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스트로 번스타인>
나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의 서사 전개 방식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영화는 크게 현재 시점 레너드 번스타인(브래들리 쿠퍼)의 회고 인터뷰와, 번스타인과 펠리시아 번스타인(캐리 멀리건)의 만남·이별·재결합을 다룬 과거 이야기로 나뉜다. 전자는 16대 9 화면비로, 후자는 4대 3 화면비로 다뤄진다. 그리고 과거 시점의 이야기는 번스타인과 펠리시아가 만나 사랑을 키우는 흑백 부분과, 번스타인이 다른 남성과 양성애를 나누며 펠리시아와 멀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컬러 부분으로 나뉜다.
내가 우선 동의하기 힘든 건 이렇게 단계를 구분 짓는 서사 전략의 유의미성이다. 특히 액자 형식의 이 영화에서 액자 틀 역할을 하는 현 시점의 번스타인 인터뷰는 액자의 내용물이라고 할 수 있는 과거 서사와 조응하지 않는다. 게다가 번스타인과 펠리시아가 멀어졌다가 재회하는 부분은 설명이 무척 부족하고 완결되지 않는 정보는 파편처럼 튀어서 산만하게 보이기도 한다. 특정 시점에 집중하는 최근 전기영화의 흐름과 달리, 번스타인의 25세 성공부터 노년기까지 긴 기간을 모두 다룰 필요가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미국 잡지 ‘뉴요커’의 리차드 브로디는 “영화는 전반적으로 솔직함이 부족한데, 이는 논란과 복잡성을 철저하게 피하는 것과 맞물려 영화의 중심에 있는 인물의 복잡하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특징을 제대로 정의하지 못한다”고 평했는데, 나도 이 평에 대체로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실패작으로 규정하는 건 머뭇거려진다. 영화산업의 고도화와 상업화로 영화는 본질적인 ‘뭔가’를 잃어가고 있는데,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에는 그 ‘뭔가’의 가능성이 담겨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뭔가’는 가장 인간적인 형상으로서의 얼굴과 그것을 담은 이미지의 생존력이다. 자크 오몽은 영화가 얼굴을 자유롭게 다루게 된 그 순간부터 예술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했는데, 영화를 예술로 만드는 그 얼굴 이미지 바로 그것 말이다.
무성영화 시대 배우의 얼굴은 관객을 매혹했다.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의 우스꽝스러운 동작은 시각적 즐거움을 줬지만, 종국에 관객의 심장을 움켜쥔 것은 클로즈업된 그들의 얼굴이었다. 웃음 뒤에 그 의미를 골똘히 따져보는 것 같은 채플린의 얼굴과, 관객의 웃음과 무관하게 슬퍼 보였던 창백한 낯빛에 납작한 모자를 눌러 쓴 키튼의 얼굴은 비극과 희극이 등을 맞대고 있는 인간 삶의 딜레마를 스크린에 현시했다. 칼 드레이어의 〈잔 다르크의 수난〉에서 화형에 처할 위기에 빠진 잔 다르크의 얼굴을 스크린 가득 클로즈업한 이미지는 그 자체로 운명과 신성의 모순, 그리고 인물의 영혼의 상처에 관객이 교감하게 한다. 이런 무성 영화들엔 소리가 없었지만, 이미지 그 자체로 절규했다.
뛰어난 유성영화는 무성영화와 경쟁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요새 많은 영화는 인물의 얼굴 이미지를 서사 전개를 위한 동력 마련의 연료로 휘발하고 만다. 예컨대 많은 영화가 샷/리버스 샷으로 인물 간 대화를 다룬다. 그러나 이때 클로즈업은 단순히 대사 전달이나 표정 전달에 그치고, 클로즈업 샷이 존재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외면한다. 벨라 발라즈의 논의대로 영화에서 인간 얼굴의 특권적 지위는 클로즈업이라는 기술적 조건으로 가능해졌는데, 요즘 많은 영화의 클로즈업은 얼굴 이미지를 특권적 지위에 올려놓기보다는 서사 전개의 부차적인 도구로 전락시킨다. 그러니까 얼굴 클로즈업 이미지는 그 자체로 생존력 또는 아우라를 갖는 게 아니라 서사의 도구로서 기능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잦아졌다는 의미다.
그런 관점에서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엔 최근 영화의 경향과 다른 결이 있다. 예를 들어 뉴욕 필하모닉의 부지휘자였던 25세 번스타인이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고 리허설도 없이 전국 라디오 방송에 중계되는 연주를 지휘하게 된 순간, 그러니까 일약 클래식 음악계의 스타가 되는 순간 카메라는 번스타인의 화려한 손동작이나 관객의 열렬한 박수에 주목하지 않는다. 영화의 관심은 번스타인의 표정이다. 카메라는 번스타인의 얼굴로 클로즈업해 들어가고 번스타인의 얼굴은 4대 3 비율 스크린에 가득 찬다. 번스타인의 표정은 오묘하다. 성공을 예감하면서도 그 성공이 발 디딘 박빙의 아슬함을 예상한 듯한 표정. 이 장면의 번스타인 얼굴은 오래 기억에 남는데, 그건 영화 전체적으로 아슬아슬하게 전개되는 번스타인 이미지와 맞물려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클로즈업된 번스타인 얼굴 그 자체 이미지의 힘 때문이기도 하다.
