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K Feb 11. 2016

영화 캐롤

멜로도 아니고 퀴어도 아니고 뭐지?

※ 본 감상에는 미리니름(스포일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니쉬 '만을 기다리던 나에게  영화  눈에 띠는 영화가 보였다.


케이트 블란쳇

그리고

루니 마라


이 둘이 나오는 영화에 평점이 9점이라니 엄청난 영화겠다 싶어 연휴 마지막 날 많은 기대를 안고 향했습니다.


오직 그 사람만

보이는 순간이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 문구인가요!

리뷰도 포스터도 하나같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래서 많이 기대한 영화였지요.


영화의 주인공 '테레즈 벨리벳(루니 마라 분)'


백화점에서 완구를 파는 평범한 뉴요커입니다.

아침에 아래층에서 잠을 깨우는 헌신적인 남자친구 리처드도 있지요.


어느 날 또 다른 주인공인 '캐롤 에어드(케이트 블란쳇 분)'이 가게를 찾아옵니다.

눈빛만 보면 분위기가 짐작가지 않나요?

4살 때 아이에게 줄 선물로 '기차놀이 완구'를 추천하는 테레즈와 이에 고민하지 않고 이를 사는 캐롤

캐롤이 놓고 간 장갑으로 인해 이 둘의 복잡하고 사연많은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캐롤은 테레즈를 점심식사에도 초대하고 집에도 초대하며

테레즈는 알 수 없는 묘한 이끌림에 계속해서 캐롤과 함께하게 되죠.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레즈비언 영화', '퀴어 영화'에 방점을 찍고 바라보시는 것 같은데,

 아마 영화의 본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실 것 같아요.

사실 영화에서 명시적으로 이들을 퀴어라고 언급하는 부분은 없습니다.


오히려 '뉴욕에서 열심히 일하는 가난한 배경을 가진 테레즈'와 '자신과 자신의 딸 사이에서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가장 옳은 길을 고민하는 캐롤'의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보다 편하게 이 영화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본인이 레즈비언이라면 왜 결혼을 해서 아이까지 낳았느냐?'고 물으시는 상식 이하의 분들은 없으시겠죠?

개인적으로 2010년대의 한국은 1950년대의 미국과 성적소수자를 사회적으로 이해하는 측면에서 별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만큼 본인의 성별 정체성, 혹은 성적 지향성을 무시하고 사회적으로 당연시되는 발달과업에 사람을 맞추려는 사회적인 압력이 매우 큽니다.


캐롤이 그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얼마나 많은 고뇌를 겪었을까요...


하지만 딸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포기하지 않았던 캐롤은 모든 걸 잃게 될 위기에 처하자 테레즈와 떠납니다


엄마가 되어보지는 못했지만 엄마로서의 마음도 이해가 되고요

이를 바라보는 테레즈의 마음도 이해가 됩니다


시카고로 향하는 길 어느 모텔에서,

흐트러진 케이트 블란쳇의 모습이 얼마나 이렇게 예쁜지!

왜 저는 술을 마실 때 이렇게 예쁘게 흐트러지지 못하는 걸까요?


하지만 이 둘이 사랑을 처음 약속하고 맹세하던 날,

이들의 사랑은 캐롤의 남편이 보낸 흥신소 직원에 의해 부정의 증거로 사용되고,

캐롤은 자신의 딸을 정말 잃어버릴 위기에 처합니다.


편지를 남기고 떠난 캐롤

그리고 테레즈...


캐롤에게는 여러 번 있었을 일이지만 테레즈에게는 본인이 레즈비언으로서의 자각도 없던 상태에서

맞이한 뜬금없는 이별이라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을 거예요.


하지만 캐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택합니다.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떠납니다


동성애가 정신병이던 시절

부정하며 평생을 살다 스스로가 동성애자임을 공표하는 캐롤의 용기가 어디서 나왔을까요?


I wanted it and I will not deny it

We gave each other the most breathtaking of gifts


테레즈가 그 용기를 주었던 것은 아니었을지요.


한 달 뒤, 캐롤과 테레즈는  재회하게 됩니다.

캐롤도, 테레즈도 결국 서로를 원했던 거지요.

해피엔딩이라면 해피엔딩이겠지요?



<너무 아름다운 두 배우의 포스터, 영화의 그림같은 모습들은 정말 최고이다>

너무 아름다운 영화였지만 사실 저는 영화가 기대만큼은 아니었습니다.

첫 눈에 둘이 반할 만큼 개연성이 있다고 보기엔 '어, 이렇게 사랑하게 되나?'라고 생각될 정도의 빠른 전개

묘한 이끌림에 모든 걸 결정한다고 하기엔 나이가 과년한 테레즈

멜로물이라면 약간은 나사빠진듯한 전개도 그랬고


레즈비언이라고 명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은 채 본인이 여성을 사랑한다는 고민은 하지 않는 테레즈

본인의 정체성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테레즈에게 이 고민의 깊이를 떠난 후에야 알려주는 캐롤

퀴어물이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대중의 입맛에 맞추려고 했던, 그래서 어쩌면 '당당하지 못한' 퀴어물로서의 정체성도 그러했지요.


무엇보다 작품에서 베드신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이 역시 대중의 거부감 때문인지 이들의 사랑을 진정으로 아름답게 묘사하기엔 조금 부족해 보이는 베드신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사실 청소년 관람불가인 이유조차도 잘 모를 만큼요.


다만 배경과 장면, 테레즈가 사진을 찍는 모습들은 너무나도 아름다웠어요.

저도 1950년대 미국에 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우정인듯, 사랑인듯 한 전개에서 이들이 사랑임을 깨닫는 과정에 대한 묘사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면

아마 감정에 대한 혼란은 내려놓은 채 아름답게 이 영화를 볼 수 있지 않았을까요?




언젠가 게이의 사랑과 레즈비언의 사랑이 보통 사람들의 사랑만큼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상이 오길 바랍니다.

'당연한 것은 세상에 없다'고 믿는 저에게 이들 모두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세상의 모습이거든요.


캐롤이 1950년의 미국을 배경으로 한 이유는 아마 2010년대의 미국이라면 이러한 분위기까지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에요.

여전히 성적소수자에 대한 사회적인 폭력이 존재한다고는 하지만, 최소한 동성애자들에 대한 제도적 차별장치는 사라졌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고증이나 여러 면에서 사극의 느낌도 살짝 드는 영화 캐롤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국에서도 이렇게 느껴지는 시대가 오기를 소망합니다.



2016.02.1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