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호네 이야기
어려서의 어떤 기억은 죽을 때까지 가나 보다.
내 유년시절의 기억은 골목골목에서 머문다.
우리 동네는 종으로 세 갈래 골목이 있었고 횡으로 하나의 골목이 윗동네 아랫동네를 나누고 있었다.
어릴 적 우리 집 주소는 부산시 영도구 청학동 5통 10반 377번지였다. 서너 살 때부터 엄마, 아버지, 외할머니가 나를 세워 놓고 "느거집 어디고?" 물으면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부산시이 영도구우 청학똥 5통 10반에 377번지!"라고 대답을 했다.
외할머니는 "아이고, 이 똑또구리 좀 보게." 라시며 10원을 주셨다.
그 후에 행정구역이 여러 차례 개편되면서 통, 반, 번지도 계속 바뀌었지만 여전히 내 기억 속엔 5통 10반에 377번지만 들어있다.
나는 올해 '지천명'이란 그럴싸한 이름의 고개에 올라왔다. 보낸 날들이 보낼 날들 보다 더 길어질수록 어릴 적 영상이 왜 자꾸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5통 10반의 골목을 따라 뛰어다니는 계집아이가 보인다.
기억은 어제 일처럼 말갛다..
1970년대 우리 동네 아줌마들의 유대관계는 쌍문동 덕선이네 골목보다 훨씬 끈끈했다. 그 시절엔 사연 없는 집이 없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사연들 말이다.
어린 계집아이가 그 사연들을 일일이 기억한다는 것이 어째 좀 희한하다.
나는 왜 그 일들을 다 알고 또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직접 목격한 것도 있지만, 어린 막내라 엄마가 마실 갈 때 졸졸 따라다니며 어쩌다 동네의 집집이 사연들을 다 알게 되었다.
내가 어리다고 어른들이 눈치 보지 않고 이 말 저 말 한 까닭일 거다.
일명 청학동 가십 또는 뒷담화 말이다.
우리 집은 문 상사 집 또는 범이네로 불렸다.
범이네 이야기는 천천히 할 것이다. 범이네에게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없기도 하거니와.
우리 동네에서 제일 알짜배기 부잣집은 정호네였다.
정호네 아저씨는 한 집에서 두 부인을 데리고 살았다. 어렸을 때는 의문 없이 자연스럽게 큰엄마, 작은 엄마라는 공식적인 호칭으로 그 집 아줌마들을 불렀었다.
큰 부인이 생산을 못해서 양자를 들였으나 아저씨는 자기 씨를 거두고 싶어 둘째 부인을 들여 아들을 둘 낳았다.
둘째 부인은 글도 못 읽고 숫자도 모르는 약간 지능이 떨어지는 여자였다.
그 집에 양자로 들인 아들의 이름이 바로 '정호'였다. 정호는 커갈수록 자기가 친아들이 아니라는 콤플렉스를 난폭함으로 표출했다. 그의 분노의 대상은 작은 엄마인 '경아네'였다. (작은 엄마가 낳은 첫아들 이름이 호경이다.)
작은 엄마가 희경이와 철이를 낳지 않았으면 자기는 비록 양자라도 소중한 독자였을 수 있는 것이었다.
정호는 허구한 날 경아네를 못살게 굴며 늑대같이 으르렁대었다. 심한 날엔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욕을 하고 집 유리창을 부수기도 했다.
동네에서 정호의 못돼 쳐 먹은 성질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정호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공부는 잘했다. 그의 두 남동생들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작은 엄마를 닮아 몹시 착하고 아둔했다.
웃기게도 그 못돼 처먹은 정호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범이네의 큰 딸 미야, 세 쌍듸네 장남 희철이와 정호는 동갑이었고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네의 작은 언덕 밑에 있는 교회, 아니 예배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예배당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정호는 좀 착해지는 듯했다.
찬송도 열심히 부르고, 울며 불며 기도도 열심히 하더니 같잖게도 신학대학에 들어갔다.
어린아이였던 나는 정호를 믿지 않았다.
그가 작은 엄마와 싸울 때 몇 번 구경을 갔더랬다. 그 시절엔 누구 집에 무슨 일 나면 동네 사람들이 다 모이던 때였으니까.
그때 본 그 살기 가득한 눈을 잊을 수가 없다.
아주 어릴 적부터 국민학교 2,3 학년 때까지 정호의 지랄을 봐 왔던 터라 예배당에서 지 아무리 콧물 흘리며 회개 기도를 해도 어린 내 눈엔 그저 쑈로만 보였다.
10년, 20년, 30년.. 뭉텅이로 흘러가는 세월은 골목을 씁쓸하게 비워갔다.
정호네 아저씨는 큰엄마의 패악을 못 견뎌했다. 그러다 치매와 파킨슨병에 걸렸다. 큰엄마는 아저씨와 이혼을 하고 집을 얻어 나갔다. 물론 재산도 챙겼다. 경아네는 글도 모르고 숫자도 몰랐으니 말이다. 아저씨는 작은 엄마와 두 친아들들과 살다 돌아가셨다. 큰 엄마는 그 집 재산의 대부분을 그녀가 애지중지하는 양아들 정호를 아르헨티나로 유학 보내는데 썼다.
어머니를 아르헨티나로 모셔 가겠다는 말을 철썩 같이 믿으며. 큰엄마는 몇 해 전 양로원에서 돌아가셨다. 정호는 아르헨티나에서 만난 여자와 결혼하고 아들을 둘 두었는데 아내와 불화가 심해 이혼을 했다.
이후에 들리는 소문으로는 정호가 한국에 돌아와서 목사를 한다고도 하고 사기를 치고 다닌다고도 하는데 나는 어째 그가 목사 하면서 사기를 치고 살고 있을 것 같다.
아직 살아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