이닝룸에 모여 두 명씩 세 팀으로 카드 게임을 했는데 이는 곧 우리의 루틴이 되었다.

3등 팀은 식사 담당, 2등은 설거지와 식세기 돌리기, 1등 팀은 식세기에 있는 그릇 정리를 걸고 눈에 불을 켜고 게임을 했다.

밖에서 먹는 점심도 나중에는 회비를 제쳐두고 2:3:5의 게임비로 계산했다.

나는 이틀 동안 네 번의 게임에서 세끼의 식사 준비를 해야 했는데.. 맨 날 카드 게임에서 꼴등을 했다는 거다.

자꾸 꼴찌팀만 되는 똥손인 나를 걱정해서 식사당번을 자처해 준 제니의 계란(그라)탕과 수제짜장 라면은 말 그대로 백미 중의 백미였다.

당근 라페, 계란말이, 홍합라면, 홍합 미역국, 수제 짜장 라면, 계란(그라)탕과 큐브 스테이크, 미역 된장국 등.. 매일 저녁 만찬 같았던 식사 덕분에 이번 여행은 영혼마저 살 찌워지는 느낌이었으니 육체는 얼마나 즐거웠겠는가.

침대에 누우면 바로 곯아떨어져버린 이유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광란의 훈민정음 딱지놀이

방금 지나가 ‘식당에서 주문받으시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부르셨잖아요!

어느 날 저녁엔 영어 사용하면 벌점 1점을 받는 훈민정음 카드게임을 했다.

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라 온 촉각을 곤두세워 영어를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자, 와우! 는 안 돼요. 근데 우와! 는 우리말이죠~

오우! 는 안 되는 거 아시져?

오호! 는 되죠?

하하하하하.....


(1등이 카드를 돌릴 때..) 좋은 카드로 좀 줘요~ (벌점 1점!)

오? 카드으? 카드으?

(카드 따라 말해서 벌점 1점!)

우리 ’팀‘ 정신 차.. 오, 이런.. (벌점 또 1점)

딱지 좋은 걸로 주세요~

우리 짝 정신 차려요~

그러다 어떤 팀이 또 실수를 했는데 어물쩡 넘어가려 하자 지나가 순간적으로 한 말은 바로 웨이러 미..(wait a minute)

오, 지나! 방금?

뭐, 내가 뭐라고 했는데?

방금 '식당에서 음식 주문받으시는 분' 영어로 불렀잖아요!

나는 대체로 선방했지만 딱지 운이 나빠 결국 또 꼴등을 했다.

1등을 하든, 꼴등을 하든 상관없이 유쾌하고 즐거운 딱지놀이였다.

amazing point 0!!!

생애 첫 벽난로를 피운 밤

네덜란드 도착 후 며칠은 심하게 시원했다. 조국의 동포들은 매일 불볕더위로 힘들어하는데 우리는 긴 팔 옷을 입고 그 위에 재킷과 머플러까지 하며 시내를 돌아다녔다.

호텔에서 이틀을 머물고 힘스테데 집에 간 첫날은 유독 더 추웠다.

온도가 13~14도쯤 되었는데 다들 카디건과 스웨터를 입고 있어도 거실은 추웠다.

러시아 전쟁 여파에서인지 히터는 아예 틀 수 없다는 집주인의 메모가 있었다.

거실 소파 옆에는 아담한 벽난로가 있었는데 흡사 어제까지도 불을 지핀 흔적이 있었다.

‘우리도 벽난로에 불 지펴 볼까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벽난로에 불 피우는 것을 찬성했다. 그런데 불은 과연 누가 피울 것인가..

나되사에서 ‘무엇이든 다 잘해요’를 담당하고 있는 제니와 ‘무엇이든 일단 제가 할게요’를 담당하고 있는 지니를 필두로 ‘무엇이든 커버할게요’의 유희 덕분에 집 도착 첫날밤은 아주 특별하고 로맨틱한 시간이었다.

나는 모닥불조차 구경한 적 없는 촌닭이라 벽난로에 통나무를 넣어 불 피우는 광경에 홀딱 반했다.

’아! 감즈아~!‘

이때 나의 뇌리를 스친 건 주방에 있는 감자였다.

그렇게 나의 로망 중 하나였던 모닥불에 감자 구워 먹기까지 실현된, 그야말로 아름다운 네덜란드 힘스테데 우리 집에서의 첫날밤이 따뜻하게 흘러갔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지나, 세렌과 함께 짧은 여행을 떠났다.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밤 10시가 되어도 밖은 밝다.
집 앞 풍경
거실과 마당에서
힘스테데 기차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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