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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K Mar 03. 2016

저물어 가는 겨울에게 보내는 편지

내장산 우화정에서 2월의 마지막 날을 보내다

우연이었다

1월의 어느 매서운 추위를 뚫고 출근을 한 그날 아침, 페이스북의 전라북도 페이지에 내장산 우화정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는데 그 사진이 그렇게 예뻤을 줄이야.

고향이 전라북도니 으레 전라북도 페이지에 '좋아요'만 누를 줄 알았지 콘텐츠는 쓱싹쓱싹 넘기기 바빴던 내가 사진 한 장에 꽂혀 검색해 보니 아마 어렸을 때 몇 번이고 지나쳤을 곳이었더라.


하지만 전라도에서는 외지인들에게 유명하고 북적북적한 정읍 내장산만큼이나 물 많고 한정식이 맛있는 순창 강천산도 인기있는 여행지이기에, (게다가 우리 부모님은 내장산보다 항상 강천산을 좋아하셨기에,) 내장산을 마음먹고 꼭 가야지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2월 29일

어라, 눈이 오네


마침 쉬는 날 광주 본가에 가기로 한지라 에라 모르겠다. 내려가는데 정읍 들러서 가면 좋겠다 싶어 차를 돌려 꼬불꼬불한 국도를 지나가려는 찰나... 눈이 너무 많이 오는 것이 아닌가!


여기가 강원도 철원인지 전라북도 정읍인지^^;;

(물론 정읍은 남부지방에서 항상 손가락 안에 드는 다설지역이다.)

가야해 말아야해 고민하게 만드는 많은 눈 덕에 잠깐 고민했으나, 내 성격상 목표를 정해놓고 안 간 적은 거의 없던 듯하다.


내장저수지의 설경

내장저수지에 이렇게 예쁜 다리가 있을 줄은 몰랐다.

사실 평소에는 그냥 그저 그런 다리라고 생각하고 지나쳤을 텐데 뒤에 보이는 산의 설경이 더 빛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지난 가을의 이파리와 겨울의 눈이 아쉽다.

사실 나는 2월을 한해중 가장 좋아한다. 생일이 있는 주이고 내 생일에는 눈이 흩날렸다고도 하고, 왠지 모르게 2월은 나의 달인 것만 같은 느낌에 항상 겨울, 그리고 2월이 지나가는 시기가 되면 아쉬워하고는 한다.

다만 이번 2월은 이에 더해 겨울이 주는 음울함을 봄이 오면 느낄 수 없다는 것까지 아쉬움을 배가시키는 듯하다.


음울함을 느낄 수 없으니 좋은 것이 아니냐 하겠지만, 음울함이라는 게 단지 어두침침한 것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혼자서 고민해보는 시간까지도 포함하는 말이니 단순히 우울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겨울의 밤이 가장 길지만 또한 별이 가장 잘 보이는 계절이니 또한 가장 밝은 밤이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2월에, 그리고 3월에 폭설이 내리면 '겨울도 다 갔는데 눈이 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1월보다는 2월과 3월에 폭설이 더 많이 내린다는 것! 남풍이 불기 시작하면 겨우내 가득했던 건조한 대륙의 한기도 조금씩 물러나고 바다의 기운이 스며들지만, 어느새 시샘하는 대륙의 한기가 바다의 기운과 만나 눈을 뿌리기 때문이라고...


운전하는 사람, 눈 치우는 군인에게는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쓰레기일 뿐이지만, 나에게는 지나가는 겨울을 아쉬워하는 나를 위로해주는 눈이다. 덕분에 걸어가던 나는 눈사람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걷고 또 새봄이 되면 느끼지 못할 본연의 고독을 씹어가며 눈을 맛보았다. 



정자를 봐 말아 고민하던 찰나 또다시 눈이 내렸다


정자에 날개가 돋아 승천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우화정(羽化亭)'


하지만 너무 추워서 돌아갈지 말지 고민하길 수 번쨰, 

오늘이 아니면 올해는 이 광경을 보지 못할 것 같아 기어코 도착했는데,

어느새 따뜻해진 날씨와 사진을 번갈아가면서 보고 있노라면 잘 간 듯하여 다행이다.



너무 많이 내린 눈에 내장사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1차 목표인 우화정만 보고 돌아왔지만,

올 가을에 사진 속의 단풍을 볼 수 있길, 그리고 내년에도 어제같은 겨울이 와서 나의 마음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들어주길.



20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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