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쓰는 글에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있나
이곳 브런치에서는 활동하는 유저들에게 '작가'라는 타이틀을 줍니다. 저도 재수 끝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답니다. "오, 내가 작가라니?" 어쨌든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을 부여받기는 했는데 다른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보는 순간 이 공간 자체가 주는 느낌부터 꽤 달랐습니다. 음 뭐랄까. 전학을 왔는데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내 주변에 앉아있는 느낌이랄까? 길거리 음식만 먹던 내가 갑자기 코스 요리를 먹는 느낌이랄까? 기껏해야 블로그에 이모티콘 달아가면서 맛집이 어쩌고 저쩌고 리뷰나 했었는데 '그까짓꺼, 나도 이들처럼 재치도 있으면서 진지하게 접근하면 되겠지' 하며 브런치 활동을 시작하게 됐는데요. 처음에는 여행을 다녀온 후 혹은 영화를 관람한 이후 이에 대한 글을 남기는데 블로그에 쓰던 리뷰와 크게 다를 바 없이 내용만 장황할 뿐 그저 지루할 뿐이었죠. 아니 이게 뭐지? 그냥 블로그에 쓰던 글을 공간만 바꿔 브런치에 쓰는 느낌이었어요. 그러다 다른 주제에 대해서도 한참동안 고민을 거듭, 내가 미처 알지 못한 분야에 대해 공부를 하기 위한 연습장 삼아 브런치를 이용했고 하나둘씩 글이 차곡차곡 모여 아주 운 좋게도 (그리고 감사하게도) 책을 출간하기도 했답니다. 졸저이긴 했어도 내 이름 석자 제대로 박힌 책이었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죠.
사실 수많은 사람들이 책을 쓰고 있습니다. 책을 출간한 사람 중에는 유명한 사람도 있고 책을 출간하면서 유명해진 사람도 있겠죠. 저를 포함해 주변 지인 몇몇 분들도 책을 내셨는데 이제는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싶을 정도네요. (아마도 제가 책을 냈으니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문득) 서점에 널려있는 책들에 콕콕 박혀있는 글자 하나하나 얼마나 고민하고 썼을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한 페이지 빼곡하게 채워 넣었다가 죄다 지우기도 하고 다시 한 글자씩 문장을 만들었다가 곱씹어보고 수정을 반복, 당연히 유한이겠지만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오랜 시간 고민을 거듭해 한 페이지를 작성하기도 하죠. 네,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배우 차인표 님이 과거 집필했다던 소설이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이라는 제목의 책은 위안부 훈 할머니를 바라보며 썼다던 '소설'입니다. 본래 제목은 <잘가요 언덕>이었고 2009년에 펴낸 책이었죠. 이 책 한 권을 쓰는데 무려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하죠.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한 기초 지식을 쌓기 위해 관련된 책도 사보고 온라인 강의도 들어가면서 페이지를 채워 나갔다고 했습니다. 출간과 폐간 그리고 복간. 이렇게 반복을 거쳐 새롭게 탄생한 책은 급기야 옥스퍼드 대학교의 필독서로 선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옥스퍼드 대학교 각 컬리지 도서관에 비치가 되었는데 한번 책장에 꽂히게 되면 다시 빼는 경우가 없다고 할 정도라고 하네요. 책의 내용도 그러하지만 필독서로 선정이 되었다는 점과 위안부 이야기를 어렵게 꺼내 들었다는 점 그리고 이 책으로 옥스퍼드로 날아가 강연도 했다는 뒷 이야기는 차인표 님 개인적으로도 매우 유의미하고 가치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가 그렇게 오랜 시간 공을 들여 고민하고 썼다던 책. 그 의미와 가치를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베스트셀러가 됐든, 폐간이 됐든 결과에 관계없이 하나의 책을 만들어내는 그 오랜 시간의 정성과 노력과 호흡 그리고 꾸준함. 그런 모습을 보면서 지금까지 글을 썼던 시간들을 다시 한번 곱씹어보게 됐습니다. 여전히 이 공간에 글을 채워 넣고는 있는데 하나의 글을 완성하는 데 있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가, 고민을 한다고 해서 제대로 된 글이 완성된다는 것은 아니겠지만 글을 쓰기 이전에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지극히 근본적이면서 원초적인 생각들. 필력 좋으신 분들 역시 수도 없이 고민을 하겠죠. 아무것도 없는 하얀 빈 공간에 무엇을 채워 넣을지, 아무것도 채우지 못하더라도 커서만 깜빡 거리는 그 시간 동안 머리를 스치는 수많은 이야깃거리들. 생각을 활자로 바꾸고 그 활자에 숨을 불어넣는 것. 그게 바로 작가인 것 같습니다.
브런치에도 수많은 브런치 작가들이 있고 모두가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들이 세상에 나오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공감을 받기도 하죠. 재미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좋은 글이란 어떻게 탄생하게 되는지, 그리고 근본적으로 좋은 글이란 어떤 것인지 조금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