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괜찮다는 걸 배우며
1.
그러니까, 원래는 이런 책을 쓰려고 했던 게 아니다. 다음 책으로 무얼 쓸지 이런저런 구상을 하고 있었다.
2.
2022년 여름부터 이듬해 초까지, 아팠다. 많이, 갑자기. 두 번 입원했고, 직장을 그만두었다. 글 같은 건 전혀 쓸 수 없었다.
3.
2023년 봄부터 조금씩 썼다. 계획했던 글들이 아니었다. 한 시기를 지나가기 위해 쓸 수밖에 없었던 글. 그게 책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솔직히 염두에 두지 못했다. 그냥 썼다.
4.
쓰면서 나아졌다.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편집자님이 말해주었다. 운이 좋았다.
5.
계속 썼다. 계속 나아졌다. 일상이 평온해지면서 체중이 5kg 늘었다. 매일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50층 정도까지 한 번에 거의 쉬지 않고 오를 수 있게 되었다. 평생 가지지 못해본 것, 체력이라는 것을 조금 느끼게 되었다. 5kg이 고스란히 감소해 다시 예전 체중으로 돌아왔다.
6.
찐 거나 빠진 거나, 아무도 못 알아보는 게 함정.
7.
책이 나왔고, 메인 카피가 이렇게 달렸다. “우울이 가르쳐준 작고 소중한 삶의 풍경들과 / 다친 영혼을 수선하는 나긋한 마음의 문장들”
8.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전부.
9.
그냥 인생이라는 게 그런 것 같다. 예상하지 못하는 것. 이제 알았지 뭐야.
10.
책이 정말 예쁘다. 이렇게 예쁜 책을 갖게 되다니. 인생은 살아볼 만한 것 같다. 이제 알았지 뭐야.
11.
곧, 편집자로도 다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