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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노래 Mar 14. 2024

생각하는 여행@발리 #2

미련 없이, 후회 없이

생각하는 여행은 명퇴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다.


약 25년의 교직생활을 마무리했다.

정년까지 6년이 남아 있지만 교직사회에서, 특히 초등 현장에서 정년퇴직하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정년이 보장된 직장을 그만두고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교직생활의 어두운 이면을 짐작할 수 있는 현상일 것이다.

나는 남들보다 10년 늦게 교사가 되었기 때문에 공무원연금도 6년 뒤에나 개시된다.

그럼에도 굳이 교직을 떠나는 건 더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이다.

아니 아플 때 마음 편하게 아프고 싶어서가 맞는 말이겠다.

20년 넘게 고질적으로 재발하는 이석증은 공포 그 자체이다. 느닷없이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어지럼증이 시작되면 속수무책이다. 컨디션 좋게 잘 지내다가도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재발한다. 그러기를 반복하니 '내일 아침 출근 못 하면 어쩌지?'가 지난 20년 동안 밤마다 하는 걱정이었다.

2015년엔 두 달 간격으로 전신마취해서 삼차신경통 수술과 뇌동맥류 수술을 받았다. 수술해도 여전히 끔찍한 안면 통증을 일으키는 삼차신경통과 불안정한 뇌동맥류는 그냥 내 몸의 파수꾼쯤으로 데리고 살기로 했다.

그러기까지의 고통은 나만 아는 것이다.

그러다 몇 년 잘 지내나 했는데 2020년 여름엔 숨 쉴 수 없는 복통이 찾아와 또다시 전신마취 담낭절제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2022년 여름,

“지금 소견서 써드릴 테니 빨리 대학병원에서 수술날짜 잡으세요. 난소종양은 난소 절제 후에 그 자리에서 조직검사가 이루어지고 양성인지 악성인지 바로 결과가 나옵니다. 선생님 경우엔 폐경기 여성한테 아주 나쁜 신호를 띠고 있네요. 모양도 나쁘고 크기도 큽니다.”


2년 전 동네 산부인과에서 건강검진을 받는데 의사가 심각한 얼굴로 난소에 종괴가 있다며 단호한 어투로 바로 대학병원에 가라고 했다.

입술이 바르르 떨리며 너무 겁나고 두려웠다. 보통의 의사들은 환자에게 이렇게 단호하게 말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분당 서울대병원에 급히 예약을 잡고 운 좋게 2주 뒤 수술일정까지 잡아 수술을 받았다.

결과는 다행히 양성이었다.

그때는 정말 간담이 서늘했다. 남편도 할 말을 잃었고, 모든 가족이 다 속으로 떨었다.

이 병 저 병 앓다가 결국엔 난소암으로 죽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웃기는 건 죽는 것보다 ‘병가 내면 기간제 후임을 어떻게 구하지?’ 란 걱정이 제일 먼저였다는 거다.

그동안 마음 놓고 아플 수 없는 대목이 바로 이 지점이다. 초등영어과목은 대체 기간제교사 구하기가 정말 힘들다. 후임 기간제교사를 아픈 환자가 걱정해야 하다니 말이다.

마음이 하도 싱숭생숭해서 친한 친구한테 '나 아프대, 수술받아야 한대..'라고 말했다.

“야, 아무 걱정 말고 빨리 수술 날짜나 잡아라. 내가 니 대신 한 달 영어 해줄게.”

앞이 캄캄하고 너무 암울해서 정작 내 곁의 지니가 작년에 명퇴한 사실을 까먹고 있었다.

고마운 친구 덕에 한 달 병가를 낼 수 있었다.


서울대병원 입원 다음 날 간호 중인 남편이 잠시 산책 나갔을 때 그에게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나는 말보다 절제된 글이 편한 편이다.


"여보, 나 이제 교사 안 할래.  내가 너무 안 됐어. 그동안 그렇게 많이 수술받고.. 그래도 묵묵히 학교 나가고.. 또 씩씩하게 살고.. 또 아프고.. 내일 또 수술받고..

이렇게 사는 게 다 무슨 소용 인가 싶네.

이젠 나도 나를 좀 챙겨줘야겠어. 아파도 학교 걱정 때문에 제대로 아플 수도 없고 말이야. 내가 참 불쌍하다는 걸 느꼈어. 나는 여기서 그만해야겠어. “

수술 결과가 양성이라 정말 다행이었지만 이를 계기로 딱 1년만 더 교직에 있그만 두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나이 더 먹기 전에, 조금이나마 더 건강할 때, 다리에 힘 있을 때.. 뭐든 후회 없이.. 살자!


 다행히 남편은 특유의 부지런한 근성으로 다시 경제활동에 전력할 수 있었고 나는 그런 남편을 믿고 후회 없이 나만의 마지막 교직 1년을 만들어 보겠다는 마음으로 2023년을 임했다. 지난해 수업은 미련 없이, 더없는 열정으로, 그리고 아이들과 최고의 호흡으로 수업했다.

그리하여 나는 진짜 명예롭게 퇴직을 했다.


지금은 발리의 사누르에 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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