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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선미 Jan 11. 2016

나와 함께 여행해줘서 고마워

친구들과 함께한 오키나와 여행에서

그 흔한 시내버스조차 잘 보이질 않고, 철도 강국인 일본 소속이면서 기찻길조차 깔려있지 않으며, 그러면서 인기 관광지와 맛집은 렌터카 없이 갈 수 없는 곳. 그래서 오키나와 여행에 대해 검색해보면 늘 "아이와 함께","친구와 함께"라는 수식어가 깔린다. 그만큼 함께해야만 하고, 함께하지 않으면 재미가 없는 여행지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 부모님은 나에게 종종 그렇게 이기적으로 살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부모님의 좋은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우 이기적인 어른으로 자랐고, 그러한 이기심으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냈다. 흔히들 오래된 친구가 좋다며 10년 지기, 20년 지기를 내세우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오랫동안 꾸준히 연락하는 친구가 없다. 학창시절 딱히 왕따를 당하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사귀는 친구들이 항상 바뀌고, 시간이 지나 학교를 졸업하며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랬던 내가 친구와 함께 여행이라니! 솔직히 걱정이 앞섰다. 여행 좀 많이 다녀봤다고 혼자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짜면서 얼마나 많은 눈치를 봤던지. 그러나 그런 걱정은 여행을 시작하는 순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함께 하고 있기에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J와 A에게.


우리가 처음 만났던 건 아마 대학교 오리엔테이션에서였지? 술 마시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잠깐 밖으로 나왔을 때 눈이 마주쳤고, 술기운 때문이었는지 기분이 좋았던 나는 몇 마디 나누지도 않은 너희에게 시간표를 같이 짜자고 이야기했었어. 그때 너희가 흔쾌히 그러자고 했던 건 우리가 이렇게 친해질 거라는 걸 예상해서였을까?


너희와 함께한 오키나와 여행에서는 잊을 수 없는 것들이 참 많아. 쿄다 휴게소에서의 뜻밖의 소풍, 우리의 길을 안내해주던 렌터카 내비게이션의 어색한 한국어 음성, "가득 채워주세요"를 뭐라고 말할지 몰라 "만땅!"이라고 외쳤는데 그걸 알아들은 주유소의 직원(알고 보니 "만땅"이 일본말이었지), 갑자기 내리는 비를 쫄딱 맞고 옷을 말리던 슈리성 공원 입구의 그 번잡한 분위기까지.


특히, 두 번째 밤이었나? 마트에 들러 그날 저녁에 간단히 먹고 잘 술을 사가지고 호텔에 올라가던 날 밤, 끝없는 오르막길과 오키나와의 습한 날씨에 우린 지쳤었고, 조금 평지로 가는 길도 있지 않겠냐며 나는 호기롭게 다른 길로 가기 시작했지. 그런 나를 묵묵히 따라와 준 너희에게 미안하게도 그 길은 막다른 길이었어. 우리가 묵고있는 호텔이 높은 담 너머로 보였지. 잠시 동안 눈빛을 교환하던 우리는 곧 웃으면서 담을 넘기 시작했었잖아.


나는 아직도 이날 밤을 생각하면 배를 잡고 웃어. 어떻게 그 순간에, 그 높은 담을 넘을 생각을 했는지. 우리가 길이 없는 방향에서 걸어오니까 이상하게 쳐다보던 호텔 주차직원 표정이 아직도 생생해. 그걸 가지고 돌아오는 비행기 탈때까지 또 얼마나 낄낄댔는지. 너희가 아니었다면 함께하는 여행의 즐거움을 알 수 없었을 것 같아.


20살 새내기 때 만났던 너희와 벌써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 이번에 오키나와 여행기를 정리하기 위해 사진을 뒤적거리면서 너네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었어. 20살 그때, 내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 나와 함께 여행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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