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윤주 Mar 30. 2022

쿤, 달콤함

생을 지속하는 이유가 '살아보지 않은 내일'이 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한 것 같다.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믿음, 또는 낫진 않더라도 다를 거라는 기대, 낫거나 다른 내일을 내가 감당하는 기분이 유쾌할 거라는 예측. 나는 애석하게도 그 믿음/기대/예측이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기질을 갖고 태어나진 못했다. 최악을 상상하는 버릇, 최악일 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비, 최소화하지 못했을 때 망가지게 될 나 자신. 그런 것들에 익숙했다. 그런 것들에 익숙하다 보면 '유쾌'라는 감정에는 익숙하지 못하게 된다.


유쾌라는 감정을 잘 모르는 채 내일, 내일, 또 내일을 맞이하는 일은 고단하다. 그래서 늘 고단했다. 지난 책에 (지겹게...) 썼듯이 내성적인 사람이라 '사람'에 대한 꿈과 희망에 기대지도 못했다. 그런데 삶은 가끔 기적을, 마치 오다 줏었다는 무심함으로 던져주기도 한다. 오다 줏었다는 무심함으로 불행을 던져주는 것과 같은 이치로. 나에겐 서른 넘어 만난 몇몇 인연, 삶이 내게 던져줬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기적처럼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내가 아주 천천히, '내일'을 믿고 기대하고 감당하는 쪽으로 발을 옮기는 데 돌다리가 되어준 사람들.


첫 번째 기적, 나의 친구 '쿤'. 그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 밀란 쿤데라에서 따서 부르려 한다. 쿤을 처음 만난 건 옛 직장에서였다. 그는 저자로 나는 편집자로. 편집자가 된 지 1년이 되지 않았을 때, 첫 책을 내기 위해 회사를 방문한 그와 대면했다. 상사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다지 많은 말을 하지 않았고 그 또한 첫 미팅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너무 많은 일을 한꺼번에 하던 시기였어서 사실 나는 쿤의 원고를 꼼꼼히 읽지 못하고 미팅에 참석했지만 후반부 원고 마무리를 부탁하며 "작가님, 많이 기대하고 있겠습니다"라고 편집자답게 말했다.


놀랍게도 책은 1만 부를 찍었다. 책이 잘 안됐으면 나는 결국 '선'을 넘지 못했을까. 안된 책을 사이에 둔 저자와 편집자가 나눌 이야기란 많지 않으니. 하지만 우리는 1만 부를 찍는 동안 자주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인터뷰나 촬영 건으로 만나고 그 김에 다음 책을 구상하고 그 김에 사적인 얘기를 하고 그 김에 울고 그 김에 서로의 아픈 부분을 짐작하고 결국에는 그걸 농담 삼는 단계까지 나아갔다. 쿤은 언젠가 말했다. "며칠 굶으면 죽을 줄 알고 꼼짝 안 하고 누워만 있었는데 목이 너무 말라서 일어났잖아. 웬만하면 사람이 목말라서 못 죽어요."


나는 쿤의 외모를 정말 좋아한다. 콧잔등을 살짝 찡그리며 둥글고 시원한 눈매로 짓는 웃음, 그 커다란 눈에 순식간에 차오르는 눈물, 상대방을 바라볼 때 더없는 호기심으로 깜빡이는 눈꺼풀, 조금 긴장할 때 힘 들어가는 어깨와 분주해지는 손, 폭소가 잦아들며 숨을 고를 때의 리듬.. 실은 이런저런 묘사가 불필요하게, 쿤은 그저 누가 봐도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다. 한 출판 관계자는 내게, 왜 비주얼 마케팅을 하지 않느냐고 노골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웃어넘겼지만, 나는 쿤의 진짜 아름다움은 그 아름다움을 본인이 전혀 의식하지 않는 데 있다는 걸 안다. 그는 그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를 통해 종종 '그런 게 뭐가 중요해'라는 표정을 지을 줄 안다. 한국 사회에서 강요되는 여성성으로서의 쑥스러움이 아닌, 존재의 보잘것없음을 오랜 어둠 속에 체득한 이의 쑥스러움이 있다. 나는 쑥스러움이 없는 사람을 좋아해본 적이 없기도 하지만, 그의 쑥스러움이 전해주는 우아함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쿤 앞에서는 캄캄한 순간들이 놀랍게 가벼워진다. 나는 언젠가 쿤에게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외로움을 모르는 사람 같다고. 또 한번 나의 터널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내일이 전혀 궁금하지 않은 터널. 내일도 터널일 것 같은 터널. 내일도 터널일 바에야 왜 눈 뜨고 처먹고 똥 눠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또) 그랬겠지. 내 말에 섞인 부러움을 시샘을 그는 알았을 것이다. 그가 스스로 외롭다고 느끼지 않기까지 지나왔을 길고긴 터널을 내가 모른 척하며 투정 중이라는 것 또한. 쿤답게 쿤은 대답했다. "윤주 씨, 오래오래 살아서 나중에 할머니 돼서도 너는 어떻게 그렇게 외로움을 모르냐고 물어봐줘요. 그리고 내가 윤주 씨 죽으면 빌어줄게요. 다시 태어나지 않도록."


그는 누구에게 어떤 말이 달콤할지를, 설탕 없이 아는 사람이다. 내가 죽은 다음에 나보다 더 늙은 할머니가 되어서, 내가 인간으로도 고양이로도 꽃으로도 모래로도 태어나지 않기를, 그리하여 영원히 평안하기를 빌어줄 사람을 나는 갖게 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생의 터널에서 굳이 멈추지 않아도 되었다. "쿤은요? 혹시라도 내가 더 살게 되면 나도 쿤을 위해 그렇게 빌어줘야 해요?" 내가 되물었을 때 쿤은 잠시 말 없다가 화들짝 대답했다. "요즘 행복해서 잠깐 혹할 뻔했는데, 우리 서로 똑같이 빌어줘요."


지금 쿤이 사는 곳은 내가 사는 곳보다 8시간이 느리다. 내게 어떤 슬픈 마음이 생겼을 때, 이 슬픔이 쿤의 세계에서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니, 8시간이 지나기 전에 혼자 수습해보면 없던 일이 될지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으로 버틴다. 더는 그에게 징징대지 말고. 쿤 또한 어떤 새로운 터널을 통과하고 있을지 모르니. 꿋꿋이 걸어나가 먼 훗날 미련도 두려움도 없이 서로의 절멸을 빌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으로.

매거진의 이전글 봄, 관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