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혼자 생각하며 여행하기
혼자 여행하기.. 가 버킷리스트에 있던 것도 아니다.
긴 여정 하나를 자의로 끝냈으니 그저 나를 깊숙이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굳이 가족 바깥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나를 정리하고 계획하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 행위를 여행이라 부른다면 나는 여행을, 생애 처음 혼자 여행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혼자 여행을 한다는 건 파워 J의 내겐 벌칙과도 같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절실히 느꼈다.
끊임없이 챙겨야 할 것들이 떠올랐다. 모자람 없이 완벽하게 준비해서 나를 편하게 해 주겠다는 욕심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편해지려 함은 한편 불편한 것이다.
2주간의 여행짐을 20인치 캐리어에 꾸리자니 넣고 빼고 넣고 빼고의 연속이었다.
옷, 화장품, 음식은 넣었다 뺐고, 약은 뺐다가 이것저것 더 넣었다.
2주 전부터 발병한 장염은 도대체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가뜩이나 많은 약꾸러미가 더 빵빵해졌다.
"여보, 그냥 편하게 쉬러 간다 생각하고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수영도 매일 하고 와.
집 걱정은 하지 말고.."
다 늙은 중년 여자 혼자 여행 간다는데 남편은 걱정 하나 되지 않는 모양이다.
오토바이 조심, 사람 조심, 음식 조심하라는 말은 1도 없다. 그냥 푹 쉬다 오라니 말이다.
나는 왜 이 지점에서 서운할까.
타고 갈 항공편과 호텔 이름, 주소 등을 정리해서 보여주니 이상한 말까지 덧붙이는 영감탱구의 망발이 가관이다.
“나는 당신이 어디 가는지 관심 없어. 그냥 잘 놀다 오라고요.”
이 영감탱구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망언을 뱉을 수 있을까.
아, 젠장.. 내가 너무 과하게 신뢰를 받고 있구나.
남편에게 인간은 망각의 동물임을 또 알려줘야 할 타이밍이 왔다.
2018년 3월에 남편은 예기치 않게 다니던 회사의 지사장직을 그만두어야 했다. 독일 본사가 미국에 팔리면서 한국 지사를 날려버린 것이다.
졸지에 백수가 된 남편은 몹시 흔들거렸다. 나는 그런 그가 참 안타까웠지만 절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간 능력 있는 남편 덕에 풍파 없이 산 세월에 감사했다. 아이들 학비와 생활비는 나 혼자 버는 걸로도 감당할 수 있으니 세상 끝난 듯이 한숨 쉴 필요 없음을 계속 말해주었다. 그 때 나는 흡사 남편의 멘털 코치 같았다. 남편에게 재충전도 할 겸 당시에 한창 뜨던 치앙마이에서 혼자 자유롭게 한 달 살기를 해보라고 권했다.
남편보다 더 적극적으로 에어비앤비 숙소를 알아봐 주며 그동안 직장생활의 수고로움을 치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치앙마이에 간지 사흘 만에 남편에게서 톡이 왔다.
"여보,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예요. 하나도 절겁지 않아요.
당신도 보고 싶고 애들도 보고 싶네. 그냥 집에 가도 될까? 밤에 돌아다니는 들개들도 너무 무서워. "
그렇게 일주일 만에 남편은 집에 돌아왔고 한 달 숙소비 중 3주 치는 환불받지 못했다. 항공티켓도 변경이 안 되는 것이어서 다시 편도 티켓을 끊었다. 그렇게 치앙마이는 그에겐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이런 전력이 있는 그가 나에게 그냥 푹 쉬고 잘 먹고 걱정 없이 다녀오란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더니 말이다.
조금이나마 걱정하는 말이라도 하면 내가 되려 걱정할 것 없다고 씩씩하게 말할 텐데 내 걱정 하나 하지 않는 남편을 보니 화가 나서 그냥 씩씩 거렸다.
2024년 3월 11일, 나는 남편의 실패를 거울삼아 한 달이 아닌 2주의 홀로 여행을 시작했다.
경유지인 호찌민에서 1박을 하고 지금은 발리 가는 비행기 안이다.
나를 들여다보고, 정리하고 계획하며, 나에 대한 생각 시간을 가지겠다는 원대한 계획은 개뿔이다.
어제는 호텔에 체크인하고 긴장이 풀려서인지 피곤함과 허기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호텔 근처 자그마한 일식당에 들어가 떠껀한 우동과 흰쌀밥, 김치를 주문해서 야무지게 먹곤 8시에 잤다.
피곤은 철학을 충분히 이긴다.
나는 2월 29일 자로 교직에서 명예퇴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