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제주 살아요 -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이루후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君たちはどう生きるか> 엔딩 OST를 들으면서 제주어로 ‘훗날에'의 의미를 가진 이 말이 머리 속에 남았다. 어른들을 위한 애니라는 말을 듣고 이미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었다. 그래서였는지는 모르지만 예상외로 거칠었고, 그리고 서글펐다.
<그대들은…>은 2023년 일본의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감독을 맡고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제작하였다. 2013년 영화 《바람이 분다》 이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10년 만의 복귀작이다.
제주 섬에서 살면서 ‘시절이 그랬다’…는 말을 못박듯 들었던 때문이었을까..도 싶다. 전쟁이라는 괴물은 어떤 답도 허락하지 않는다. 이해당사자에서 멀어질수록 날카롭게 찢기면서도 아픔에 둔감해진다. 누구를 돌아본다는 건 허용되지 않는다. 선택지 없는 극한의 상황에 밀어넣으면서도 알아서 감내할 것을 강요한다. 그 것을 당연히 여기고 애써 알려고 하지 않는다. 몰랐다고 하지만 어쩌면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최고작이라고 불리는 영화 <판의 미로-오필리아의 세개의 열쇠>도 그랬다. 동화인 줄 알았지만 스페인내전으로 빚어진 잔혹한 현실과 버무려지며 자기희생과 현실도피의 상처가 흥건히 남겨졌었다.
<나디아연대기>류의 판타지를 꿈꾸며 영화관에 들어섰던 것을 몇 번이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영화는 피를 흘리는 여자아이 오필리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내레이션이 친절하게 1944년 내전이 끝난 시점의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소녀가 겪은 일을 설명하지만 인간 세상을 동경하던 지하세계의 공주가 지상으로 몰래 나와 모든 기억을 잃고 죽었다는 이야기는 아주 많이 슬픈 동화다. 여자 아이가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영화의 흐름은 인간의 ‘탐욕’을 서슬 퍼렇게 들춰낸다.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나무를 죽이고 있던 두꺼비와 식탐을 어쩌지 못해 것으로 누군가가 희생된다. 나를 위한 최선의 결과라고 해서 허용될 수 있는 것이 어디까지인가의 결론은 (마치 동화처럼) 자기희생으로 점철됐지만 그것으로 모든 상황을 ‘이러니 됐다’하고 정리할 수는 없다.
<그대들은…>이 던진 것도 비슷했다. 보드라운 그림선과 익숙한 배경이나 등장인물 설정 같은 것은 동화에 가깝지만 내용도 그렇지 않았다. 앞선 작품들에서 던졌던 메시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점은 분명 아쉬웠다. 그렇다고 없었는가 하면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자연, 환경, 인간관계, 가족 등을 소재로 삼은 것이나 복잡한 인간의 감정과 사회적 이슈를 섬세하게 담는 기법은 여전했다.
앞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어린 소녀가 성장의 과정을 겪으며 자신의 용기를 발견하는 내용을 그렸다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사랑과 용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자연과의 공존,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용기를 담았다.
<그대들은…>은 전쟁에 휩쓸리며 성숙하지 못하고 토막난 유년의 기억과 어른이 되면서 알게 된 것들이 맞물리며 어쩔 수 없는 비틀림과 균열을 드러낸다. 그 것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시절을 살았던 보통의 사람들’이라는 전제를 놓고 보면 군데군데 아프고 찔린다.
그래서 묻는 것만 같다. ‘그래서 어떻게 살 것인가’하고.
이상한 동물들의 안내를 받아 만난 이세계를 다스리는 큰할아버지가 돌 조각을 건네며 '악의 없이 사는 삶'을 강조하는 것도, 다른 시간 속에서 현재를 지키며 살아 있는 엄마 히미도, 일곱 명의 할멈과 목각 인형도, 심지어 불편한 상황들을 피하기 위해 자해하는 소년도…일단 기억한다.
그보다 더 강렬하게 각인된 것은 와라와라를 공격하던 펠리컨의 ‘말’이다.
인간의 삶, 생명력을 상징하는 와라와라는 굶주린 펠리컨들의 공격을 받는가. 그 와라와라를 지키기 위해 히미는 불을 쓰고 불길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펠리컨 한 마리는 “그러게 와라와라를 잡아먹지 않았으면 될 것 아니냐”는 소년에게 “우리는 와라와라를 잡아먹기 위해 이 섬에 끌려온 것이다. 이 섬엔 먹을 게 없다. 우리는 더 높은 곳으로 날아봤지만 계속해서 이 지옥 같은 섬으로 떨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이 장면을 놓고도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내게 그 장면은 누구를 가해자로 또 누구를 피해자로 나눌 수 없는 비극에 대한 경고였다.
그래서 마지막 엔딩곡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했다. 어쩜 그 가사가 ‘마지막‘을 건 노 거장의 메시지일지도 모르겠다.
この道が続くのは
続けと願ったから
また出会う夢を見る
いつまでも
一欠片握り込んだ
秘密を忘れぬように…
"내면의 갈등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힘차게 넘어갈 수 있을 때, 세상의 문제들과 마주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이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 미야자키 하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