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기억으로 어둠을 이겨내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
발트 여행을 마치고 반 년이 다 되어가지만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딱 한 곳만 꼽으라면 리가를 꼽을 것 같다. 고생도 많이 했고 날씨도 좋지 않았고 탈린, 빌뉴스에 비해 크게 기대도 하지 않았던 곳이지만 지금도 리가만큼은 돌아가고 싶은 도시 중 한 곳이다.
탈린에서 버스로 네 시간, 여행을 시작하기 전 J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라트비아라는 나라.
중세엔 튜튼기사단, 이후에는 폴란드-리투아니아, 가까이는 러시아에 시달려서 독립국가를 이루고 있던 시기가 길게 존재하지는 않던 나라였다. 내가 알고 있는 라트비아에 대한 정보 또한 이것이 거의 다일 정도였으니. 하나 더 하자면 지역별로 서로 다른 전통의상이 예쁜 나라라는 점까지.
탈린에서 리가로 향하던 날 탄 버스의 신박한 풍경.
버스에서 와이파이가 된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서 별로 신기하지 않았는데 프리미엄 고속버스마냥 패드가 붙어 있다. 그리고 커피도 무한 공짜다! 처음에 너무 신기해서 설마 인터넷으로 야구 중계도 될까 했는데 정말 야구 중계가 된다. (ㅋㅋㅋㅋ)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에스토니아는 라트비아나 리투아니아와 비교해서 월등하게 정비가 잘 되어 있고 깔끔한 나라였다.
차를 탄 후 한시간 반쯤 지났을까, 라트비아에 진입했다.
한때는 사람도 차도 멈추는 공간이었을 이 곳은 이제는 화물차 주박지 정도로나 쓰이는 공간이 되었다.
유럽에서 가장 당황스럽고 유럽다움을 느낄 때가 국경을 통과할 때가 아닐지 싶다. 처음 육로로 국경을 넘을 때가 홍콩에서 심천을 가던 때였는데(물론, 홍콩은 중국의 관할 하에 있으니 엄밀히 말하면 국경이라고 보기보다는 변경이라 보아야 적합하겠으나 말이다) 그 때의 충격만큼 신선한.
리가는 비가 내렸다. 심지어 리가에 있던 3일 내내 비가 내렸다. 나에게 리가는 '비가 내리는 리가'의 이미지, 바로 그것이다. 한 달 뒤에 갔던 분의 사진에는 리가 날씨가 아주 좋던데, 그 리가를 보려면 몇 년을 기다려야 할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탈린에 비해 확연히 도로 포장이 불량한 분위기가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의 경제 격차를 말해주는 듯, 게다가 비까지 내렸으니 나의 리가에 대한 이미지는 '아 처음부터 너무 좋은 곳을 가서 실망이 커지는구나'의 느낌이었다. 게다가 숙소로 가는 길은 어느 유럽의 올드타운이 다 그렇듯이 돌길에 오르막이기까지 했으니 리가에 대한 첫인상이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었던 것.
리가에서도 탈린에서와 같이 Airbnb의 숙소를 예약했다. 올드타운에 있는 17세기의 작은 건물 4층이었는데, 들어가자 마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나타났다. 집주인이었던 마리아는 건축 디자이너였는데, Airbnb 임대 건물을 손수 디자인했다고 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미로같은 고건물을 어떻게 이렇게 리모델링할 생각을 했는지!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리가의 밤을 더욱 더 운치있게 만들어주는 리가의 숙소였다.
집 앞을 나왔더니 보이는 풍경. 바로 앞의 리가 대성당과 그 앞의 Dome square 주변이었는데, 남쪽으로 조금 내려와서 해가 더욱 일찍 지기는 했지만, 이 때도 이미 오후 8시가 지난 시간이었다.