주목할 점은 이 클로즈업 샷이 지휘를 부탁하는 전화를 번스타인이 받는 앞선 장면과 성공적인 연주를 마치고 박수를 받는 뒷 장면을 인과적으로 끈끈하게 연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소 서사의 연속성과 종속성에서 벗어나 있고, 기능적으로 작동하지도 않는다. 독립적인 장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즉 이때 번스타인의 얼굴 이미지는 장면과 장면을 연결하는, 그러니까 서사 전개에 종속된 역할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서사적 의미로 온전히 파악되지 않는 잔여물로 남는다. ‘그 이상의 의미’ 또는 ‘잔여물’은 스티븐 히스의 용어를 빌리면 영화를 예술로 만들어내는 ‘과잉’이며 영화에 매혹되게 만드는 ‘질료적’인 물성이다. 바로 많은 무성영화가 갖고 있었지만, 유성영화 시대에서 잃어버린 얼굴 이미지의 힘이다.
시작은 번스타인이었지만, 영화가 더 애정하는 건 남편의 외도를 지켜보는 펠리시아다. 펠리시아를 담아내는 카메라 샷은 특별한 데가 있다. 펠리시아가 (번스타인과 처음 만날) 파티에 가기 위해 버스에서 내려 걷는 장면을 보자. 펠리시아가 영화에서 처음 등장하는 장면인데, 버스에서 내려 걷는 그를 카메라는 정면에서 지켜보고 펠리시아는 바스트 샷 사이즈에 도달하자 멈춘다. 펠리시아는 카메라에 비스듬히 서지 않는다. 카메라 렌즈와 그의 어깨선은 평행해서 펠리시아가 카메라의 대상으로서 존재하는 피사체라기보다는 그 자체의 인격으로 존재하는 주체로 선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런 샷은 반복된다. 흑백 장면에서 컬러 장면으로 바뀔 때 펠리시아는 남편의 공연을 지켜보는데, 이때도 정면으로 선 펠리시아를 카메라를 담는다. 펠리시아는 남편의 성공적인 공연을 지켜보며 환희에 가득 찬 표정을 짓다가 이내 얼굴은 불안하게 바뀐다. 흑백 장면에서 컬러 장면으로 추동하는 힘은 펠리시아의 표정에서 나온다. 그리고 펠리시아가 딸, 시동생과 테이블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봐도 딸과 시동생은 180도 선을 지키는 듯 비스듬하게 카메라가 비추지만 펠리시아만큼은 정면에서 더 클로즈업해 화면에 담는다. “레니(레너드 번스타인)가 그리워”라고 말하기까지 펠리시아의 표정을 요동친다. 또 펠리시아가 번스타인의 말러 공연에서 번스타인과 재회했을 때 벅찬 표정도 카메라는 정면에서 담는다. 무성영화적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장면들이다.
이런 샷들은 대응 샷을 찾지 않는다. 펠리시아의 얼굴 이미지로 끝나며, 그 이미지 자체로 그 장면이 갖는 의미는 충족한다. 암에 걸린 펠리시아를 친구들이 방문하는 장면에서 펠리시아는 문득 남편 번스타인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을 응시한다. 카메라는 클로즈업으로 펠리시아의 얼굴을 담아낸다. 연주가 흐르자 피를 뱉어내던 그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퍼진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펠리시아는 죽음을 앞둔 자가 흘리는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고 번스타인과 친구들은 그를 둘러싸고 안는다. 앞선 클로즈업과 뒤이어지는 샷은 대응 샷이 아니다. 마치 별개의 일처럼 보인다. 서사적 동기화의 지배를 받지 않는 이런 장면은 펠리시아를 클로즈업한 장면을 죽음을 앞둔 마지막 꿈처럼 보이게 만들며, 펠리시아 얼굴 이미지의 질료적 물성과 아름다움에 관객이 주목하게 한다.
배우 출신의 브래들리 쿠퍼가 이 영화를 감독하면서 품었던 욕심은 최근 많은 영화가 잊고 있는 배우 얼굴 본연의 매력을 담아내 보겠다는 것 아니었을까. 특히 쿠퍼의 관심은 번스타인의 천재성이나 논란 많은 사생활이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펠리시아의 얼굴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어 제목은 적절하지 않다. 원제 〈마에스트로〉를 한국에선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으로 바꿨는데, 이 영화는 사실 번스타인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번스타인을 바라보는 펠리시아에 대한 영화다. 어쩌면 펠리시아의 얼굴에서 쿠퍼는 라틴어 어원 masister(선생님)에서 시작한 ‘마에스트로’의 의미를 찾았을지도 모른다. 영화가 끝난 뒤 잔상으로 남는 건 펠리시아의 얼굴과 표정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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