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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히유영 Apr 04. 2023

나의 농구가, 팀 플레이를 익혔다 (2)

농구가 내 삶에 들어온 과정(4)

“아, 18. 졸라 안 들어가네”.


골이 들어가지 않자, 내가 탄식하며 소리쳤다. 나와 함께 농구하던 친구들이 모두 깜짝 놀았다. 평소에 욕을 사용하지 않은 내가 욕을 하니 놀랄 만도 하다. 친구들은 “저건 진심으로 하는 욕이다”라고 평가했다. 농구할 땐 나를 조심해야 한다고 농담 반, 진담 반인 말을 하기도 했다. 그리곤 입을 모아 ‘18 유영’(내 이름)이라고 놀리며 하나 같이 웃었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아니라고 했지만, 당시를 생각하면 진심으로 욕을 지껄였다. 어렸을 때 누구나 하는 욕이지만, 나에게는 진심으로 내뱉는 욕이었다. 얼마나 진심이었으면, 친구들이 놀랐을까.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좋아서 하는데, 좋다 보니 이기고 싶어 진다. 그래서 반칙도 하고, 욕도 하는 일이 있었다.


참고로 나는 지금도 욕을 하지 않는다. 그런 내게 욕을 하게 한 활동이 농구였다. 농구 덕분에 세상 돌아가는 법도, 승패에 연연하는 일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그런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나에게 알려준 친구들을 고2가 되면서 만났다. 그 친구들도 욕을 했지만, 진심이 담기지 않은 욕만 하는 아이들이었다.




고1 시절, 우리 팀은 외곽슛 밖에 잘 던지지 못하는 마른 녀석(스스로 정대만이라고 외치고 다니는), 돌파는 잘하지만 늘 패스만 하는 작은 녀석(송태섭이라 여긴), 키만 크고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나 같은 녀석만 모였다. 아마, 나에게 농구를 가르쳐 준 범준이가 있을 때만 이겼던 팀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재미있게 농구를 했지만, 늘 지는 그런 팀이었다. 한 학기였지만, 재미있게 시합을 뛰었다.


그 무렵 난 승부에 진심이었다. 지고 싶지 않았다고 하는 게 좋겠다. 농구에 진심이었던 만큼 시합에서 이기고 싶었다. 그래서 골 밑에서도 다른 동작들을 익히기 시작했다. 골밑슛은 물론 다른 외곽에서도 넣을 수 있도록 점프슛도 연습했다. 수비도 제대로 하기 위해서 제대로 익히고, 그대로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우리 팀은 이상하게 우리보다 한 학년 위만 만나도 졌다.(당연한 결과였는데, 그때는 그걸 이상하게 여겼다.)


그렇게 지기만 하는 아이들이 농구를 안 하는 겨울이 왔다. 난 겨울에도 공을 튀기며, 열심히 농구를 즐겼다. 한겨울에는 흙바닥이 더욱 딱딱한 느낌이 들어, 오히려 뛰기 편했다. 나는 지지 않는 농구를 하기 위해 농구 교본도 샀다. 책을 잘 안 읽던 내가 돈을 주고 처음 산 책이었다. 당시에는 책도 나오지 않는 분위기였는데, 만화책 ‘슬램덩크’와 드라마 ‘마지막 승부’ 덕에 출판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여튼 하라는 공부는 뒤로 하고, 농구를 익히느라 정신이 없었다.


마침내 2학년으로 올라갔다. 팀원들은 모두 이과를 선택했고, 나만 문과를 선택했다. 어쩔 수 없이 팀은 갈라졌다. 그냥 가끔 모여서 농구를 즐겼다. 예전처럼 팀으로 모이는 데에는 무리가 있었다. 난 예전처럼 동네 아이들과 농구하며 지냈다. 슬펐지만, 어쩌겠나. 집이 멀기는 했지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마 고등학생이 생각하는 수준이었나 보다.

농구는 무엇보다 패스할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게 진짜 농구의 재미다.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다. 당시 반장이었던 정한얼이란 친구와 친해졌다. 그 아이는 모든 다 멋진 친구였다. 아니 무엇을 하든, 그 친구가 하면 왠지 멋져 보였다. 실제 농구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이상하게 골은 넣는 그런 아이였다. 거기에 장해성이라는 팔이 긴 아이도 친해졌다. 그 아이는 열심히 하는 친구였다. 정교한 플레이가 아주 돋보였다. 거기다 성적도 다들 반에서 중간 정도 했다. 그래서 친해진 것도 있었다.


하여튼, 어느 날 그 친구들과 함께 농구를 했다. 이전과는 다른 몸놀림으로 상대를 배려하는 플레이를 했다. 그때 처음으로 ‘스크린’이라는 기술을 알았다. 내가 벽이 되어 내 친구의 수비를 떼어내는 플레이였다. 내가 스크린을 걸면 그 친구들은 빠져나가 슛하거나, 나에게 패스해 골을 넣었다. 당시에 우린 그 플레이로 학교에서 알아주는 팀이 되었다. 스크린을 막는 방법을 알려주는 채널이 당시에는 없었다.


그 플레이로 나를 잘 사용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친구들도 적극적으로 나를 이용했다. 내가 가운데 서고, 정교한 플레이를 하는 해성이가 공을 돌렸고, 한얼이는 센터를 보거나 밖으로 나가 이상한 폼으로 슛을 던졌다. 난 훅슛은 물론, 왼손 골밑슛, 미드레인지 점프슛까지 장착했다. 정말 우리가 무적인 느낌이었다. 난 처음으로 진정한 팀을 만났다. 고1 시절, 우리는 팀인 것처럼 흉내만 냈다. 팀플레이를 전혀 몰랐다.


우리가 팀으로 성장한 건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단지 저 친구가 골을 넣을 수 있도록 돕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플레이했다. 당시 농구가 막 유행하던 찰나에 우연히 그런 플레이를 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그저 스크린만 걸어주는 팀이었지만, 그걸로 우리는 무적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도 그때 그 기억으로 팀을 기억한다. 가끔 팀 플레이 이야기를 하는 조직을 보면, 나와 친구들이 했던 스크린을 걸어줄 사람은 누가 있는지 찾곤 한다. 그리고 패스할 사람은 누구인지, 슛을 쏠 사람은 누구인지 확인한다. 팀을 이야기하는데 그런 사람이 없다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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