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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hwan Mar 21. 2021

포틀랜드 한 달 살기 - Day 1

드디어 출발


짐 꾸리기


3박 4일 여행이 아닌 한 달 살기였기 때문에 챙기는 짐은 살림살이가 대부분이었다. 최소한의 짐으로 최대한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인프라와 비슷하게 구축하고 지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관건이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짐은 아이와 관련된 것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고, 옷은 오히려 3박 4일 여행보다 적게 챙겼던 것 같다.

차량으로 긴 시간 가는 여행은 처음이었지만, 꽤 괜찮다고 생각된 부분은 차로 이동하다 보니 짐을 챙길 때 완벽하게 패킹(packing)을 안 해도 되는 점이었다. 적당한 상자나 컨테이너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차곡차곡 짐을 정리해서 넣어두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차량 지붕 위에 올린 루프 박스(Roof box)의 용량이 생각보다 커서 꽤 많은 양의 짐을 꾸릴 수가 있었다. 루프 박스는 작년에 가족끼리 캠핑을 다닐목적으로 구입해서 설치해 둔 것인데, 이번에 본격적으로 처음 사용해보게 되었다.


차량 트렁크에 짐이 얼만큼 들어갈 수 있을지 대충 측정하던 중.




사서 했던 걱정


지금 우리가 사는 곳에서 포틀랜드까지 운전해서 가려면 막히지 않는 도로를 쉬지 않고 달려도 10~11시간 정도가 걸린다. 먼 거리를 운전했던 경험은 아이가 태어나기 이전에 임신한 아내와 함께 LA까지 6시간, 그리고 아이와 같이 세 식구가 타호 호수(Lake Tahoe)에 갈 때 4시간여 정도 운전했던 것이 전부였다. 그 두 번의 경험 모두 나보다는 같이 동승했던 아내와 아이가 꽤나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어서 나와 아내는 장거리 운전해서 가는 여행은 무척 금기시 해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에 계획한 여행을 해나가기 위해 처음으로 해야 할 것이 11시간이 넘는 장거리 운전이라니- 아내와 나는 여행을 계획하면서부터 '그 긴 시간을 어떻게 운전 해나가지?'라는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자동차에 타는 동안 아이가 지루해할까  몇몇 새로운 장난감들과 책들을 준비하고, 포틀랜드 가는 중간에 쉬면서 먹을 간식거리, 가지고 놀만한 것들을 한 달 여행에 필요한 준비물보다 더 꼼꼼하게 챙겼었다.  Covid-19 상황 중에 가는 길이니만큼, 사람들이 많이 모일만한 곳을 피하려고 중간에 알맞게 쉬는 곳들을 미리 구글맵(Google Map)으로 검색해두고 몇 시간 간격으로 쉬면서 운전할지 미리 계획을 세웠다. 이미 아이들과 먼 거리 운전을 해본 친구들의 얘기로는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던데, 그래서 우리도 걱정하면서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했었는데- 그게 그렇게 쉽게 마음이 놓이진 않았다.





즐거웠던 15시간


이른 저녁에 아들 녀석이랑 잠이 들었다가 새벽 2시 반에 깨서 나머지 짐들을 차에 싣고 포틀랜드로 출발한 시간이 새벽 4시 반 즈음. 밤새 비가 내려서 땅은 흠뻑 젖어있었고, 아직도 간간히 비가 내리는 지역이 있어서 밤 시간이라 더욱 조심하게 되었다. 동이 트는 시간을 지나 4시간 가까이 달린 후, 첫 번째 쉬는 곳에서 아들 녀석을 깨워 같이 화장실도 들르고 잠시 스트레칭을 한 후 근처 공원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생각보다 긴 시간을 한 호흡에 달려왔음에도 초반에 조금 졸렸던 것을 제외하면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는 것에 아내와 조금은 안심을 했다. 내 친구의 말대로 그렇게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모양이다.


해가 떠오를 무렵


아침식사를 마친후에는 잠이 깬 아들을 뒤에 태운채 다시 두 시간여를 달려가야 했는데, 아이가 차창 밖을 보면서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같이 이야기도 하고, 또 혼자 차 안에서 이것저것 하면서 잘 견뎌주는 것이 대견하고 고마웠다. 벌써 이렇게 컸나- 하는 생각에 옆자리에 앉은 아내와 눈이 마주치면서 웃기도 했다.


포틀랜드로 가려면 얕은 산을 두 개 정도 넘어가야 하는데, 그 길이 심하게 구불구불하지 않아서 운전하는데 어려움은 크게 없었다. 오히려 늦겨울의 눈 덮인 산과 들판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까닭에 아이는 아직 눈을 가지고 논 경험이 없어서였는지 창 밖에 펼쳐진 눈 덮인 산과 들판을 보면서 그렇게 크게 신나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와 아내가 더 크게 '우와!' 하면서 연신 탄성을 질러댔었다.


오랜만에 본 눈


눈 덮인 산들을 지나 점심을 먹으려고 들렀던 조그마한 마을에서 산책도 하고 (평소에 안 사 먹었던) 아이스크림도 먹으며 시간을 풍성히 보내기 시작했을 때, 이 하루 동안의 긴 운전하는 시간이 '내가 버텨내야 하는 시간'이 아니라, '내가 온전하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괜한 걱정을 했었다. 출발 후 15시간 정도가 지나 저녁 7시가 조금 넘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6시간 운전해서 갔던 LA만큼, 혹은 4시간 걸려서 갔던 Tahoe보다 힘든 느낌이 들지 않았던 것은, 오는 시간 자체만으로도 아이와 아내와 함께 많은 추억을 만들면서 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거의 도착



s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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