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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K Feb 10. 2017

탈린을 그리워하는 시간

 발트의 역사만큼이나 아름다운 항구도시

TALLINN. ESTONIA


헬싱키, 탈린, 리가, 빌뉴스 네 도시 중 우리가 가장 익숙할 이름은 헬싱키뿐일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세 도시의 이름은 '발트 3국'으로 묶인다. 사실 그 발트 3국의 사람들은 자신들을 뭉뚱그리는 데 굉장한 거부감을 가지는데도. 비슷비슷한 도시라고 묶기엔 네 도시가 너무나도 다르다. 핀우그리아어족에 속하는 에스토니아의 탈린은 라트비아나 리투아니아의 발트어파와 어족이 다르고, 폴란드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리투아니아는 종교적 열정의 측면에서 전통적으로 루터교 국가이자 무신론자도 많은 라트비아 및 에스토니아와 다르다. 게다가 소련의 한 공화국으로 있던 세월이 워낙 긴지라 나라 이름을 듣고서도 거기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고 말이다.


그나마 탈린은 헬싱키에서 배로 지척인 거리인 데다 워낙 악명이 높은 핀란드 물가 탓에 저렴이 관광지(?)로 인기를 끌어왔다고 들었다. 그 탈린을 처음 사진으로 만났을 때 '바로 여기다'라고 느낀 사람이 나뿐일지... 탈린에서 2박 3일이 아니라 3달을 지내도 재밌을 것 같은데 말이다.


온통 장난감 더미인 것 같은 탈린의 올드타운이 처음 나에게 눈에 들어왔던 이유는 미니어처 프라하 같은 광경이었지만, 골목골목은 프라하보다 더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프라하에 가 보지 않은 건 비밀.

<헬싱키 웨스턴 페리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Eckero line의 배, 배 안에는 면세점도 있다. 면세점에서 보고 냉큼 샀던 곰고기 캔(좌하), 이게 빌뉴스에서 더 싸게 팔줄 진작에 알았더라면...>


헬싱키에서 페리를 타고 탈린에 닿을 때쯤이면 갑판에 꼭 나가야 한다. (우리는 타이밍을 놓쳤다) 탈린의 올드 타운은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어서 발트 해 쪽에서 보는 탈린의 올드타운이 정말 아름답기 때문이다. 여름에 보아도 아름답지만 보면 볼수록 눈이 오는 탈린의 모습이 궁금해질 지경이다.


페리 터미널에서 내려 5분쯤 걸었을까, 앞에 보였던 뚱뚱한 성문과 뒤에 보이는 성 올라프 교회. 눈이 오는 날 오면 겨울왕국의 올라프가 반갑게 맞이할 것만 같은 에스토니아의 첫인상이었다.

사실 탈린의 물가가 싸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싸게 쳐 봐야 서울정도? 그런데 헬싱키에서 들어오니 탈린의 물가는 갑자기 너무 싸게 느껴진다. 리투아니아까지 내려가면서 계속 싸다!를 연발했는데, 반대로 올라왔다면 탈린의 물가가 아마 꽤 살인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듯하다.


어쨌든 핀란드에서는 벌벌 떨면서 먹었던 우리가 탈린에서는 점심때도 지났는데 배가 고프다고 당장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 음식을 시킬 정도가 되었다. 실패할까 걱정하지 않고(!) 결과물은 깨끗이 비운 접시와 맥주잔이 말해주지 않는가!

저녁에 방문했다면 조금 더 좋았을 듯한 <Brewery ölleklubi>, 관광객이 많은 올드타운이긴 하지만 새벽까지 축구 경기를 중계하는 펍에 낯선 동양인이 들어가서 그런지, 종업원들의 당황한 모습에 살짝 웃음이 났다.

시청광장 앞에 서 있던 물건. 이게 무엇일까 J와 열띤 토론을 벌인 끝에 우리는 '마법 같은 물건'이라고 퉁치고 넘어갔는데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니 시계인 듯하다. 이렇듯 에스토니아의 올드타운은 중세의 분위기가 넘치지만 의외로 '스카이프'가 에스토니아에서 개발되었고, 버스에서도 와이파이가 자유롭게 잡히는 등 어떤 면에서는 우리보다 IT를 실생활에 빠르게 적용시키는 부분도 있다는 것이 에스토니아가 가진 매력인 것 같다.

