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제주 살아요 : 여건과 기회, 가능성을 향한 도전
제주의 봄과 여름 사이 코끝을 행복하게 하는 감귤꽃은 한해 감귤 산업을 가늠하는 주요 기준이다. 노지 감귤의 싹 트는 시기와 꽃 피는 시기, 꽃이 피는 양, 열매 커짐, 시기별 당도와 산도 등 노지감귤 주요 생산 지역 14곳의 생육 조사를 진행하고 이를 ‘과수생육품질관리시스템(감귤)’을 통해 관리한다. 꽃이 일찍 피고 기온편차가 클 때는 가지치기, 비료 주기 같은 농작업 일정을 유연하게 조정해야 하고 꽃이 피기 건 어린 순이 갑작스러운 저온이나 서리피해를 보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인다. 이런 관심 속에 비로소 피어난 꽃들을 같이 보고 즐기자는 감귤꽃 테마 행사가 지난해부터 제주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열리고 있다.
제주 그리고 농업‧농촌진흥 정책 기관이 주요 식량자원도 아닌 감귤에 이렇게 공을 들이는 이유는 감귤산업이 제주의 ‘뿌리산업’이기 때문이다.
제주 감귤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감귤의 흔적은 1000여년 전 고려에서 시작된다. 「고려사」세가 권7에는 문종 6년(서기 1052년)에 '탐라국에서 바치는 귤자의 정량을 1백포로 개정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공물의 양을 수정한다는 내용만으로도 최소한 그 이전부터 감귤을 진상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고려사에는 백제 문주왕 2년 (서기 476년) 4월 탐라에서 방물(方物)을 헌상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시대 사료에서도 감귤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 9년(1427년)엔 제주도 찰방(察訪) 김위민이 감귤 진상으로 인해 발생한 폐단을 임금에 고했다는 내용이 남아 있다. 당시 관청에서 감귤 열매의 숫자를 세어 이후 수확철이 됐을 때 그 수량을 채우지 못하면 절도죄로 다스렸다.
이후 세조 원년(1455년)에 나온 감귤 관련 기록에는 '나라에 중요한 감귤을 수급하는 일에 진력(盡力)하되, 백성에게 위해가 없도록 하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즉위한 왕이 지역 문제로 살펴야 할 만큼 중요한 자원이었지만 수탈 횡포가 지긋지긋했던 제주도민들은 고종 31년(1893년) 진상제도가 사라지자 귤나무를 고사시키거나 아예 묘목을 뽑아버리는 등 재래종을 잃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런 감귤이 ‘대학나무’등으로 불리며 지역 경제를 일으켜 세웠던 배경에는 지역‧시대 맞춤 투자가 있었다.
일본에서 품종 개량이 이뤄진 온주감귤이 제주에 들어온 시기는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한 1910년대 전후다. 이 시기 제주에서의 감귤 산업의 가능성을 본 식자층에서 온주감귤을 들여왔다고 알려진다. 갑신정변의 주역이었던 박영효가 1907년(융희 원년) 9월부터 제주로 유배 와 3년 동안 머물면서 온주감귤 과원을 조성했다는 설과 프랑스 출신 아멜 타케 신부의 ‘제주의 제1호 온주감귤나무’가 대표적이다.
1908년 3월 5일자 해조신문 '제주에서 온 소식(濟州來信)' 제하 기사에서 박영효가 제주에 와 보니 제주 사람들이 가난해 힘들게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자본을 대 귤나무를 심어 흥업자성(興業自成)케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같은 해 4월 18일자 '박영효가 학업을 일으키다(朴氏興學)' 제목의 기사에는 박영효가 제주에 외국의 과목(과일나무)을 심어 그 자본으로 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했다고 쓰고 있다.
에밀 타케 신부는 1911년 일본에 있는 동료 선교사로부터 감귤나무 14그루를 받는다. 한라산에서 자생하는 왕벚나무를 보내준 답례였는데 타케 신부는 이 나무들을 서귀포시 서홍동에 있는 당시 홍로성당(현 면형의집)에 심어 주민들에게 감귤 재배를 장려했다. 이 14그루 중 1그루가 지난 2019년 4월까지 무려 108년을 살다가 고사(枯死)했는데, 현재 이 나무의 후계목이 60여년 째 뿌리를 지키고 있다.
산업화 가능성에 대한 접근도 꽤 오래전부터 이뤄졌다.
