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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hwan Jan 28. 2021

낯선 퍼포먼스 리뷰

커리어 관리도 셀프 서비스

"제가 한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영광을 팀 동료에게 돌립니다."

연말 시상식에서 흔히 들었을 법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수상 소감 멘트이다. 이 상을 받는 사람이 정말 이렇게 순수하게 생각할지 안할지 모르겠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참 대견하게 들리고, 이 말을 하는 사람을 '참 겸손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겸손함이 미덕'인 문화에서 오랜 기간 살아온 내게,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어려워하는 시기가 있는데, 바로 연말에 있는 퍼포먼스 리뷰(Performance review)를 할 때이다. 아마 한국 말로 치면 '고과 평가'와도 같은 것인데, 내가 퍼포먼스 리뷰때 '제가 한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 덕분이었어요' 라고 말한다면 나는 아마도 low-performance group으로 분류되어 얼마 안있어 해고 대상자 목록에 오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 좀 보세요. 저 일년동안 이만큼 열심히 일했다구요!' 라고 말하는 것도 나와 같은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꽤나 낯간지러운 일이기도 하고. 하지만 고과 평가 대비 퍼포먼스 리뷰는 좀 더 합리적이고 평가를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 그 결과에 조금 더 수긍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 생각되어서 한번쯤 그 차이를 언급해보고 싶었다. 내가 과거에 한국에서 직접 겪었던 고과 평과와 이곳에서의 퍼포먼스 리뷰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평가 vs 리뷰


평가는 말 그대로 내가 평가자(주로 direct report를 하는 팀 매니져)에게 '잘했다' 혹은 '못했다' 라고 성적표를 받는 것이다. 내가 잘했으면 어떤 부분에서 잘했는지, 못했으면 어떤 부분에서 못했는지 성적을 '통보' 받는다. 거기에는 나의 의견과 주장이 들어갈 틈이 없다. 내가 생각하기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성적 정정이 되지 않는다. 그저 이해가 안되고 억울한 부분이 있더라도 받아들여야 했다. 당시에는 때때로 소위 '고과를 깔아주는' 문화가 있었기에 누군가는 좋은 고과를 받을 수 있었지만, 또다른 누군가는 줄담배에 술잔을 비워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일방적인 고과평가 뒤에 '걱정마, 내년에는 챙겨줄게'라는 말로 손쉽게 누군가의 고생을 달래기도 했다. 지금이야 내 또래 혹은 나보다 더 젊은 친구들이 조직을 매니징하는 시대가 되어서 아마도 예전보다는 좀 더 합리적인 방향으로 고과 평가를 개선해왔겠지만, 10여년 전만해도 그때는 그랬다.


퍼포먼스 리뷰는 일방적인 평가라기 보다는 양방향(mutual-dimension) 혹은 다방향(multi-dimension)으로 나의 지난 1년간(혹은 3~6개월 단위)의 업무결과 및 역량을 점검하는 시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시기가 되면 모두 각자 스스로의 업무 퍼포먼스 및 역량 평가를 먼저 해야하고, 그걸 바탕으로 매니져들이 피드백을 더해서 퍼포먼스 리뷰의 결과가 준비된다. 리뷰의 목적은 '네가 그동안 얼마나 잘했느냐'를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 발전하려면 어떤 역량을 내년에 좀 더 키워야 하는가'를 발견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 더 큰 목적이다.





1 vs 360


고과 평가는 보통 내가 속한 팀이나 그룹의 매니져가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평가가 완료되면 한명씩 회의실로 불러내어 '작년 한해의 고과는 이렇습니다.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올해 연봉은 이렇습니다. 동의하면 여기에 사인해주세요'라고 ARS 안내 마냥 중립적인 목소리로 내가 해야할 일을 금새 알려준다. 아마도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고과 평가서에 적힌 내용을 제대로 다 읽기도 전에 연봉 통보 협상 문서에 금새 사인을 했을 것이다.


퍼포먼스 리뷰는 앞서 말했듯이 본인 스스로 평가를 하고 그 다음 순서가 360 Feedback 이라고 해서 나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게 나의 평가를 의뢰한다. 내 경우로 예를 들면, 내가 매니징하는 쥬니어 디자이너, 나와 몇개의 프로젝트를 같이 했던 개발자들, Product manager들, 디자인 리서쳐들 등등에게 나에 대한 평가를 부탁해야 한다.(이 평가는 나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내 매니져에게 통보된다) 그러다보니, 내 매니져가 본인의 360 Feedback을 내게 요청하는 경우도 있으니, 내가 매니져를 평가해서 그위의 VP(임원)에게 통보해야하는 어색한 경험도 하게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서 본인 혹은 매니져가 놓치는 부분들을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좀 더 잘 관찰하고 평가를 할 수 있게된다. 좀 더 객관적인 평가를 하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그동안 수고했어 vs 이 부분을 좀 더 성장시켜보자


대부분의 고과 평가의 마무리는 '지난해 열심히 일하시느라 수고했습니다'라는 말로 끝맺음이 된다. 고과를 잘 받은 사람은 지난해 만큼만 올해도 화이팅하자는 생각을 하고, 못받은 사람은 작년보다는 좀 더 힘내서 하자는 생각을 하며 평가 시즌이 마무리가 된다. 근데 '어떻게?'라는 구체적인 방법과 계획에 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던 것이 보통이었고, 각자가 알아서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좀 팀원들을 잘 챙겨주는 매니져들은 년초 프로젝트 계획시에 어떤 프로젝트를 어떤 사람에게 분배할까 라는 계획을 세우지만, 그 마저도 누군가를 진급 시켜주거나 고과를 챙겨주기 위한 '답정너'의 한 과정인 경우가 많았다.


퍼포먼스 리뷰는 '그러면 올해에는 어떻게 성장할건데?'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채워가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그 답은 매니져나 내가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계획을 세워나간다. 그림을 같이 그려나간다는 표현이 적당할 수 있겠다. 가령 내가 매니져로 성장하고 싶고, 그것에 대한 방향성을 매니져가 동의한다면 구체적인 과정들을 매니져가 짚어주면서 계획을 세우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가령 '3월에는 1주일간 코칭 프로그램이 있는데, 내가 너 거기 참석 할 수 있도록 할테니, 미리 업무 계획도 조정해놔' 라던가 '올 초부터는 네가 직접 우리팀의 A군과 B양을 매니징 시작해보는게 어때? 내가 하던 일인데 이젠 네가 시작해보면 좋을것 같다' 라는 식으로 목표를 도달하기 위한 연착륙 계획을 매니져와 함께 세워나간다. 그리고 이 계획을 바탕으로 일년 내내 1:1 미팅에서 지속적으로 과정들을 점검해간다.




"시켜만 주시면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는 마인드로 실리콘 밸리에서 기세 좋게 일을 시작했었지만 아무도 일을 가져다 주지 않았고 결국엔 필요한 일들을 찾아서 해결해가며 성과를 내야하는 것이 이곳에서 처음 발견한 '생존을 위한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성과를  후에도 내가 그것을 스스로 과도하게 낮추 않고 적절히 그것에 대해 표현할  알며 나의 커리어 목표를 내가 능동적으로 수립하며 한단계씩 올라서야 하는 것은 생존을 넘어선 또다른 도전이었다.



s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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