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제주 살아요 : 제주에서 '로컬'을 살핀다는 건
“불휘 기픈 남간 바라메 아니 뮐새 곶 도쿄 여름 하나니, 새미 기픈 므른 가마래 그츨새 내히 이러 바랄에 가나니…”
로컬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면 늘 닿게 되는 단어가 있다. 뿌리다. 단단하게 깊게 때로는 넓게 주어진 환경에 맞춰 건강하게 자리를 잡는 것으로 그 다음을 생각하게 하는 존재다.
운 좋게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로 강한소상공인성장지원사업의 일부가 됐다.
지난해는 심사를 하느라 일정 거리를 두고 봤다면, 올해는 ‘백년’테마에 피칭 교육 지원을 하면서 몇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 그 차이는 확연하다. 이전의 경험이 가능성과 수익 모델에 집중됐다면, 이번은 존재의 이유와 확장성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는 지를 집요하게 보게 됐다.
일부러 시간을 쪼개 중소상공인희망재단과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가 운영한 ‘로컬 브랜딩 아카데미’에 참가한 데는 사실 그런 이유가 있었다. 전 과정까지는 아니지만 진지함과 열정을 확인하기에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챙겼다.
특강이 많았던 만큼 진지했던 현장에서는 종종 보는 광고 카피가 굴러다녔다. “성공은 ‘한 번에 빠르게’가 아니라 ‘하나씩 바르게’”.
더운 기운에 높은 습도까지 힘들만도 한데 인사이트를 얻으려는 진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백년’가게+소공인 그룹의 파이팅이 인상적이었다.
업력만 최소 30년, 길게는 조선 철종 때부터 짧아도 2대 경영인인 백년가게나 15년 이상의 스킬을 쌓은 백년소공인은 존재 자체가 ‘로컬’이다. 다음에 대한 고민은 지역과 상권 생존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매출이나 확장성 측면에서 ‘힘에 부친다’고 느껴지는 것은 현재의 기준이 일방적이고 단호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지금에 이르기 까지 지키고 쏟아왔던 것들이 오늘을 만든 ‘헤리티지’다, 그리고 오늘 다시 용기 내 발을 떼고 움직이는 과정들이 새로운 헤리티지가 될 거라 믿는다.
유심하게 본 팀 중에 ‘경동한과’와 ‘영천목탁공예사’ 얘기를 조심스럽게 남겨본다. 사심 없이 그들이 전한 진심은 꼭 공유해야 겠다 싶다.
경동한과는 강원도 강릉시에서 30년 넘게 한과류를 제조‧판매하고 있는 업체다. 1대의 전통 제조기술을 2대째 이어가고 있는 승계기업이다. 그렇게 30년 지켜온 전통 한과의 맛에 새로움을 더해 앞으로 70년, 적어도 100년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지원 사업에 도전했다.
한과의 역사는 꽤 길다. 기록 상 삼국시대부터 전해 내려온다, 그 종류도 다양해 강정이나 약과, 과편, 다식 같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다.
강정은 모양과 고물에 따라 이름이 결정되는게 넓적한 사각형으로 만든 것은 산자, 작은 것은 강정이라 부른다. 여기에 튀밥을 통으로 묻히면 튀밥강정이나 산자, 부숴 고운 가루로 묻히면 세반산자와 세반강정이라 부른다. 이 밖에도 부스러기를 모아 만든 빙사과, 튀긴 나락을 붙인 매화강정이 있다.
약과는 유밀과의 일종이다. 모양과 크기에 따라 대약과, 소약과, 모약과, 다식과, 만두과, 연약과와 밀가루를 반죽해 모양을 빚어 튀긴 매작과, 차수과, 중배끼, 요화과, 상승과, 한과, 채소과 등이 있다.
실과를 익혀 만든 과자라는 ‘숙실과’(熟實果)도 있다. 이중 ‘초(炒)’는 실과를 제 모양 그대로 꿀에 넣어 조려 만들고,‘란(卵)’은 실과를 삶거나 쪄 으깬 뒤 다시 원래의 모양을 빚어 만드는 것으로 구분한다.
그보다 강릉시 사천면 한과마을 얘기주터 훑어야 해ㅛ다.