매일신보 1924년 3월 31일자에는 당시 조선총독부가 제주도에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제주가 일본 내지(본토)의 감귤산업 주산지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 정도로 감귤 재배지로서 유망하고, 이에 감귤산업을 장려하는 정책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그 때부터 제주 감귤산업이 융성했냐면 사실 그렇지도 않았다. 제주에 규모를 갖춘 감귤농원은 1913년 일본인 자본가가 서귀읍 서홍리에 조성한 것이 처음이었다. 1948년 등장한 우리나라 최대 감귤 농원이라는 타이틀은 이 농원을 매입해 가꾼 고 강창학 선생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지역 차원에서 감귤 재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제주4‧3과 한국전쟁 충격이 가라앉은 1955년부터 였다. 그리고 1965년 제주출신 재일교포들 사이에서 고향을 돕자는 움직임이 시작됐고 ‘제주개발회’ ‘제주도민회’ ‘제주친목회’ ‘경제인회’ 등 다양한 이름으로 고향 감귤 묘목 보내기 운동을 전개한다.
묘목을 심는 것은 제대로 키워 경제적 성장을 이루겠다는 약속이나 다름없었다. ‘대학나무’라는 말도 이 무렵 등장했다.
1968년 감귤 가격은 10㎏당 2398원이었다. 당시 기준으로 조생감귤 성목 한그루당 보통 60~70㎏이 생산됐는데 한 그루당 1만 5000원 안팎의 소득을 올릴 수 있었다. 서울대 등록금 1만4050~3만350원이었던 시절이었음을 감안하면 서너그루만 잘 키우면 하숙비‧책값‧생활비를 보태주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렇게 붐을 이뤘던 감귤산업이었지만 지금은 새로운 품종 도입과 생산량 조정 등 구조조정의 흐름 속에 서 있다. 그런 감귤 산업에 굳이 ‘제주형 뿌리 산업’이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싶지만, 감귤꽃이 문화관광 콘텐츠로 부상한 최근의 상황은 꽤 중요한 힌트가 된다.
감귤‘산업’이라고는 하지만 1차산업에 치중한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단순 생산‧유통 구조에서 시장 조정 능력을 확보하며 성장하는 산업화 과정에는 사회적‧경제적‧문화적 변수를 수반한다. 감귤농업이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는 우려 속에서도 지역 특화의 위치를 지키며 품종 개량 등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로컬’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지역 성장 키워드에 감귤을 기반으로 한 도전과 결과물이 지역 경쟁력을 갖는 배경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는 최근 지방 계정 ‘지역 창업초기’ 분야 위탁운용사로 최종 선정됐다. 제주에서 모태펀드 위탁운용사가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18년부터 전국 창조경제혁신센터 중 최초로 지방정부의 출연금을 활용해 우수 보육기업과 유망 스타트업에 시드머니 투자를 하고 있다. 2021년에는 제주지역 엔젤투자 활성화를 위해 민간 액셀러레이터인 크립톤과 손잡고 개인투자조합 1호를 결성했다. 제주 최초의 팁스(TIPS) 운영사로 선정돼 투자생태계를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고 한 바 있다. 주요 출자자로 제주도민과 제주 출신의 성공한 사업가들이 참여했다. 지난해는 제주센터 전담기업인 카카오를 비롯해서 은행권청년창업재단(D.CAMP)과 제주은행, 상장기업인 이오플로우와 모비데이즈, 성호전자 등 다양한 투자파트너가 LP(유한책임조합원)로 참여하는 벤처투자조합 1호도 결성했다.
IMM 인베스트먼트 홍콩, 한국벤처투자와 스타트업 글로벌 오픈이노베이션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지역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 기회 확보와 공동사업 모델을 모색하고 있다.
‘기회’로 연결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제주도 감귤의 역사적 유산과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의 현대적 투자생태계 조성 노력은 지역 경제에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흐름들이 서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제주 감귤 산업의 역사를 통해 지역 자원을 활용하고 그 가치를 증진시키는 방법을 배울 수 있으며, 이는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의 현재 활동과 목표에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감귤 산업에서 보여준 지역적 투자와 개발의 중요성, 지역 자원 활용과 가치를 증진시키는 방안은 제주창조혁신센터의 현재 투자 전략에 반영될 수 있다. 과거 제주 감귤 산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지역 맞춤형 투자와 개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도 이와 유사한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제주 지역의 독특한 문화적, 경제적 조건을 고려한 투자를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감귤 산업의 변화와 그에 따른 적응은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가 직면할 수 있는 도전과 기회에 대한 교훈을 제공한다. 감귤 산업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다양한 시장 조건에 적응해야 과제를 풀어가고 있다. 이는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가 일구고 있는 투자생태계에서도 일어날 일이다. 이미 진행했고 학습했던 과정들이 현대적 전략과 맞물리며 제주지역 경제 발전을 위한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구축할 때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의 과정에서 눈을 뗄 수가 없게 됐다.
* 이 글은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J커넥티드> 2024년 봄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