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 그리고 커피, 갓 구운 빵
포틀랜드에 온 지 3일째. 그리고 월요일이다.
어제까지는 주말이었기 때문에 막 도착한 포틀랜드에서 한가하게 가족들과 이리저리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오늘부터는 다시 회사 일을 시작해야 하는 날이다. '장기 휴가'로 온 것이 아니라 '한 달 살기'로 온 것에 대한 의미는 일상을 되도록 해치지 말자는 의도가 있고, 그 일상의 대부분에는 안타깝게도 회사 일이 자리하고 있다. 물론 감사하게도 재택근무 환경이니 이렇게 타 지역에 와서 일할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이겠지만.
그래서 포틀랜드 오기 전부터 아내와 약속한 것이 있다. 일상 중 평일 오전에는 머무는 곳 근처의 여러 공원들로 아침 산책을 가자고. 그리고 포틀랜드는 커피로 유명하니까 산책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는 하루에 한 번씩 꼭 맛있는 커피를 사서 오자고 말이다.
오늘 처음 온 공원은 머물고 있는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Tualatin Hills Nature Park이다. 집에서 가까워서 여기 있는 동안 왠지 자주 가볼 것 같아서 미리 한번 가보자는 생각이었다. 도착한 날부터 변화무쌍한 날씨를 보여준 포틀랜드에서의 공원은 캘리포니아의 그것과 어떻게 다를지도 궁금했다. 아침 식사하기도 전부터 일찍 나와서인지 주차장은 텅텅 비어있었고, 3월 초의 포틀랜드 날씨는 추울 거라 생각하고 든든히 옷을 챙겨 입고 왔는데도 오랜만에 마주한 쌀쌀한 공기라서 그런지 더 추운 느낌이었다. 한국에 살 때 이 정도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었었는데, 나도 이제 캘리포니아 날씨에 많이 익숙해진 모양이다. 아들 녀석은 하얀 콧바람이 신기했는지 산책은 관심도 없고 연신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만 반복한다.
공원 입구에서 붙어있는 안내문이다. 이 표지판 하나로 나와 아내, 그리고 아들 녀석은 여러 작은 숲 속 동물들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공원 입구에서부터 보이는 식생의 다름은 나와 아내에게도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졌다. 건조한 캘리포니아와는 다르게 비가 자주 오는 이곳 날씨 덕분에, 나무와 식물들은 여전히 추운 3월임에도 불구하고 꽤 푸른빛을 띠고 있었고, 산책로 바닥 주변에 곱게 깔려있는 흙은 간밤에 비가 오지 않았음에도 짙게 젖어있었다. 나무들이 무성히 우거지고 이끼만 잔뜩 끼어있는 별거 없는 공원이었지만, 우리에겐 낯선 풍경이라 셋이서 각자 이곳저곳을 관찰하며 '저기 좀 봐봐'를 연발하면서 거닐었다.
너무 이른 추운 아침 일찍이어서인지, 안타깝게도 숲 속 동물들은 하나도 보지 못했지만, 아까 그 표지판을 본 것만으로도 뭔가 굉장한 동물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음번에 오면 아침잠에서 깬 동물들을 볼 수 있을 거야'라는 말에 '내일 또 오자!'라는 졸음이 여전히 뭍어있는 아들 녀석의 상기된 얼굴에 웃음이 났다.
산책을 마치고 휴대폰을 꺼내서 근처 커피숍을 찾았다. 처음 마시는 로컬 커피인데 높은 평점의 카페를 찾아가자며 꽤 오랜 시간 Google Map을 들여다보았다. 막상 우리가 찾아간 곳은 일본어 느낌의 이름을 사용하는 평범한 모습의 카페였는데, Covid19 시대라 카페 안에는 주문만 받고 to-go만 가능했다. 일본식 빵을 만드는 곳은 아니었지만, 아기자기하게 포장된 여러 굿즈(goods)의 모습들이 그런 느낌을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커피를 두 잔 시키고, 아침 식사용 빵을 골고루 몇 가지 시켰었는데, 베이컨이 곁들여진 갓 구운 바삭한 바게트가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다.
커피 맛있다, 오빠.
사실 커피 맛만 따지면 내가 집에서 직접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내려먹는 커피가 더 신선하고 맛있겠지만, 별거 아닌 커피임에도 즐거워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니, 이것도 이런 의외의 긴 여행이 아니면 보기 힘든 광경이겠다 싶었다.
se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