누구보다 이목을 끌었던 탈린에서의 첫날밤 거리의 연주자들. 헬싱키만큼은 아니지만 북위 59도에 위치한 나라답게 8월의 밤은 9시가 넘어서야 시작되었다. 2016년의 여름 이상기후는 북유럽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쌀쌀하고 매일같이 비가 왔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준비해간 반팔은 짐만 차지하게 되었고, 두터운 옷을 한두 벌 더 가져오지 않았던 것을 밤에 뼈저리게 후회했던 열흘간의 여행이었다.


첫 날의 저녁은 발트3국을 다니며 항상 볼 수 있는 러시아 음식으로 대신했다. 사실 그 때는 이게 러시아 음식인 지도 몰랐지만 말이다. 발트3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참으로 애매한데, 그것은 발트의 역사가 서쪽으로는 게르만, 동쪽으로는 러시아, 거기에 더해 리투아니아는 폴란드와의 동군연합 시절까지 있어 여러 방면에서 외침을 겪었기 때문이다. 독일이나 덴마크야 현재는 직접적으로 닿아 있지도 않으니 그 영향이 덜하지만, 러시아는 불과 2~30여년 전까지도 소련이라는 이름으로 이들 세 나라를 자국으로 편입해버린 전력이 있으니 가까이할 수 없는 국가인 것. 그러면서 소련 시절 몇십년간 계속된 러시아인들의 이주 탓에 어딜 가도 러시아의 영향이 짙게 보인다. 음식, 그리고 마트료시카가 바로 그것.

발트 여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참고해 봤던 DK의 가이드북. 개인적으로는 론니플래닛보다 더 좋았고 다른 가이드북보다는 월등했는데, 시간이 가서 기억이 잦아들어도 이 책을 읽으면 사진으로, 그림으로 복기할 수 있고, 그 그림의 질도 꽤 좋기 때문이다. 단순히 사진 나열식, 지도 나열식보다 사람의 주관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판단에도 보다 용이하고 말이다.


둘째 날 아침, 에어비앤비 호스트의 식당 추천이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 알았을까? (역시, 맛집은 현지인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Kompressor>의 이 팬케익은 양도 엄청나게 많거니와 맛도 지금까지 먹어본 팬케익 중 단연 최고였다.

둘째 날 아침, 우리는 툼페아(Toompea)에 올랐다. 툼페아의 가장 중심에 있는 성당은 바로 알렉산더 네브스키 성당인데, 누가 봐도 세 개의 돔이 이 성당이 정교회 성당임을 말해주고 있다. 사실 이 성당이 이 자리에 세워지게 된 것은 러시아의 의도인데, 일제가 한국 땅 곳곳에 말뚝을 박은 것마냥 원래 에스토니아의 전설적 영웅이었던 칼레프(Kalev)의 무덤에 세운 것이다. 이 성당을 허물어야 할지 말지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에스토니아에선 이 역시 역사이므로 그대로 놓아 두기로 했다는 것.


여기서 다시 골목길을 돌아 나가면 아래의 유명한 탈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파트쿨리 플랫폼(Patkuli platform)이 보인다. 파트쿨리 플랫폼 옆에는 계단이 있어 내려갈 수 있는데, 이 계단에서 찍은 인물사진이 프로필 사진으로 쓸 수 있을 만큼 예뻤다.

다시 툼페아에서 돌아나오는 길. 탈린의 여름은 어디에 가도 꽃이 항상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꽃만 있는 게 아니라, 공방과 그 공방이 달아놀은 간판까지도 알록달록한 색깔이다. 탈린의 여름은 그야말로 '오색의 도시'.

올드 타운의 남쪽 비루 게이트(Viru gate) 동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탈린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고 위에서도 올드타운을 조망할 수 있는 성벽이 나타난다. 한때 방어를 하던 병사들이 있었을 이 곳은 이제 탈린에서 숨어 있는 핫스팟이 된 것 같다.

탈린의 밤은 사실 서유럽이나 남유럽에 비해 소박하고, 어쩌면 심심한 공간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고즈넉함을 느낄 수 있는 유럽의 대도시는 손에 꼽을 듯하다. 프랑스나 독일의 소도시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한 나라의 수도이기 때문에 나름의 위용과 번창했던 시절의 기억을 모두 지니고 있다.


탈린의 둘째 날에는 비가 오락가락했다. 내가 묵었던 숙소는 툼페아 언덕에서 내려와서 보이는 피크 잘그(Pikk jalg) 게이트 옆의 에어비앤비 숙소. 창을 열면 왼쪽으로는 성벽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거리가 보이는 조용한 곳이었다. 빗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는 것만큼 평화로운 그 날이 또 올 수 있을까, 나는 오늘도 탈린의 그 여름이 그립다.


2016.8.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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