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가 내 삶에 들어온 과정(3)
고등학교 시절, 난 농구가 무척 좋았다. 농구라는 종목을 알기 전까지 난 의미가 없을 정도였다. 농구가 나를 나답게 만들어 주었다. 무엇이 그리 좋았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농구가 무엇보다 즐거웠다. 심지어는 농구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데도, 수업이 끝나면 즐겁게 농구대를 향해 뛰어갔다. 혼자 공을 튀기며, 골 밑에서 슛을 던지는 훈련을 하는데도 재미있었다.(이런 면에서 나는, <슬램덩크>에서 즐겁게 슛을 연습하는 강백호의 마음을 안다.)
이사를 온 동네에 아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난 당연히 혼자 연습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매일 농구 골대에서 오른쪽에서 200번, 왼쪽에서 200번 이런 식으로 던졌다. 하지만, 슛을 던지는 자세는 아무렇게나 했다. 그때는 그저 농구가 좋아서 하던 때다. 슛을 쏜다는 행위가 큰 기쁨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웃기는 일이다. 아무도 없는 골대에서, 막슛을 던진다고 실력이 늘지 않을 터이다. 그런데 학교를 마친 고등학생이, 학교 체육복을 입고 매일 같이 나와서 골을 쏘았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94년, 농구 복장을 맞추던 시절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농구를 꽤나 수준 높게 하던 이들은 달랐겠지만.
그런 날 안쓰럽게 여겼는지, 나에게 농구를 알려준 친구가 슛을 지도해 주었다. 정확하게 기억나는 장면이다. 나보다 작은 그 친구에게 골밑슛을 지도받는 모습이 여전히 아련하다.
요즘 들어 창밖으로 농구하는 사람들을 보곤 한다. 우리 집에서 야외 농구장이 바로 보이는 덕에 무료 농구 경기를 보는 것이다. 동네 농구에도 박진감은 있다. 아주 높은 수준의 경기는 펼치지 못해도, 그들은 긴장하면서 경기한다. 난 그런 농구 경기 관람을 좋아한다. 어느새 양 팀 모두를 응원하는 나를 발견한다. 경기에서 이기고 지는 문제는 뒷전으로 물러난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그들과 한 몸이 된 것처럼 놓친 슛을 아쉬워한다.
그렇게 보다 보면 자연스레 그들의 슛 폼을 관찰하곤 한다. 저 부분을 고치면 좋을 텐데 하면서 보는 습관이 들었다. 내 생각이 굳어진 데에는 그동안 많은 슛을 본 탓이 크다. 잘 던지지는 못하지만, 슛을 정말 많이 던졌다. 실패할 때도 있었지만, 좋은 폼을 유지해서 던지면 절반 정도 넣었던 것 같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된 데는 농구를 가르쳐 준 친구 영향이 컸다. ‘슛은 무엇보다 폼이 중요하다’고 알려준 녀석이다. 그 친구 모토가 ‘잘 다듬어진 폼이 좋은 슛을 낳는 법 아닐까’였다. 농구에서 슛 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준 말이다. 내가 좋은 슈터로 성장하리라 믿었던 시절 이야기다. 물론, 처음부터 이해한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후로 좋은 슛을 던지는 사람치고 폼이 나쁜 사람은 보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다른 이들이 농구하는 모습을 볼 때면, 슛 폼을 보는 게 당연할지 모른다. 그렇게 그 친구에게 지도받으며 내 골에서의 움직임은 훨씬 좋아졌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슛 폼이 좋지 못한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가르쳐 주려 한다. 내가 뭐라고 말이다.
다시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다. 그 친구와 나, 이렇게 둘이 연습하고 있으면 다른 학생들이 2대 2로 한 게임 뛰자는 제안을 자주 받았다. 제대로 할 줄 모르는 건 시합하자고 한 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냥 나보다 조금 나은 정도였다.
그렇게 시합을 마치고 나면, 내 친구는 항상 시합을 복기했다. ‘그때 내가 돌아나갔다면 더 좋았을 거다’, ‘패스받기 위해 어떻게 움직여야 한다’ 등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난 점차 골 밑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배워나갔다. 우린 그렇게 팀으로 조직되어 갔다. 난 그 시간, 내 친구가 위대하게 느껴졌다. 그는 농구를 굉장히 잘 알았다.
난 멀리 이사 왔는데 신기하게 중학교 친구들이 전혀 그립지 않았다. 내가 농구를 발견한 덕분일까. 아니, 농구가 나를 찾아낸 덕분일 것이다. 농구가 날 발견하지 못했다면, 이사를 자주 다녔던 초중학교 시기처럼 울면서 지냈을 터였다. 난 농구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설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