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연습을 하면서 느끼는 것들
1. 나는 평생 노래를 했지만, 정말로 제대로 할 줄 아는 곡이 없었다.
말 그대로이다. 여기서 "제대로"의 정의가 좀 중요할 텐데, 그냥 가수가 부르듯, 완벽하게 부른다는 것이 아니라, 삑사리 없이, 모든 음이 적당히 맞고, 리듬에 맞게 부르는 것. 모든 노래를 파고 들어가보면 나는 이 노래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고 따라 부르고 있었다. 한참 부르다 보면, 음을 틀리게 알고 있었던 경우가 많다. 박자도 마찬가지고, 당김음도 마찬가지이다. 불러보고, 모니터링 하고, 가수가 부른 것을 들어보고, 다시 불러보고, 모니터링 하고, 가수가 부른 것을 들어보고... 무한 반복 해야 겨우 조금씩 나아진다.
2. 고음
한국 노래에서 고음은 핵심 중 핵심이다. "고음이 중요하다"는 사람도 있고, "고음은 전혀 중요치 않다. 키를 낮춰 불러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300km까지 나가는 자동차를 타는 것과 100km까지 나가는 자동차를 탈 때 안정감은 다를 것이다. 300km나가는 자동차가 80km 를 주행하고 있을 때 훨씬 안정감을 준다. 고로 고음은 일단 가수라면, 즉 노래하는 사람이라면 장착해야 할 무엇이다.
2.1. 빠사죠?
사춘기가 오면서부터 2옥타브 레가 올라가면 벌써 목이 뻐근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쉽게 말하면 노래하기가 **맞아지는 이 구간, 힘든 구간을 빠사죠 구간이라고 한다. 남자의 경우 2옥타브 미에서 라 정도의 음역이 된다. 더 **맞은 것은 한국에서 거의 모든 노래는 이 구간의 음을 가장 많이 쓴다는 점이다. 이 부분을 얼마나 아름답게 내느냐가 노래를 잘하는지를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터넷에 보면 엄청나게 많은 보컬 코치들이 엄청나게 많은 팁과 연습법을 공개하고 있다. 심지어 현직 의사가 나와서 내시경을 보여주면서 성대의 모양을 알려주기도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연습량만 확보할 수 있다면, 연습법은 인터넷에 널리고 널렸다는 것이다. 예전 모스크바의 한 대학 성악과 교수님을 직접 알현할 기회가 있었는데, 두 가지 희망적인 얘기를 들었다.
하나는 창현씨는 일단 가진 목소리가 좋다고 한다(아마 내 인생에 들어본 칭찬 중 가장 기분 좋은 칭찬이었던 듯... 빈말일 지라도). 다른 하나는 고음은 연습하면 누구나 타고난 음역대를 조금은 극복할 수 있다는 것.
최근에 연습하면서 고음의 핵심 중 하나가 호흡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배에 힘을 꽉주고 공기를 빠르게 내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가지 조건이 있어야 하는데 공기가 폐에 먼저 차 있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숨과 소리가 같이 드나드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번째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노래 중간중간에 호흡을 잘 해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숨을 안 쉬고 노래를 부르다 보면 결국 어느 순간에 막힌다. 가수와 일반인의 차이가 고음 구간에서 가수는 소리를 작게 내면서 호흡을 배분한다. 일반인은 고음 구간에서 숨을 처음에 다 써버려 후반부로 갈수록 남은 숨이 없어 헐떡댄다. 남은 숨이 없을 때 고음을 내려고 하면 결국 목을 쥐어 짜게 된다. 극복했다는 건 아니지만, 결국 목을 쥐어짜는 습관은 호흡을 나눠서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데에서 비롯됐다는 걸 알았다.
3. 리듬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재미있는 사실은 가수처럼 잘 부르는 방법이 '호흡'에 있다고 했는데, 그 호흡을 제 때 만들어내는 비결이 바로... "리듬"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가수들은 제 때 호흡하기 위해서 때로는 숨을 쉬고, 때로는 숨을 참으면서 노래하기 좋은 상태를 만들어 낸다. 원곡에 보면 숨 쉬는 타이밍이 이미 박자에 녹아들어가 있다. 그러니까 아주 재미있게도, 고음을 잘 하기 위해서는 리듬을 잘 타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4. 나쁜 습관 없애기
나의 경우에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엄청난 연습으로(그 때도 인터넷에 떠도는 온갖 훈련법과 발성법을 익히며, 그래서 글로 배운 노래), 어느 정도 성대 힘이 받쳐줘서 고음이 나와준 케이스였는데,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못하다 보니 온갖 나쁜 습관이 몸에 다 배어 있었다.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고 알게 된 사실은 근육이 퇴화하듯, 목힘빨, 성대근육빨로 나오던 고음이 어느 순간부터 나오지 않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빠사죠가 두려워졌고, 그 두려움으로 노래는 더욱 경직되게 들렸다.
최근 여러 발성법에 대한 자료를 찾다 보니, 오히려 이런 노화(?)가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에는 고음이 나와도 좋지 않은 방법으로 나왔기 때문에 그럭저럭 노래를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란 걸 알았으니, 답은 이미 나왔다. 좋은 길을 찾아 가면 된다.
세상엔 수많은 선생님과 가이드가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선생님은 이 사람이다.
결국 내 귀가 가장 좋은 선생님이다. 녹음한 걸 들어보고, 불러보고, 들어보고, 불러보고, 무한 반복.
5. 모든 연습은 비슷
내가 영어공부할 때(지금은 아주 주기적으로 매일 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하는 방법도 비슷했다.
미드보기-> 문장추출 -> 따라해보기 -> 무한 반복 -> (어느 정도 됐다고 생각하면) 업로드(어디에 업로드 했는지 안 알려줌) --> 피드백
이런 식으로 거의 매일 하다 보면 좋은 영화에 있는 주요 대사들이 머리 속에 들어오게 되고, 은유적인 표현도 가끔씩 귀에 쏙쏙 들어온다. 예를 들어, "a rabbit hole"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이 사람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비유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곧바로 하게 된다.
연습에서 중요한 건 자기 스스로 자기가 한 것을 곧바로 체크하고, 문제점을 파악한 뒤 다시 해보는 것이다. 이게 엄청나게 지루하지만, 엄청나게 중요한 작업이다.
노래가 쉬웠으면 금방 그만뒀을 것이다.
어렵고 안 되니까 재밌고, 오기가 생긴다.
영어도, 프로그래밍도, 노래도 마찬가지다.
6. 미션
지금 나의 목표는 이미 부를 줄 안다고 생각했던 노래를 단 한곡이라도 좋으니, 내가 듣기에 그럴 듯 하게 불러보는 것이다. 아주 쉬운 곡은 근처까지도 간 것 같다. 그런 곡들이 누적이 되면 어느 순간 나도 사람들 앞에 가서 노래를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