강릉시 사천면은 모래가 많은 냇물이 흐른다고 하여 모래내라고 불리는 시골 마을이다. 지금은 모래내한과마을로 더 유명해진 이곳은 30여 년 전만 해도 먹고 사는 걱정이 끊이지 않았던 마을이었다. 130년 전부터 마을에서 이어져 온 전통한과 제조 기술의 맥이 마을을 살힐 때까지 그랬다. 지금은 ‘다음’이 시급해 졌다.
마을애는 규모는 다르지만 한과 간판을 내건 45곳이 경쟁 중이다.
경동한과도 그 중 하나다. 전 공정 100% 수작업, 각종 인공 화학물 無첨가, 철저한 위생관리를 하는 것만으로는 늘 부족했다. 직접 바리스타 자격을 취득해 커피한과를 개발했지만 이내 유사 제품의 틈바구니에서 개성를 잃었다.
‘전통’이란 단어에서 느껴지듯 경동한과의 제품은 많이 예스럽다. 지켜야 할 것에 대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동한과에 마음이 가는 것은 경동한과 대표의 절실함이다.
세상과 눈과 수어로 소통하는 대표는 대면평가와 1차 오디션 모두 통역사와 동행했다. 이번 로컬브랜딩 아카데미도 함께 였다. 타이트한 일정에 생소한 단어가 쏟아지는 특강이 현장에서 통역사는 뒷통수에 눈을 둔 채 쉬지 않고 귀로 들은 정보를 대표에게 전달했다.
명함을 주고 받으며, 술잔을 기울이며 나눈 소소한 얘기도 모두 전했고, 대표의 입 역할에 충실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마음과 생각이 전해졌다. 적지 않은 나이에 아들 벌인 로컬 브랜드 참가팀들 사이에서 새로운 것을 습득하고 원하는 것을 찾아내는 작업이 쉬울 리 없지만 한번의 흐르러짐 없이 전체 일정을 완수했다. 파이널 오디션에서 꺼낼 결과물이 그래서 더 기대가 되는 건 나 혼자만은 아닐터다.
목탁에 진심인 안진석 2대 경영인은 프로그램 시작 전, 동틀 무렵 제주 관음사에 다녀왔다고 귀띔했다. 주요 거래처(?)이기도 하거니와 다음 걸음을 떼기 위해 마음 수련을 했다는 말에 ‘이거 뭐지?’했다. 영천목탁공예사는 입술 목탁과 좌탁, 죽비 등을 오로지 수작업으로 만드는 업체다. 요즘 기준으로 말하면 생산성이 아쉬운 업체다. 살구나무 뿌리에서 목탁이 되어 소리를 얻는데 까지의 과정이나 뉴진스님 열풍으로 목탁 판매가 늘었다며 시장 가능성을 점치는 목소리나 눈빛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1차 오디션을 거치면서 기가 많이 죽었다.
목탁은 불교에서 사용되는 의식용 법구이자 타악기. 목어에서 유래되었다. 탁(鐸)은 원래 중국에서 사용했던 악기로 작은 종과 비슷하다. '목탁'이란 명칭은 '나무로 만든 탁'이란 뜻이다.
불교계에서 목탁은 매우 흔하여 자주 들을 수 있고, 법회나 예불, 독경 때에도 자주 연주된다. 연주방법은 우드블록과도 유사하게, 속이 비어 있는 목어의 겉면을 박자에 맞추어 가볍게 두들기면 된다.
빈 속에서 공명이 일어나기 때문에 굉장히 투명하고 맑은 소리가 나며, 소리에 관통력이 있다. 서구에도 목탁을 보고 템플블록이라는 유사한 악기를 만들기도 했다.여기서 밑줄 그를 부분 하나. 우리나라에서는 들고 치는 작은 목탁이 일반적인 반면, 중국과 일본에서는 크고 무거운 목탁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수행용 외애도 소장용으로 한국 목탁을 찾은 사람들의 국경이 없다.
흔히 명상을 할 때 싱잉볼을 떠올리는 것처럼 마음의 수양이 필요한 이들에게 두드림은 깨달음의 다른 이름이다.
‘무작정 때리다보면 지구라는 이 목탁도 언젠가는 텅텅 소리가 날 테지’하고 노래한 시인이 있을 정도이니 오죽하랴 싶다.
작은 것은 손잡이가 있어서 직접 들고, 큰 것은 주로 바닥에 놓고 막대로 두드려 소리를 낸다. 큰 것 중 일부는 실제로 물고기 모양으로 조각하고 화려하게 채색하기도 한다.
