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선미 Jan 13. 2016

세인트 폴 대성당

내가 런던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

누군가 나에게 유럽에서 제일 좋았던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한참 고민하겠지만, 런던에서 제일 좋았던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세인트 폴 대성당"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빅벤이나 런던아이, 타워브릿지 같은 런던의 많고 많은 랜드마크 중에 왜 하필 세인트 폴 대성당이냐면, 유일하게 내게 감동을 안겨준 곳이기 때문이다.



1. 첫 만남


처음부터 세인트 폴 대성당에 갈 생각은 아니었다. 단지, 대영박물관을 가려고 했던 날에 런던 날씨가 너무 좋아서 지도 없이 산책을 하다 보니 세인트 폴 대성당이 눈앞에 나타났을 뿐이다.


세인트 폴 대성당 앞은 항상 북적인다.


사실, 처음에는 이 건물이 세인트 폴 대성당이라고 인지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많은 곳에서 세인트 폴 대성당은 돔이 보이는 사진으로 소개하는데, 걸어서 오다 보니 정면에서는 돔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길래 유명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구글맵에 찍어보고 나서야 이 건물이 세인트 폴 대성당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들어가볼까 했지만 내부에 사람이 너무 많았고, 입장료가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서(무려 18파운드/한화 약 32,000원) 입장하지 않았다.




2.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예쁜 성당


그러나 세인트 폴 대성당의 외관이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그냥 보고 지나가는 걸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세인트 폴 대성당 근처에 새로 생긴 쇼핑몰 건물 옥상에 올라가 바에서 맥주를 마시며 성당의 외관을 감상했다. 날씨는 여전히 좋았고, 성당은 보면 볼수록 예뻤다.


밀레니엄 브릿지에서 바라본 세인트 폴 대성당


밀레니엄 브릿지를 건너와서, 이 사진을 찍을 때 까지도, 나에게 세인트 폴 대성당은 그냥 "예쁜 성당"으로 기억될 줄 알았다.



3. 세인트 폴 대성당의 이야기


두 번째 만남은 첫 만남에서 몇 시간 지나지 않아서였다. 세인트 폴 대성당의 야경이 예쁘다며 야경투어 가이드가 나를 다시 세인트 폴 대성당 앞으로 데리고 왔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세인트 폴 대성당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이 이야기가 나를 감동시켰다.


세인트 폴 대성당의 야경


1666년 런던 대화재로 인해, 지금의 세인트 폴 대성당 위치에 있던 다이애나 신전이 전소되었다. 왕립위원회는 천문학자이자 건축가였던 크리스토퍼 렌에게 성당 재건축을 의뢰했고, 렌은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을 본뜬 바로크식 설계를 제안한다. 하지만 가톨릭과 결별한 성공회를 국교로 하고 있던 영국에서 가톨릭 양식을 따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렌은 고딕식으로 성당 설계를 승인받고, 독단적으로 바로크 양식으로 공사를 진행했다. 이를 들키지 않기 위해, 공사를 할 때 전통적인 건설 순서를 따르지 않고 성당 전체를 동시에 건설했다. 결국 대부분의 공사가 끝나자 왕립위원회에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세인트 폴 대성당은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들이 즐비한 영국에서 유일하게 돔을 얹은 바로크 양식의 성당이 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세인트 폴 대성당은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의 고집이 담긴 예술작품인 것이다. 세인트 폴 대성당 지하에는 크리스토퍼 렌이 안장되어 있는데, 그의 무덤 비에는 라틴어로 이렇게 써져있다.


LECTOR, SI MONUMENTUM REQUIRIS CIRCUMSPICE
읽는 이여, 그의 기념비를 찾고자 하거든 그대의 주위를 둘러보라.


2차세계대전 당시 폭탄을 피해간 세인트 폴 대성당


런던의 명물로 오랜 시간 영국인들의 사랑을 받던 세인트 폴 대성당이 영국인들에게 더욱  사랑받게 되는 계기가 있다. 바로 세계 2차 대전 당시 독일 공군의 폭격으로 주변 건물들이 불타고 있는 와중에도 세인트 폴 대성당이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진이 찍힌 것이다. 당시 29발의 폭탄이 떨어졌는데, 단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세인트 폴 대성당을 피해갔다고 한다. 대성당의 돔을 뚫고 떨어진 하나의 폭탄도 터지지 않아 이후 소방대가 목숨을 걸고  제거하는 데 성공한다. 이 사진으로 인해 세인트 폴 대성당은 단순한 명소를 뛰어넘어 대공습에도 무너지지 않는, 영국인이 가진 불굴의 의지를 상징하게 되면서 영국인들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성당이 된 것이다.


이후 영국은 세인트 폴 대성당 주변에 돔보다 높은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하였고, 이 때문에 밀레니엄 브릿지는 현수교(적당히 늘어지게 친 케이블이 본체를 구성하는 다리) 임에도 불구하고 줄을 매단 기둥이나 늘어뜨린 줄이 보이지 않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4. 완전히 매료되다.


다음날 아침, 눈 뜨자마자 세인트 폴 대성당으로 향했다. 사람이 비교적 없는 시간에 세인트 폴 대성당을 만나고 싶었다. 어제는 비싸다고 생각했던 입장료도 이젠 수긍이 갔다. 내부에서 사진 촬영을 할 수 없는 것도 수긍이 갔다. 사진을 찍지 않으니 성당에 더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전날 감동했던 세인트 폴 대성당의 역사를 생각하며, 성당의 분위기를 느끼니 성스러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하 납골당에도 들어갔다. 크리스토퍼 렌의 무덤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묻혀있었다. 꼭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화가, 조각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이곳에 묻혀있다. 포틀랜드 기념비도 이곳에 있다. 포틀랜드 전투에서 전사한 군인들의 이름을 계급 순이 아닌 알파벳 순으로 적어놓았다.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이다. 세인트 폴 대성당에게 다시 한번 반하게 된 순간이었다.


내부를 충분히  돌아본 후, 아직 사람이 많지 않았던 시간에 고대하던 돔에 올랐다.


돔에 올라 바라본 밀레니엄 브릿지와 테이트 모던 갤러리
돔에 올라 바라본 런던 시내


아, 이 곳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단순히 런던 시내가 한눈에 보일 뿐만 아니라, 마치 런던의 모든 것이 세인트 폴 대성당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이후 이어지는 유럽여행에서 수많은 곳에 올랐지만, 세인트 폴 대성당만큼의 감동을 준 곳이 없었다. 이 뷰를 보고 난 후, 나는 세인트 폴 대성당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누군가에게는 파리의 랜드마크가 에펠탑이 아닐 수도 있듯이, 나에게 런던의 랜드마크는 세인트 폴 대성당이었다. 다시 런던에 간다면, 꼭 다시 이 성당의 돔에 올라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자랑스러운 나의 조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