라트비아가 에스토니아에 비해 다소 투박해 보이긴 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보다 더 예술적이고 화려한 면도 가지고 있고, 한때 리가가 북동유럽의 문화적 중심지였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는 점 중 하나가 음식문화였다.
첫날 들른 'LIDO Alus sēta', 둘째 날 저녁에 들른 '3 pavāru', 리도는 그냥 흔한 뷔페식 세미 라트비아 음식점이었고, 'Three chef'라는 뜻을 가진 '3 pavāru'는 컨템포러리 퀴진을 취급하는 라트비아의 톱 레스토랑들 중 하나였지만 두 곳 모두에서 재료를 활용하는 창의적인 면을 십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경탄하게 할 수밖에 없었던 아뮤즈부쉬. 각종 소스를 물감처럼 흩뿌린 뒤 견과류를 샐러드로 먹는 이 아뮤즈부쉬만큼 이 식당을 잘 나타내는 건 없었던 듯하다. 개방된 주방과 셰프들 간의 자유로운 분위기. 리가의 표면은 설령 비가 내리고 음울해 보일 수는 있으나, 그 속은 이렇듯 자유로움과 20세기 초 리가가 가졌던 문화적 다양성을 자랑이라도 하는 듯 화려하고 풍부하다.
리가에서 도시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두 곳이 있는데, 한 곳이 이렇게 올드 타운을 볼 수 있는 스탈린 양식의 라트비아 과학관 건물이고, 다른 하나가 앞에 보이는 성 피터 교회이다. 건물이 사진에서도 느껴지듯 그 거대함에 비해 보수가 잘 되어있지 않아 많이 낡았는데, 그것이 리가의 음울함을 더하는 요소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다음 날 성 피터 교회에서 바라본 Dome square 일대의 전경. 역시나 날은 흐렸고, 건물의 보수되지 않은 모습을 더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다. 건물의 크기는 전체적으로 탈린보다 널찍하고 큰데, 그것은 리가가 번성했던 시기가 탈린보다 더 후대, 가까이는 20세기 초까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리가에서 올드타운을 살짝 벗어나면, 신기한 광경들이 눈에 꽤 많이 들어온다.
앞에서 이야기한 전경을 볼 수 있는 라트비아 과학관이 왼쪽의 건물인데, 이 건물은 스탈린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 중 하나이다. 반면 올드타운에서 과학관이 아니라 동쪽으로 운하를 건너면 1918년부터 20년까지 이어진 라트비아 독립 전쟁에서 숨진 군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자유 기념비가 위치해 있다. 뭔가 대비되는 양식의 두 건축물에서 리가의 굴곡진 역사를 함께 만날 수 있는 듯했다.
리가의 건축물들 중 올드타운 동쪽에 있는 건축들은 특이하게도 모두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리가가 문화적으로 번영할 때 만들어진 건물들이다. 당시 유럽을 휩쓴 건축사조였던 아르누보 스타일에 맞게, 곡선이 유려하고 자연물과 선형을 자유롭게 활용해서 만들어졌다. 지금은 대부분 주거용 건물로 사용되고 있어 내부를 볼 수는 없었고, 보수가 쉽지 않아 색이 바래고 벗겨진 건물들도 많지만 그럼에도 리가의 거대한 아르누보 거리는 영광의 20세기 초를 떠올리는 데는 충분한 듯했다.
역사의 질곡에서 많은 부침을 겪었던 리가였기에 흐리고 비가 오는 날씨가 더욱 더 우울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중에 듣고 보니 작년의 그 8월은 북유럽에서도 유난히 따뜻하지 않고 비만 많이 내렸던 이상한 여름이었다고는 하지만. 덕분에 나는 리가에게 '찰나의 찬란함을 구름 속에 간직한 영원한 자유의 도시'라는 예쁜 별명을 붙여줄 수 있었던 것 같다.
리가가 라트비아인들의 자유의 도시로, 계속해서 남아 있길 소망한다.
2016.8.15~17
Rīga, Latvi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