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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Sep 25. 2024

아프니까 사장이다?

주짓수 고수이면서 월세를 걱정하는 사장님 이야기

회사에서 아주 '빡세게' 일을 하던 어느 날 매너리즘이 쌓이고 쌓여 억누를 수 없는 스트레스가 되고 급기야 어떤 자극을 받아 하늘 높이 용암을 뿜어내며 미친 듯이 폭발하는 화산처럼, 직장을 다니는 평범한 사람도 미쳐버릴 때가 있는 법이죠. 공감하십니까? 그날따라 유독 파트너사 담당자도 삐딱한 것 같고 바빠죽겠는데 컴퓨터는 로딩 자체도 버벅거리고. 그나마 보고서 파일 안 지워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반려처리'가 되면 허허허 헛웃음이 나오고 말죠. '결국은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라는 거지' 회사를 다니는 이 시대의 수많은 직장인들 안쪽 주머니에 사직서 하나쯤 기본으로 들고 다닌다는 말이 있던데 이렇게 폭발하는 순간을 맞이하면 저도 모르게 마음속에 품었던 말을 내뱉고 말죠. 

"아 XX, 확 사표 던져버릴까" 

아니 근데 그만두는 와중에도 '사직서'라는 정해진 포맷에 맞춰서 내용을 써야 하고 팀장에 본부장까지 결재까지 받아야 된다니. 진짜 킹 받지 않나요? 사직서 포맷을 찾아 꾸역꾸역 내용을 채워 넣어 본 적도 있긴 하지만 정작 단 한번 내지도 못하고 임시 저장만 해두는 나라는 존재. 그 와중에 임시 저장도 웃음 나오네. 

'그래, 아직 대출이 너무 많이 남았어. 당장 이직할 곳도 없잖아. 장사할 것도 아니고'  

스스로 살짝 무너졌다가 다시 집 나갔던 이성을 찾게 됩니다. '그래, 일단 회사에 충실하자. 오늘도 내가 참는다' 스스로 되뇌고 곱씹어봅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친구를 불러내 굳이 이야기해 봅니다.

"내가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진짜 열받는데 나 회사 때려치우고 장사나 할까?"

회사 때려치우고 장사를 하고 있는 친구 A 왈 "야, 장사는 뭐 아무나 하는 줄 아냐"면서 호통을 칩니다. 생각해 보니까 회사 때려치우고 장사하던 친구 B가 다시 다른 회사에 들어가 회사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을 매일 같이 부여잡으며 직장에 다니고 있다는 건 절대 비밀입니다. 이 친구를 보면서 회사는 그만두고 싶은데 그만두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전 아직 대출이 엄청 많이 남았으니까요. 아무튼 저에게도 가슴속에 꺼내놓지 않은 사직서 하나는 늘 품고 있답니다. 


언젠가 주짓수 체육관 관장님과 운동을 하고 나서 늦은 점심으로 냉면 한 그릇을 먹으며 주짓수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습니다. 사실 관장님도 자영업을 하는 입장입니다. 저는 장사 한번 해보지 않은 직장인이었지만 관장님은 이 체육관을 오픈하고 나서 월세는 물론이고 매달 로열티(제가 다니고 있는 주짓수 체육관은 국내외로 지부가 있는 프랜차이즈였답니다)를 내야 하는 사장님이었죠. 차마 얼마를 내고 있는지 물어보진 못했습니다. 글쎄, 뭔가 골목식당에서 프랜차이즈로 장사하시는 사장님 느낌이랄까. 자신의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주짓수를 가르치고 있지만 본업 이외에도 (당연히) 챙겨야 할 것들이 엄청 많다고 했습니다. 어딘가에 물이 새거나 문이 고장 났거나 천장에 불이 나갔거나 선풍기가 망가졌을 때 손수 두드려가며 고치기도 하고 샤워장부터 사람들이 뒹굴던 매트까지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며 밀려있는 서류 파일도 매일매일 정리해야 하는 입장이었죠. 자신이 운영하는 체육관이니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야 했습니다. 물론 집에 가면 아빠가 되고 남편이 되는 이 시대의 가장이기도 합니다. 회원들이 매달 내는 회비로 매출과 영업비용, 순이익을 반드시 고민해야 하는 입장. 겉으로는 그 선한 눈빛으로 웃으면서 말하고 있지만 역시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것 같은 느낌이더군요. 또 한 가지는 체력입니다. 주짓수라는 건 몸을 쓰는 운동이기 때문에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점점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네요. 어쨌든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잖아요? 마냥 혈기왕성했던 20대에 머물고 싶지만 마음은 20대여도 몸은 30대가 되고 40대가 되고 또 50대, 60대로 쭉쭉 나이 들어가는 게 사람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짓수는 참 좋은 운동입니다. 하지만 때때로 작게 부상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손톱이 들리기도 하고 긁히기도 하고 멍도 들고 근육통도 생길 수 있어요. 더 큰 부상을 입지 않도록 서로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답니다. 여기에는 20대도 있고 30대도 있고 40대도 있고 또 남녀를 가리지 않습니다. 평범한 직장인도 있고 자영업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결국 직종도 나이도 다양하다는 거죠. "이 기술은 어쩌고 저쩌고", "주말에는 뭐 하셨어요?", "휴가 다녀오셨나 봐요?" 등등 매일 같이 마주하게 되는 분들과 도복을 입고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운동하는 그 시간만큼은 참 활력이 넘칩니다. 걱정거리 하나쯤 달고 사는 게 이 시대를 사는 평범한 인생이라고 하던데 그 걱정거리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것 역시 오롯이 운동하는 시간인 거죠. '아프니까 사장이다'라는 말이 있던데요. 이곳 관장님 역시 무거운 부담과 책임감 그리고 떨어지지 않는 걱정거리에 다소 아프지만 오늘도 즐겁게 구슬땀을 흘리고 계십니다. 저를 포함해 이곳에서 운동하시는 다른 분들 또한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걱정과 고민거리를 락커룸에 잠시 넣어두고 운동하러 갑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직장인 그리고 자영업으로 고생하시는 모든 분들, 아프지 말고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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