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잊지마라구..
(돈 있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발리에서 한적하고 조용한 지역인 사누르에 머물고 있다.
젊은이들의 활기로 넘치는 지역, 서핑과 비치파티, 풀파티가 매일 열리는 지역으로는 아예 가지 않을 작정이다.
내가 지내는 숙소는 동양인 투숙객은 나 혼자인 것 같다. 거의 다 은퇴한 서양행님들이다.
다들 나이가 있어서인지 조식을 아주 이른 시간에 먹는다. 나도 서양행님들에 뒤질세라 7시에 조식 먹으러 간다.
일단 행님들 속에 있으니 귀가 편해서 좋다.
대체적으로 젊은 서양 친구들은 꽤 시끄럽다. 별 시답지 않은 주제로 말이 많아도 너무 많은데, 우리 행님들은 말이 없고, 대화도 조용조용히 해서 참 좋다.
풀장에 음악도 틀지 않는다.
더 좋다.
사각 거리는 바람 소리와 새소리 속에서 모두들 독서를 즐긴다.
나도 그들 속에서 책을 읽는.. 척한다.
이번 여행 기간 동안에 반드시 다 읽고 가겠노라 다짐한 책을 두 권 가져왔다.
아.. 자신이 없다.
그저 아무것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기만 해도 너무 좋아서, 눈은 책을 향해 있어도 마음은 바람 소리, 새소리와 함께 공간을 스미며 돌아다니고 있다.
<쇼펜하우어 소품집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 중>
총명한 사람은 온전히 홀로 있을 때조차 자신만의 생각과 상상만으로 큰 즐거움을 얻는다. 반면에 아둔한 자는 아무리 사교 활동, 연극, 유흥거리를 즐겨도 고통스러운 권태로움을 피할 도리가 없다. 선하고 절제하는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는 환경이 곤궁해도 만족을 찾는다. 하지만 탐욕스럽고 남을 시기하는 악한 사람은 아무리 부자여도 만족을 모른다. 하지만 비범하고 뛰어난 정신을 지닌 인격을 추구하는 자는 대다수 사람이 좇는 향락을 번거롭고 성가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호라티우스는 자기 자신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보석, 대리석, 상아, 티레니아의 조각상, 그림, 은 세공품, 게투리산 불고둥으로 염색한 옷감 등을 가지고 싶은 사람이 있고, 갖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미리애 version:
보석, 대리석 바닥 아파트, 금 세공품, 명품백, 외제차 등을 가지고 싶은 사람이 있고, 갖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도대체 뭐니?*+*
오늘은 원래 윤식당 촬영지인 길리트라왕안 섬으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어제 오후 네시쯤 픽업 예약해 둔 업체로부터 메일이 왔다.
발리에서 길리로 떠나는 모든 배편이 취소되었다는 거다. 기상으로 인한 것이니 배 예약금은 환불해 준다는데 그렇다면.. 3박을 예약해 둔 숙소는?
호텔 측에 어필해보고, 부킹닷컴 측에 중재신청까지 다 해봤지만 환불 불가라는 답변을 받았다.
파랗디 파란 물에서 스노클링 하며 바다거북이를 보겠다는 계획도 날아가고,
내 돈 27만 원도 날아가고..
그러나 어떤 일이 초래하는 결과(consequence)를 거꾸로 보면 이번 경우는 오히려 다행이지 않은가.
길리 들어갔다가 배 결항으로 섬에서 못 나오고 비행기도 놓치고.. 발을 동동 구르며 답답해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면 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이 시간을 즐길 것.
제일 중요한 걸 잊었다.
기억해야지
이 좋은 순간들
정해진 것들로부터,
약속의 관계들로부터
온전히 나만 생각할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자연스러운 시간 속의 나를..
혼자여행도 아, 참 좋은 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