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을 위해 사막을 달린 청년, 독일 원조기관 전문가로 네팔에 돌아오다.
다른 점은 모르겠지만, '빨리빨리'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은 지극히 '한국적'인 나다. 3주의 시간 동안 나의 역할과 앞으로의 업무 과업 및 일정에 대해 명확한 그림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은 조급해한 것 같아 이를 반성한다. 결론은 너무 성급해하지 말자는 것이다. 아직 일은 시작도 하지 않았고 난 당장 실무에 투입될 준비가 된 것도 아니니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약간의 외로움을 벗 삼아 한 주를 기록해낸다.
다음은 3주 차의 기록이다.
2016. 12.19.-20. (월-화)
- 독일인 직원들의 Christmas Exodus
말 그대로 GIZ의 독일인들이 모두 사라졌다!
GIZ 독일인 직원들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모두 3-6주의 장기 휴가를 이용해 본국 등으로 돌아갔고, 독일인 관리자가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업무들은 자연스레 내년으로 미뤄졌다. 독일인(혹은 유럽인)들에게 '가족과 보내는 크리스마스 휴가'는 결코 업무보다 덜 중요한 것이 아니다. 텅 빈 사무실, 그리고 '크리스마스 휴가 중이니 정말 급한 일이 아니고서는 연락을 하지 말라'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그들의 크리스마스 인사 메일에 부러움과 약간의 시샘을 느낀다. (한 달, 심지어 두 달의 초장기 휴가가 가능하다는 것은 아직도 너무나 믿을 수 없는 사실이다......)
- 프로그래밍 복습
'technical role'을 맡겠다는 거청한 선언 뒤에 찾아온 것은 '프로그래머'로서 나의 실력과 경력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미리 밝혀두지만 나는 2개월 간 MOOC(무료 온라인 강의)로 프로그래밍 기초를 독학했고, 4개월짜리 국비지원 Java 개발자 과정을 수료한, 고작 초보 프로그래머 '지망생'이었을 뿐이다. (물론 IT 지식과 경력만 가지고 이 post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심지어 채용 및 계약이 늦어지면서 배운 것마저도 가물가물한 지 오래. 앞서 1-2주 차를 네팔의 전반적인 보건 현황과 사업지인 누와꼿 병원에 대해 알아보는데 보냈다면, 이번 주부터는 HIS 프로그램 및 도입방법 등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 파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요일부터는 예전 학원 교재와 컴퓨터 과학 개론서, 직접 작성했던 예전 source code를 펴놓고, 새해가 찾아오기 전 최소한 '배운 것만큼은' 다시 내 것으로 만드리라 다짐했다.
- 프로그래머(DHIS2) ND와 면담
뚜렷한 업무분담을 위해서는 현재 업무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는 선배에게 지침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또한 그 선배와 앞으로 일을 함께 하기 위해, 내가 전에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할 수 있고/없는지를 그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바로 그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GIZ Nepal의 현지 채용 인력인 ND는 네팔인 프로그래머로, 우리 프로젝트의 two technical branches 중 하나인 DHIS2의 customisation과 implementation을 담당하고 있다. 나는 그에게 따로 시간을 요청해 내가 독학 및 국비과정을 통해 배운 내용과 team portfolio를 보여주고 이러이러한 것들을 개발해보았노라 설명했다. 약간은 긴장한 나의 PT 아닌 PT에 평소 말 없고 바빠 보이기만 하는 전형적인 개발자 스타일(?)의 ND도 상당히 흥미로워하는 눈치였다.
소개가 끝난 후 그는 나에게 현재 자신이 개발하고 있는 몇 가지 추가 기능들을 예로 들며, 지금 내가 배워온 것이라면 충분히 배워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또한 비록 DHIS2가 Java(Spring Framework) 기반이지만, 실제 네팔 사정에 맞추기 위한 추가 기능 개발은 주로 JavaScript & jQuery로만 이루어진다며 이 두 가지를 자신감 있게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해주었다.
- 계속되는 위염 증상으로 고생하다
누와꼿에서부터 시작된 소화불량은 단순한 급체나 속 쓰림이라기보다는 위염인 것으로 보였다. 일시적일 줄 알았던 증상은 쉽게 낫지 않았고 그 결과 일주일 넘게 제대로 먹지 못하고 고생하고 말았다. 분명 불투명한 미래(팀에서의 역할, 업무분장, 공식 근무지, 집 구하기 등) 속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몸과 마음이 조금 지쳐있었던 것 같다. 다행히 주말이 가까워오면서 점차 나아졌다.
2016. 12.21.-22. (수-목)
- 프로그래밍 복습
Java Basic, JavaScript, jQuery, SQL 등 복습
- 프로그래머(OpenMRS) MU와 면담
ND에 이어 우리 팀의 두 번째 실무 프로그래머인 MU와도 면담을 가졌다. 방글라데시 출신으로 영국에서 공부한 MU는 중앙 정부 차원의 보건정보시스템인 DHIS2와 지역/기관 단위의 의료정보 리포팅 시스템인 OpenMRS의 도입을 담당하고 있는 실무자다. 미팅은 화요일 ND와 가졌던 것과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MU는 나의 지난 이야기를 듣고서는 특유의 논리적인 언변으로 OpenMRS에 대한 브리핑은 물론, 내게 여러가지를 조언해주었는데, ND에 비해 훨씬 단도직입적이고 솔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실제로 일을 더 많이 할 사람은 이 선배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OpenMRS의 경우, implemetation이 목표임. 직접 development를 할 필요도 없고, 한다고 해도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음(NOT READY YET). 그리고 implemetation에도 어느 정도의 coding 능력이 필요함.