물고기는 눈꺼풀이 없어 눈을 감지 않는데, 이것이 불교에서 중요시하는 '깨어있는 마음(smrti, 念)'을 연상시킨다고 한가. 마침 목탁의 소리에도 수행자의 주의를 환기하는 유용함이 있어, 목어 혹은 목탁의 등을 두드리는 것이 '번뇌를 토해내게 하는 것'이라는 여러 의니가 보태진다.
어떻게 풀어내는가에 따라 할 것이 더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40년 넘게 이어가고 있는 ‘좋은 일’을 이제 30대인 2대 경영인이 어떻게 확장시킬 수 있을 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에둘러 말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해서 ‘돈이 되겠냐’는 지적을 목탁을 만드는 과정으로 이해했다.
살구나무 목탁 완성품 하나가 탄생하기까지 무려 3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어렵게 구한 살구나무를 최소 2년간 상하지 않도록 건조시키는 게 작업의 시작이다. 이어 도끼로 나무의 반을 갈라 토막으로 만든 후, 가마솥에 물을 끓여 24시간 수증기로 찐다. 열기를 식히고 다시 1주일간 말린 뒤, 눈사람 모양의 형태를 만드는 목선반 작업에 들어간다. 속을 파내고 손잡이까지 만든 뒤 다시 1~2년간 그늘에서 말리는 건조작업을 거친다. 그렇게 건조한 뒤에도 건조상태가 온전하지 않으면 가차없이 땔감용으로 분류한다. 3년간 찌고 말린 목탁 10개 중 진짜 목탁이 되는 건 3개 정도에 불과하다.
목공예기술 자격증과 문화재수리자격증에 이어 불상 등 문화재 복원 기술까지 확보한 2대 경영인은 “입술 목탁은 우리나라에서만 제작합니다. 일본과 중국 등 불교 문화가 전파된 곳에서는 모두 한국에서 목탁을 구입해 갑니다. 꼭 계속 이어갈 힘을 찾아낼 겁니다”고 말했다.
HDC 현대사업개발 박희윤 개발본부장이 쓴 <도쿄를 바꾼 빌딩들>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중소 오피스밖에 없고 노인들만 찾는 쇠락한 니혼바시를 살리려면 어떤 점포가 새롭게 들어와야 할까?’ 미쓰이부동산은 가까이에서 그 답을 찾는 데 성공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들과 함께 이 지역에서 성장해온 오랜 친구 같은 노포들이 어찌 보면 성숙한 소비자들이 찾는, 새로운 가치를 모두 지닌 최고의 점포들이었다. 만든 사람의 철학과 정성이 느껴지는 물건, 환경에 대한 배려와 지역의 역사와 개성이 녹아 있는 제품과 서비스. 니혼바시가 쇠퇴했다고는 하나 에도 최고의 번화가였던 만큼 이런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노포들이 즐비했다. (‘에도 시대라는 콘텐츠로 잊혀진 도심을 부활시키다’ 중)‘
’오래된‘을 읽는 디벨로퍼(Developer)의 관점으로 좁게 읽는다…고 해도 젊고 반짝이며 힙한 것만으로 사람 사는 공간을 지켜내는 데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지역의 가치와 사람을 살피는 마음으로 보는 ’백년’도, 이런 의미다. 지역에 오래 뿌리 내린 기업들의 힘은 수익이라는 기준으로만 평가할 수 없다. 그들이 변하려고 한다는 것은 지역성이라 부른 것의 변화가 이젠 대세하는 것을 말하는 증표다. 그들로 인해 형성된 생태계가 위기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로컬에서 앵커라고 부르는 것은 그 단어가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있었다. 그렇지 않은가. 사람 사는 곳에서 그들만의 특화된 무엇이 사는 이유가 되는 것이 다름아닌 로컬이다. 옛 것을 밀어내고 새로운 것을 쌓아올린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지역에서 성장해온 오랜 친구’의 가치가 제대로 작동할 때 로컬의 힘이 더 건강해지고 오래 가지 않을까. 어쩌면 다행인 것은 오래 지역에 있는 ‘친구’들은 좀 성공했다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 더 있을 이유를 찾는다.
몇 번인가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많이 배우고 느꼈다. ‘단단’한 기업과 오래 기억되는 ‘명품’에는 그 뒤를 지탱하고 있는 시간과 가치와 사람이 있다.
로컬에 진심이라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