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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노을 Peter Noul Bae Jul 31. 2018

제약영업현장 REPORT

[칼럼] R&D 꽃이 피어난 화단엔 'R&D영업' 있다 

누군가 나에게 "제약업계에서 무슨 일을 하십니까?"라고 물어보면 나는 서슴지 않고 매일 매일 거절당하는 일을 하고 삽니다"라는 답을 주곤 한다. 매일 매일, 매 순간 끊임없이 제안하고 거절당하는 감정노동, 즉 제약영업을 한다는 것이다.

거절당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우선 전화를 걸어서 거절당하기로 하고 서신(우편, 이메일)을 보내고 기약 없이 답을 기다리다가 거절당하기도 하고, 만나자고 하고 만나서 거절당하기도 한다.(물론 만남 자체를 거절당하기도 한다.)

예전에 중외제약, 한미약품을 다닐 때도 그 회사의 제품과 기술을 해외에 판매하는 일을 주로 했고, 창업한 이후에는 국내 보건의료 기업의 제품의 해외 제약 및 의료회사에 소개하여 팔거나, 반대로 해외제약 관련사의 제품을 한국제약사에 소개하여 파는 일도 해오고 있다.

제약회사에서 영업사원은 의약분업 전인 1990년대에는 DM(Detail Man)이라고 불리우기도 했으나 의약분업이 시작된 2000대부터 보험약가를 받는 처방의약품(Prescription Drug, ETC Drug)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MR(Medical Representative)또는 SR(Sales Representative)이라는 호칭이 쓰이게 되었다.

우리나라 제약산업의 성장사를 살펴보면 6·25전쟁이후 태동기(1950~60)에는 우선 의약품 자체가 부족하여서 만들기만 하면 팔리는 시대였으며, 병원이나 약국의 수도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의사나 약사, 기타 유사 의료인이 약을 갖고 다니면서 팔기도 했다. 오랜 역사의 동화약품, 유한양행이나 중외제약 같은 회사들이 대표적인 기업이고, 일본이나 미국에서 통관을 거친 수입의약품 또는 미군부대 제품이 암시장에 나오면 바로 동나기도 했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의료보험제도(1977)가 도입되어 국가의료 재정이 생기고 한미약품(1973년 창립) 같은 국내 토종 신생 제약사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는데, 규모가 영세하였지만, 복제의약품을 조금씩 만들고 조제하면서 수입 대체 효과도 거두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 들어서는 물질특허제도가 도입(1987)되면서, 제약회사들이 단순히 카피 유사제품만 만들다가 본격적으로 연구소를 만들기 시작하고 특허에 대한 대비도 하게 된다. 이러던 제약회사는 1990년대들어서 큰 변화를 맞이하는데 바로 의약분업제도(1999)의 도입이다. 기존에 약국영업(OTC) 위주의 영업에서 병원처방영업(ETC)으로 패턴이 변동되었고, 이러한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회사는 고성장을 시현하고, 피동적으로 안이하게 대응한 회사는 역성장 및 부도등의 된서리를 맞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의약품분업환경 하에서 제약 영업사원의 역량이 중요시 되었다. 한미약품 같은 회사는 Amlodipine의 염변경 개량신약을 개발하고 회사 영업력을 총 집중하여 제네릭으로 오리지널(Pfizer, 노바스크)의 매출액을 뛰어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여 업계를 놀라게 하면서, 현재 비약적 성장의 R&D기반을 이때에 마련하기도 하였다.

제약업계는 1990~2000년대의 성장기를 거치면서 2010년대 들어 포지티브시스템 도입과 리베이트 쌍벌제 도입 등으로 드디어 R&D와 글로벌(수출)에 의한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맞이하게 된다. 전에는 없던 R&D 전문기업이 생기기 시작하고, 내수에만 의존하던 제약기업이 다국적 기업 및 일본 제약기업과 기술이전 계약 및 완제품 수출 등으로 활발한 교류를 하게 된다.

제약산업은 대표적인 지식 R&D 사업이어서 개발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고, 그만큼 많은 리스크(Risk)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큰 규모의 수출, 라이센싱 계약이 맺어지면 해당회사의 주가가 폭등하기도 하는데 보통 이런 경우 R&D 개발자에게 그 공로가 전달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여기서 간과되기 쉬운 부분이 바로 큰 의미에서 '제약영업(국내판매, 해외수출, 라이센싱, 사업개발)' 담당자의 피땀어린 노력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제약회사에 R&D라는 많은 크고 작은 구슬들이 있지만, 이러한 구슬을 예쁘게 닦고 꿰어서 보기 좋게 어울리는 사람(파트너 회사, 처방의사)에 파는 사람들은 바로 제약 영업사원들인 것이다.

이들은 오늘도, 병의원, 약국, 도매상, 학회 현장에서, 해외 출장지에서, 한여름의 무더위에도 양복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제품 브로슈어와 샘플을 들고 수많은 거절을 당하며, 회사를 대표하여 때로는 휴일도 없이 격한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의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경우, 패잔병 또는 부상병이 되거나 심한 경우 전사하여 제약영업의 전투 현장에서 잊혀지기도 한다.

제약사는 이 부상병들을 후방으로 후송하여 다시금 영업현장에서 싸울 수 있도록 몸(영업원의 체력)과 마음(감정노동의 상처) 그리고 머리(제품지식)를 치료해 줄 필요가 있으며, 최전방 영업현장에서 피흘리며 싸우는 영업원들이 실적이라는 승리를 거두도록 후방 지원사격(새로운 파이프라인 개발 학술 임상결과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2020년을 바라보는 국내 제약산업은 그 어느 때보다 R&D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이 R&D의 산물을 회사 이익을 실현하는 사업의 결과물인 매출로 만드는 인력은 바로 제약영업인들이라는 생각을 이 시대의 제약 경영인들이 잊지 않았으면 한다.

제약 R&D와 영업은 제약산업의 성장을 이끄는 쌍두마차이며, 이 두 바퀴가 조화롭게 잘 굴러서 대한민국 글로벌제약사의 탄생이 조만간 이루어지기를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

마지막으로 이른 무더위와 장마에 고생하는 대한민국 제약영업인들 모두의 건승을 기원한다. 

필자 배노을 대표는 중외제약, 한미약품 등에서 근무하였고 제약무역 컨설팅업 포함 제약산업에 약 18년 간 종사하면서 현재 제약 원료 소싱 및 해외 제약 설비, 제약 수출입 컨설팅 등을 주 업무로 하는 비엔피코리아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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