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의 대화에서 얻은 지혜
예전에 아내가 연말에 친한 가정을 위해 선물을 고르는데 어떤 제품의 소개 페이지를 보여주며 내게 어떠냐고 물었다. 내가 보기엔 얼핏 괜찮은 아이디어 같았고, 내가 그 선물을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은 것 같아’라고 간결하게 대답해 주었다. 실제로 제품도 가격대비 썩 괜찮아 보였다. 다만 몇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어서 왠지 좀 더 좋은 제품을 찾을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그리고 며칠 후 그 제품이 집에 배달이 되었다. 사실 당시 나의 ‘좋은 것 같아’ 대답의 너머에는 ‘하지만 더 괜찮은 것이 있을 테니 좀 더 생각해 보자’라는 말이 더 큰 존재감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 말을 내가 실제로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으니 아내의 생각에는 그것이 제품 구매에 필요한 충분한 확인의 시그널이었나 보다. 나의 언어 표현을 포괄적으로 해석해 버린 그녀에게 뒤늦게나마 정정할까 싶었지만, 그것은 아내와 나 사이의 관계에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그만두고- ‘오, 역시 잘 샀어.’라는 말로 긍정해 주었다. 뭐 굳이 바로잡을만한 큰 일은 아니었기에.
근데 문제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생겼다. 주문한 물건이 도착했고, 아내는 선물 포장을 하기 위해서 택배박스에서 제품을 꺼내고 물건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던 중에 뭐가 맘에 안 드는지 고개를 갸웃한다. ‘오빠, 이거 실제로 보니까 생각보다 사이즈가 작네. 소재도 약간 약해 보이고.’. 맞다. 난 그걸 제품을 구매하기 전에 사진으로 예상했던 부분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약간 망설였던 것이었다는 기억이 났다. 그래서 ‘응 나도 그럴 것 같았어’라고 대답해 주었는데, 아내는 ‘응?? 오빠 이거 맘에 든다고 하지 않았었어?’라고 되물어본다. 앗차차…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내 역시 제품이 맘에 드는 부분도 있었지만 확실치 않은 마음에 나에게 의견을 물어봤던 건데, 내가 ‘좋은 것 같아’라고 말하길래 내 말 믿고 구입했던 거라 한다.
내 생각은 물건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 물건을 ‘구입해도 괜찮을 것’이라는 가치판단과는 별개의 사안이었다. 나는 아내가 순수하게 물건의 성능과 퀄리티에 대해서 물어보는 줄 알았기에 ‘좋은 것 같아’라고 대답해 주었고, 그 대답을 ‘어어. 사도 괜찮겠네’라고 받아들일 줄은 몰랐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가치 판단을 이렇게 세부적으로 나눠서 한다고? 언제부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순간 들었던 생각은 내가 미국에서 일하면서부터 점점 이런 문화에 노출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추측이다.
보통의 디자인 리뷰시간에 팀원들이 각자 맡은 프로젝트의 디자인을 공유하면, 대부분의 피드백의 구조가 이런 식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 ‘It's a great idea, but…’. 작업한 디자인을 반박만 하기엔 좀 뭣하니까 미리 듣기 좋은 말을 좀 해주려고 ‘그거 좋은 아이디어야!’라고 밑밥 깔기라기 보다는, 정말 좋지 않은 디자인 안에서도 좋은 부분을 발견하려는 것이다. 사실 이는 굉장히 좋은 능력이 된다. 오히려 안 좋은 부분 지적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 때문에 누군가 디자인한 작업물을 보고 내가 ‘xxx 부분은 아이디어가 좋고, xxx은 디테일이 좋아, 근데 이 작업은 xxx부분이 부족하니, 이 부분을 보완한 뒤에 다른 팀들과 쉐어하자.’ 라고 이야기하더라도, 어느 누구도 ‘매니져가 맘에 들어하지 않는군’이라고 뒷부분 내용만 가지고 전체를 넘겨짚지 않는다. 앞부분의 긍정의 내용도 사실이고, 뒷부분 조언도 사실이라고 동등하게 받아들인다. 심지어 내가 디자인 전체를 ‘disapprove’ 하더라도, 그들의 디자인 전체가 엉망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좋았던 부분과 향상이 필요한 부분을 최대한 구분하여 측정 가능한 이유를 들어서 설명하고자 노력한다.
최소한 내가 경험한 선에서는 나뿐만 아니라 실무에서 잔뼈 꽤나 굵은 사람들, 리더들도 최대한 여러 가지 가치판단을 구체적으로 나누어서 다면적으로 피드백을 전달하는 것을 본다. 마치 축구선수의 실력을 두고 우리가 평할 때도 ‘저 선수는 축구를 못해’라고 하지 않고, ‘저 선수는 스피드도 빠르고 패스도 좋은데 체력이 떨어져’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도 프로페셔널하게 피드백을 줄 때는 최대한 세분화해서 전달하는 것이, 피드백을 받는 사람의 성장을 위해서도 득이 되고, 그것을 커뮤니케이션하는 사람에게도 득이 되는 일이다.
P.S;
이 긴 핑계 같은 이야기를 아내에게 전했다. ‘그래서 그때의 나는 이런 의도였어. 물건이 좋다고 내가 사라는 말은 아니었다고’라는 설명을 프로페셔널하게 차분히 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아내는 ‘그래? 그럼 좋다고 하지 말았어야지. 좋아도 아닌 건 아닌 거잖아.’라고 카운터를 날린다.
se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