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인 삶과 모험가의 삶 어떤 삶이 더 의미 있을까?
어제(5월 5일)가 공산주의(Communism) 이론 창시자 칼 마르크스(Karl Marx) 탄생 200주년이었다고 합니다.
마르크스는 독일계 유대인인데 독일에서 공부하고 공산주의 이론을 수립하고 이를 받아들인 레닌이 제정러시아를 공산화 시켰습니다.
저는 짧게나마 공산주의를 경험한 적이 있는데, 약 20년전 군대제대하고 이스라엘 키부츠(Kibbutz) 농장에서 약 6개월간 살면서 세계각국의 또래 청년들과 일해본 적이 있습니다.
키부츠는 이스라엘 건국(1948년)전에 러시아계 유대인들이 속속 팔레스타인 땅으로 복귀하면서 생겨났습니다. 주로 아랍으로 둘러쌓인 이스라엘 국경지역에 GP(Guard Post) 형태로 생겨났으며 러시아계 이주민들과 현지 유대인이 섞이면서 군락을 이루고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거나 아주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공동생산 공동소비의 Communism Community를 만들어 발전시켰습니다.
제가 거주했던 키부츠 바암(Bar-am)은 이스라엘 북부 시리아 국경지역에 있었는데, 시리아 이슬람 민병대가 로켙포 공격을 하기도 해서 대피소인 지하 벙커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바암 키부츠에는 의료기 공장 과수원 수공예품 제조시설 등등 다양한 상업시설이 있고 키부츠 멤버와 각국의 Volunteer 청년들은 6시에 기상하여 6시 반부터 13시 반까지 약 6시간정도 일하고 자유시간을 얻습니다.
하루 반나절은 일하고 반나절은 노는 시스템입니다.
1998년 국가적으로 IMF를 맞이한 상황에서 미래에
와 진로 취업에 대한 불안간을 갖고 갔던 이스라엘에서 이러한 공산시스템을 접하고는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고 정말 칼 마르크스가 꿈꾸었던 공산주의 사회의 지상낙원이라는게 바로 러시아계 이민자들이 세운 이스라엘 키부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키부츠 멤버나 세계각국의 발룬티어 청년들이나 동일한 일을 하고 동일한 식사를하고 파티나 행사에 같이 어울리고 오후 1~2시 이후 일과가 끝나면 각종 스포츠(축구장 수영장 각종시설) 영화(영화관) 등 다양한 활동들을 할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완벽한 시스템으로만 보였던 키부츠도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키부츠 멤버 중에 청년들이 답답하고 단조로운 지상낙원(?!)의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키부츠 영구 멤버십을 과감하게 버리고 예루살렘이나 하이파등 대도시로 또는 해외 유학으로 키부츠를 떠났고 이런 젊은이들의 빈자리를 Volunteer 시스템(키부츠 멤버가 아니어도 일정기간 외부인을 한시적으로 멤버로 받아들이는 시스템)으로 유지해 나갔습니다.
또 한가지 제가 몇몇 키부츠 멤버들의 집에 초대 받아서 간적이 있었는데 그들은 거의 컴퓨터 티브이 조명등의 전기용품의 전원을 잘끄지 않았습니다.
사유재가 아닌 공유재여서 인지 전기절약하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약 6개월간 키부츠에 살면서 제 자신도 식상함을 느껴서 이후 두달간 요르단-이집트-터키를 여행하다가 이태리 로마에 들러 귀국했습니다.
이와 같이 평등을 지향하는 공산주의의 가장 큰 맹점은 사유재산과 개인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거나 제한적으로 인정하기에 개인과 사회 국가의 혁신과 발전에 걸림돌이 되어 오늘날 미소 냉전의 싱거운 결말을 맺게되지 않았나 합니다.
조금 화제를 바꾸어 요즘 영특한 젊은이들이 창업 또는 민간기업에서 경력을 쌓을 생각보다는 공무원 시험에 젊음을 불사르고 있습니다.
도전과 혁신, 모험의 삶보다는 안정되고 오래할수 있는 일의 기회를 얻는데 젊음을 소진하고 있습니다.
지금 같은 사회 분위기에서 개인의 선택에 뭐라 할말은 없지만 이러한 흐름만은 기성세대가 바꿔줄수 있도록 같이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칼 맑스의 탄생 200주기에 20년전 공산주의 사회였던 이스라엘 키부츠를 그리며 우리사회의 현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