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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K Mar 14. 2016

노량진의 마지막 풍경

추억을 유지할 수 있는 현대화의 방법은 정말 없었던 걸까

2007년

대학교 2학년 때 지리학 답사를 천안아산역으로 간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제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지가 상승으로 인한 원주민들의 이주, 그리고 투기꾼이 노리는 역세권 개발 사이의 양극화된 모습이었지요. 시간이 지나고 마침 지난 주에 천안아산역을 오랜만에 들를 일이 생겨 거의 9년만에 천안아산역 주변을 어슬렁거릴 일이 생겼는데요, 평소 기차를 타고 지나갈 때엔 빌딩이 수십 개 보이길래 꽤 잘 발전되었구나 했는데 아산 쪽으로 다시 나가 보니 그쪽은 아직도 휑한 상태였습니다. 9년이나 지났는데 여전히 이 정도면 그저 땅값만 올랐을 뿐 실질적인 이득을 본 사람은 별로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듯합니다. 새로 입주한 사람들과 이전에 거주하던 사람들 사이에는 어떤 문화적인 연결고리도 없으며, 이에 따라 그 자리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이 가져왔던 그 땅의 역사는 단지 '역세권'이라는 이름으로 묻혔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노량진은 사실 굉장히 특이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들 아시다시피 노량진수산시장 건너편에는 고시촌이 있고, 또 샛강 건너엔 여의도 금융가가 있지요. 어떻게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세 주체가 바로 길과 작은 실개천을 마주하고 같이 있는지 지금 생각해도 너무 특이하고 재밌지 않나요? 인천이나 부산같은 항구도시가 아님에도 바닷가 어시장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대한민국에 몇 군데나 있을까요. 또 눈을 돌려 다른 나라들을 생각해 본다면 바다 근처에 도시가 몰려 있는 일본을 제외하고 한 국가의 중심, 그것도 가장 한가운데 이런 공간이 있는 나라도 흔치 않을 것입니다.


얼마 전, 그런 노량진수산시장이 3월 15일이면 새로운 공간으로 이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저 현대화라고 하니 조금 깨끗해지고 전철을 타고 지나가다 보면 여름에 느껴지는 역한 냄새는 사라지지 않을까 기대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기사가 있었는데, 다음 메인에도 걸려서 꽤 많은 댓글이 달린 기사로 기억합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86099&CMPT_CD=P0001


이 기사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뉘는 듯합니다.


해먹을 만큼 해먹지 않았나. 바가지 너무 많이 썼다.
추억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


둘 다 일리있는 말이고 둘 다 동의하는 말이긴 하지만, 저는 후자의 입장에서 노량진수산시장 마지막 방문기를 쓰려 합니다. 마지막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지금같이 어쨌든 평화로운 마지막은 아마 내일까지겠지요.


2016년 3월 13일

친한 친구들과 함께 노량진수산시장에 들렀습니다. 겉보기에는 사실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지만 조명에 보이는 띠가 보이시나요?


이렇게, 띠가 조명마다 걸려 있습니다.

기사의 내용을 보면 이해가 되시겠지만 이분들이 하시는 말씀이 틀린 말은 결코 아닙니다.

이에 대한 판단은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맡기겠습니다.


한편 소비자인 저의 입장에서는 사실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을 듯합니다. 


1) 지금보다 보다 깨끗하고 편리한 동선에서 횟감을 사고 즐길 수 있는가 

2) 현대화되었다고 하여도 기존에 노량진수산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가


1)만 있고 2)는 없다면 사실 회를 사러 노량진까지 갈 이유는 별로 없습니다. 요새는 워낙 신선기술이 발달해서 산지에서 택배도 되는 마당인데요.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서 '회'라고 하면 자동반응마냥 '노량진'을 떠올리는 이유는 2)가 더 클 겁니다. 그만큼 이미지가 사람에게 주는 영향력은 크지요.


하지만 아마도 지금 느껴지는 노량진수산시장의 현대화는 2)는 간과한 데다가 1)마저도 온전히 이룬 것같지 않습니다. 아마 설계상에서 느껴지는 문제들 때문인 듯합니다. 부산에 위치한 자갈치시장이나 민락동 회센터는 바로 옆이 바다기도 하고, 건물이 탁 트여 있어서 노량진처럼 비좁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거든요. 이를 개선하는 것이 사실 현대화의 가장 큰 목적이 아닐까 싶은데 기사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그렇지 못한 듯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해물 5대장이 모두 모였다. 새우, 게, 참치, 연어, 그리고 이건 무친 것만 좋아하지만 표정이 귀여운 홍어까지>


이런저런 생각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러 가지 개선안들과 타협을 바탕으로 결국 새로운 수산시장으로 많은 분들이 옮겨가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충돌과 원치 않는 몸과 마음의 아픔이 생길까 그것이 걱정될 뿐이지요. 게다가 입주하지 않은 공간을 추후 다른 임대자에게 배분해 버린다면 그 충돌은 겉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입주하지 않은 분들께서 현재의 노량진수산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형태가 되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어둡고 낡은 건물 구조상 여러가지 안전문제, 또 치안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지요.

(저희는 이 곳에 사람이 없다면 느와르 영화를 찍는 세트장 같은 분위기가 날 것이라고 생각했답니다)

물론 노량진 수산시장의 이런저런 문제점(바가지, 호객행위, 시설 자체의 문제, 횟감 바꿔치기)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만, 이러한 문제점이 현대화 시설로의 이전 반대에 대한 반박 근거는 되지 못한다는 것을 조금만 생각한다면 알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감정적인 반응이지요. '쌤통이다'라는 반응이 생각보다 많은 듯한데, 여론전에서 이들 상인들이 주도권을 잡기 쉽지 않아 보이는 이유이긴 합니다.


저희는 이 수조에 있던 광어와 제철을 맞이한 숭어를 반반의 비율로 먹었더랬습니다. 청하를 한 잔 걸치면 더더욱 기분좋은 식사였을 텐데 저는 오후일정이 있어서 그렇게 하지 못했지요^^;


회를 다듬는 아저씨의 손길이 굉장히 매끄럽습니다. 

이 자리에서 수천, 수만 마리의 생선을 다듬으셨을 테죠. 잠시 팔딱거리는 광어를 보며 연민을 느끼긴 했습니다만 저는 아마 평생 생선을 끊지는 못할 듯합니다.


숭어는 뱃살이 참 맛있더라구요!

쫄깃쫄깃한 식감 때문에 두터운 숭어의 기타 살을 더 최고로 치는 분도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아무래도 가볍게 즐기기에는 부드러운 뱃살이 더 좋지 않았나 싶습니다.


여러모로 서민귀족이라 욕을 먹는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이지만 아마 정책 앞에서는 모두가 깨갱할 것입니다

순식간에 횟감을 먹어치우고 나서...


돌아오는 길 맛있는 회의 잔향과 함께 머릿속에 여러가지 생각이 가득해집니다.

장소가 바뀐다 한들 역사와 문화가 사라지진 않길 바랍니다.

다만 바뀌어야 할 것은 폐습을 문화로 포장하는 것일 뿐, 정서와 웃음까지도 앗아간다면 그것은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벼룩을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꼴이지요.


부디 좋은 결과로 이어져서 올 봄에도, 내년 봄에도 노량진을 더욱 큰 기대를 안고 방문할 수 있길 바랍니다.


2016.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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