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와일드 로봇>
"저한테 맡기실 일이 있으신가요? 임무를 수행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필요한 게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필요한 게 무엇이라고 답을 던지면 눈앞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로봇이 여기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사용자가 요구하는 것을 처리해 주는 다목적형 로봇을 유니버설 다이내믹스에서 만들고 있습니다. 구매를 원하시나요? 구매를 원하시면 받아 적으세요. 070... 아차, 죄송합니다. 유니버설 다이내믹스는 사실 실존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런 로봇도 있지만 또 없습니다. 어딘가에서 만들어지고 있을 테지만 만들었다고 해도 그걸 쉽게 구매하긴 어렵겠죠. 그럼에도 불구 생성형 AI 시대를 초월하고 있는 작금의 시대에 인공지능을 탑재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꾸준하게 개발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언젠가는 구매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여기 어떤 사고로 인해 대자연 속으로 떨어져 버린 로봇 하나가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유니버설 다이내믹스에서 제작한 로봇인데요. 당장 회수가 필요합니다. 반송 처리를 해야 하지만 로봇 머리 위에 달린 송신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군요. 사실 작동은 하는데 외부 요인과 어떤 상황에 의해 송수신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로봇이 떨어진 이곳은 정말 거대한 대자연 속입니다. 보통 공장에서 찍어낸 기계들에는 일련번호가 부여되곤 하는데 이 로봇 역시 일련번호가 있기는 하지만 여기에서는 숫자 대신 로즈라는 이름을 갖게 됩니다. 로즈는 우연히 기러기 새끼 하나를 마주하게 됩니다. 기러기 새끼에게도 브라이트 빌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처음 마주한 로즈를 엄마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유니버설 다이내믹스의 로봇 로즈와 알에서 방금 깨어난 기러기 새끼 브라이트 빌이 공동체 운명이 되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로봇 로즈에게는 임무가 생겼습니다. 브라이트 빌이 스스로 헤엄칠 수 있도록, 또 두 날개로 힘껏 날갯짓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그렇게 해야 겨울이 오기 전 기러기 가족들과 함께 먼 여정을 떠날 수 있거든요. 시간이 갈수록 브라이트 빌은 성장해 나갑니다. 급기야 하늘로 힘차게 날아오르는 순간 관객들의 가슴은 충분히 벅차오르죠. 브라이트 빌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동안 로즈의 온몸은 찢기고 긁히고 또 부서집니다. 온몸에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말이죠. '엄마'로서의 희생을 로즈라는 기계에 부여한 것이고 또 그 희생을 통해 브라이트 빌이 비로소 당당하게 날개를 펼치는 순간, 관객은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만 기계인 로즈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우연한 만남인데 운명적인 관계가 되어버린 로봇과 기러기 새끼의 이야기는 피터 브라운이라는 동화작가의 소설을 <와일드 로봇>이라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로즈는 유니버설 다이내믹스의 로보틱스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 기계입니다. 또한 인공지능을 탑재하고 있죠. 수많은 동물들과 우거진 숲, 그리고 물이 흐르는 곳까지 아름다운 대자연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기술적인 개념으로서 로즈의 성능을 감히 이야기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동물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며 이를 그대로 학습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딥러닝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겠죠. 동물들의 소통 방식을 보고 듣고 학습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오버 테크놀로지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작중에서 로즈는 그들의 언어를 학습해 소통합니다. 물론 이때부터 로즈는 다른 동물들과 대화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야 이야기가 이어질 테니까요. 또 한 가지 눈여겨볼 것은 자신에게 특정 프로토콜이 있어 자기 자신을 제어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곤 부여받은 임무를 위해 온몸으로 부딪힙니다. 아무런 표정 없이 그저 기계적이고 지극히 이성적이지만 상대와 교감할 줄 아는 감성형 인공지능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람들의 외형적 모습 그러니까 눈썹의 움직임이라던가 눈빛, 안면 근육 등을 인지하고 파악할 수 있는 인공지능도 개발되고 있다고 하죠. 영화 <그녀>에서도 주인공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가 인공지능 운영체제인 사만다(스칼렛 요한슨 목소리)와 상호 소통하며 교감을 이루는데요. 극 중 테오도르는 사만다로부터 치유를 받기도 합니다. 그만큼 감성형 인공지능이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다는 의미인데요. 이제는 현실 속 인공지능 역시 점점 그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연 로즈나 사만다처럼 우리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감성형 인공지능이 탄생할 수 있을까요?
※ 이 글은 명대신문 1134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s://news.mju.ac.kr/news/articleView.html?idxno=12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