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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 Nov 25. 2024

'위로'라는 이름의 보상

삶, 공감하기 - 이승환 데뷔 35주년 콘서트 ‘THE HEAVEN'

내 생애 첫 콘서트는 ‘김현식+한영애’듀오 무대였다. 당시 그럴싸한 무대가 없었던 제주에서 그들을 품을 공간이 보험사 제주지점 강당이었다. 음향이 어떻고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순수하게 음악, 목소리에 빠져들었던 순간은  이후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라이브를 잘 하는 뮤지션이 첫 경험이다 보니 다음을 선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너무 대중적이거나 음악성이 모자라거나 하는 나름의 엄격(?)한 기준으로 콘서트를 평가했었다. 그만큼 까다롭게 공연을 고르고, 쉽게 감동하지 않는다.



내 생애 가장 빛났던 시간에


'이승환'은 뭐랄까. 내 가장 빛나는 시간을 관통했던 음악인 중 하나다. 처음 노래를 들었을 때는 라디오 음악방송에 귀를 박고 있었고 마이마이-CDP-MP3 등등을 거치며 목소리를 각인했다.

그 사이 대학에 가고, 공부와 취업의 갈림길에서 부대꼈다. 정신차리고 보니 감상코드는 엄마와 딴판인 아들을 키우고 있다. 

불과 며칠 전 이승환의 음악을 얘기하면서 예상치 못했던 취향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알고 보면 조금은 올드한 취향의 아들은 김광석의 감성을 얘기했고, 엄마는 알알이 가사에 박힌 감정을 얘기했던 것 같다.

사실 이번 콘서트는 ‘운명’이었다.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하다시피 했었는데 마침 일 때문에 동행했던 지인과 지난 신해철 추모 콘서트 얘기를 하다 이승환 제주 공연으로 대화가 이어졌고 혹시 남아있을지도 모를 티켓을 찾아 정신없이 정보를 뒤졌다.

그리고 우연인 듯 당*에서 미리 예매를 해뒀는데 가지 못해 발을 구르던 이승환 팬을 만났고, 감사하게도 대신 열심히 환호를 지르고 즐기겠다는 다짐과 함께 티켓을 양도받았다.

이 모든 것이 불과 몇 시간 만에 이뤄진 일이라는 것까지, 드라마 같은 일이 벌어졌고 드라마보다 더한 현장을 만났다.



드림팩토리 제공


'마치 내 마음처럼...'


‘좋은 날’로 시작해 ‘너만을 사랑해’까지. 120분+ 공연 시간 동안 앉아있었던 건 30분이 채 안되는 것 같은 뜨겁다 못해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솔직히 몇 곡은 가사가 낯설어 입만 벙긋댔지만 언젠가의 행복했던 기억(‘화려하지 않은 고백’)과 최근 사랑했던 곡(‘화양연화’)까지 내게 그런 열정이 있었나 싶었을 정도의 텐션으로 즐겼다.

35th라는 건 그만큼 깊게 #노력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공연 시작부터 오래된 팬의 이야기를 하며 ‘늙수구레’코드를 흘렸지만, 그것은 마치 마법처럼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오늘’로 소환했다.

‘노태우 정권 때 데뷔’라는 말 한마디로 상황 정리. 그 다음은 누구나 편안하게 그때와 그 사이와 지금을 즐기면 되는 일이었다.

‘마치 내 마음처럼…’이라고 생각하다 불현듯 뭔가 새롭고 입바늘처럼 겉도는 느낌이 무얼까 하는 고민에 빠졌다. 가사를 곱씹어보니 뭔가 알 것 같은게 있었다. 언젠가 글을 쓰는 지인과 육감적이고 살 떨리는 느낌의 표현을 써보자고 열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 자꾸만 옆길로 빠지는 것이 금방 낙담했던 일이 있었다. 그 때 내린 결론은 ‘경험 부족’. 애절하고 가슴아픈 노래 가사가 찡하고 가슴을 울리기는 하지만 ‘아마 그럴거야’하는 조금은 거리감이 있는 느낌이라 내 것 같지 않았다고나 할까. 영혼을 태울 만큼 마음을 내줄 그런 뜨거운 사랑이 아직 모자랐나 보다 하면서 대신 ‘제리 제리 고고’를 외치고 ‘히어로’를 찾는 나로 돌아왔다.

당* 은인 덕에 너무 괜찮은 자리에 앉아 날아오는 종이비행기를 온몸으로 맞았지만 그것도 좋아서 웃고 있는 나를 본다. 바로 앞줄에 엄마를 따라온 10대 딸과 20대 아들이 처음에는 엉거주춤 따라 일어서고 앉다가 나중에는 저절로 그루브를 타는 것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늙수그레...그리고 늦바람의 마법


마치 시공간이 멈춘 듯한 힘. 이승환의 35주년 콘서트 ‘THE HEAVEN’의 한 줄 평이다. ‘35th’는 자신이 미친 듯 앞만 보며 달려온 시간에 대한 정리라고 했지만 객석에서는 이미 ‘다음’을 준비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같이 나이를 먹어 늙수그레한 팬들이라 각자 얼마 안되는 팔로우라도 좋으니 내년 3월 서울 공연 얘기를 알려 달라고 하는데, 다들 ‘할게요’ 보다 ‘갈게요’를 외치는 것을 보면. 

공연의 감흥이 아직 다 가시지 않아 그날부터 플레이리스트에는 그의 곡만 가득이다. 생각해보면 알고 있는 곡은 자꾸 기억나고, 듣지 못한 곡들이 몹시 아쉽다. 마치 늙수그레의 마법처럼. '초라하고 나이들어보이는'의 뜻은 은근한 자극이다. '정말 그래?'하는 반감을 건드리고 은근슬쩍 늦바람을 일으킨다. 나이가 들어 '언제 또...'의 미련이 덕지덕지, '아직 괜찮을걸?'하는 자기위안이 차곡차곡 쌓인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화장이 밝아졌다. 아이라인에 힘을 더 준다. 음악에, 가사에 설렐 수 있으니 그럴 자격은 충분하지 않은가.





어른이 되어가는 사이
현실과 마주쳤을 때
도망치지 않으려 피해가지 않으려
내 안에 숨지 않게 나에게 속지 않게
그런 나 이어왔는지
나에게 물어본다
부끄럽지 않도록
불행하지 않도록
더 늦지 않도록  <이승환 '물어본다' 중>


무겁죠 무섭죠 그대 앞에
놓인 현실이
배운 것과 달리 깨우침과
달리 점점 달리 가죠
알아요 보여요 끝이 없어
주저앉고픈
일만 하는 나와 얻지 못한
나의 고단한 지금들을
착한 그댄 실패들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이 없어요
곱이곱이 시련마다
선택의 지혜가 쌓이죠
fall to fly 날기 위해 내게
날개가 있다는 걸 알기 위해
닫혀진 문 앞에 언제까지
서성일 거죠
우물쭈물 말고 뛰어보는 거죠
포기의 용기로
날아요 날아요 날아올라요
fall to fly 날기 위해 내게 <이승환 'fall to fly'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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