2. OpenSource긴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전문가들이 개발해 온 enterprise 급의 거대한(?) software임. 최소 1년 간 implementation을 하며 따로 시간을 내어 공부해야 개발을 할 수 있음.
3. 내게 지금 당장 실제 coding보다 더 중요한 것은 documentation. 욕심내지 말고 내년 1-2월까지 DHIS2&OpenMRS의 문서를 읽어라. 또 누와꼿 병원의 실제 업무 프로세스도 이해해야함.
훨씬 clear해진 느낌! MU는 이후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형 게스트하우스도 소개해주었고, 회사에서 잡아준 게스트하우스의 엄청난 숙박비에 고심하던 나를 구해주었다.
2016. 12.23. (금)
- GIZ 직원으로서의 첫 월급 입금!
월급 수령일이 매월 25일인 관계로 예상보다 좀더 일찍 첫 달 받았다. (근무시간 및 업무량 대비) 초박봉으로 지낸 2년, 그리고 백수로 지낸 1년 반 동안 '돈'이라는 것의 존재에 의해 용기나 자신감도 잃고, 참 서글펐던 적도 많이 있었다. 월급의 액수를 떠나(물론 독일 회사인 만큼 남 부럽지 않다), 이렇게 다시 돈을 벌 수 있게 된 것이 무척이나 행복한 일이다.
- 새로운 게스트하우스로 이사
내가 이 날까지 지내던 게스트하우스의 경우 하루 숙박비가 2,000루피로 우리 돈 2만원이 넘었고 한 달이 되면 거의 60만원에 육박할 예정이었다. 비록 아직 앞으로의 계획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다른 곳도 아닌 네팔에서 월 60만원씩 내고 불편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는 게 합리적이지 않아 보였고 나는 일시적이라도 좀 더 저렴한 숙소를 구하고자 했다.
네팔은 남아시아 최빈국으로 1인당 GDP가 $1,000불도 채 되지 않지만, 수도 카트만두(내가 있는 지역은 정확히는 Lalitpur(럴릿푸르))의 주요 중심지의 물가는 세계 주요 도시 못지 않다. 2015년 대지진과 그해 발생한 인도발 국경봉쇄는 이러한 경향을 더욱 심화시켰다. 우리 사무실이 있는 Sanepa(사네파)와 게스트하우스가 위치한 Jhamsikhel(잠시켈)은 특히 집세가 비싼 곳이고, 이 곳에서 외국인 기준의 '괜찮은 집'을 구하려면 월 기본 $400에서 최대 $1,000까지 각오해야 한다. (네팔에서 $1,000짜리 집에서 사는 것은 상상도 못해봤다) 한국으로 치면 강남/압구정 등과 비슷한 느낌의 이 곳은 내가 봉사단원으로 있던 2010년에도 집세가 굉장히 비싼 곳으로 기억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이 지역이 UN 등의 국제기구와 각종 원조기관, NGO는 물론, 외국 대사관과 네팔 정부 부처까지 몰려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마 그 시작은 UN의 대규모 compound인 'UN House'일 것 같다) 이들 기관의 외국인 직원들의 유입은 당연히 일대의 고급화와 물가 상승을 함께 불러왔고, 2015년 대지진 이후 그러한 경향은 더욱 심해진 것으로 보인다. Expat으로서는 주변에 널린 고급 레스토랑과 카페, 호주산 쇠고기와 냉동연어까지 구할 수 있는 대형 마트가 반갑기는 하지만, 엄청난 렌트비는 당혹스럽다.
MU 선배의 도움으로 그가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형 게스트하우스를 목요일에 방문하게 되었고, 바로 그 날 옮기기로 결정했다. 가격은 월 약 $200으로 이전 게스트하우스의 1/3 수준. 여전히 내게는 높은 가격이었지만, 시설이나 위치는 꽤 마음에 들었다. 기존 게스트하우스에서 짐도 제대로 풀지 못하고 매일 같은 옷만 입으며 불편하게 지냈던터라, '내 방'이 생겨서 굉장히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이 곳은 책상과 스탠드가 있고, 공용부엌(사실은 나 혼자 쓰는)이 있어 요리를 할 수 있다! 기쁜 마음에 에너지로 가득차 한국 음악을 틀어놓고 새벽 2시까지 방을 구석구석 깨끗이 청소하고 3주 동안 구겨져있던 짐을 모두 풀어 정리해두었다.
물론 이 곳이라고 100% 완벽하진 않다. 아마 꽤나 치명적인 단점 하나는 창문이 매연과 먼지로 가득찬 도로를 향하고 있어 환기를 할 수 없다는 것과, 도로를 오가는 차량의 소음이 꽤 심하다는 것이다. (이사한 다음 날 아침 6시에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아마 일주일 정도 지내면서 적응해보고, 향후 얼마나 있을 지를 결정할 것 같다. 그럼에도 완벽하지 않지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찾은 것 같아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