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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ram Feb 11. 2021

감정을 마주하는 법을 가르치다.

아이를 하늘로 보내는 교사의 방법

시몽이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은 금요일이었다.

당시에는 토요일도 오전 수업을 했던 때였기에, 나는 어찌 되었건 토요일의 수업을 준비해야 했다.

.

토요일은 온전히 담임 시간이었다.

금요일 저녁에 동료 선생님의 배려로 집에 돌아와 소파에 멍하니 앉았다가, 울다가... 내가 무엇을 어떻게 준비했는지 그 과정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시몽이의 예쁜 독사진을 한 장 골라 인쇄를 하였고,  집에 있던 나름 제일 좋은 액자를 골라 넣었다. 그리고 흰 국화 한 다발도 준비를 했었는데 그것을 내가 나가서 샀는지, 누군가에게 부탁을 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음 날 출근길에 들고 갔던 기억이 일으니 내가 산 것이리라 추측은 해 보지만, 제정신이 아니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어찌 된 과정인지 그 사이의 기억 전혀 없다.

.

내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 된 듯, 마음 따뜻한 동기 선생님 두 분이 집 앞으로 나를 태우러 와 주셨는데 차 안에서 어떤 얘기를 했었는지 또한 기억이 없다. 아마 내 머릿속에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생각만 있었지 싶다. 교에 도착한 후, 아이들이 오기 전에 서둘러 교실에 들어가 시몽이의 책상 위에 준비한 사진과 꽃다발을 올려두고 잠시 머물렀다.




아침 조례시간,

검은색 코트를 입고 교탁 앞에 선 나를 보며 아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도가 심한 ADHD 증상을 보이는 경태조차 미동도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나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말해야만 했다.


"어제 시몽이가 갑자기 아파서 병원에 갔던 거 알고 있지?" 하고 말을 꺼내었는데, 궁금함을 참지 못한 성민이가 되물은 한 마디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 그래서 시몽이가 죽었나요?


순간 나는 수업이라는 현실에 직면했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 사실을 전해주려면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을 말해야 맞겠으나, 아이들에게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것은 시몽이의 죽음에 대한 사실여부가 아니라 죽음이라는 현상을 이해하고, 상황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아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된단다.


나는 Yes도, No도 답하지 않고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꽃이 시들고 나무가 쓰러지고, 동물들도 죽고...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언젠가는 죽는데,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어떤 사람들은 오래오래 살다가 나이가 많아서 죽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나이가 많지 않아도 병에 걸리거나 사고가 나서 죽게 되기도 한다고. 그래서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나 어른들이 아니어도, 때로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아기가 죽는 일도 생긴다는 장황한 이야기를 했는데 아이들은 참으로 진지하게 집중해서 들어주었다.


그리고 너무나 피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시몽이가 많이 아팠다고. 시몽이는 아직 어린 나이지만 많이 아파서 먼저 하늘나라로 가게 되었다고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우리도 언젠가는 죽을 거라는 이야기를 굳이 덧붙였다. 선생님도, 너희들도 언젠가 죽게 되면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이것이 종교적인 이야기라 누군가에게는 거부감이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렇게  이야기를 한 것은 아이들에게 종교적인 믿음을 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리고 희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아이들의 모습


나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시몽이의 죽음을 알리고, 시몽이에게 마음을 전할 시간을 주었다. 그것은 시몽이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시몽이를 보내는 남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고, 어쩌면 그보다 더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나는 초를 켰고, 레퀴엠을 틀었다.

글을 쓸 수 있는 아이는 단 2명, 글을 쓸 수 없지만 말을 할 수 있는 아이는 하고 싶은 말을 실무원 선생님이 써 주셨고, 또 다른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기도를 해 본적이 있는 사람은 기도를 해도 되고, 시몽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마음 속으로 하면 시몽이가 다 들을 수 있다고 말해주며 각자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1. 녀석이 오색찬란한 무지개를 그린 편지지를 직접 꾸몄다. 그리고 너와 함께 해서 정말 좋았다고, 앞으로 하늘나라에서 아프지 말고 건강하고 행복하라는 편지를 썼다. 누군가에게는 친구를 보내는 흔해 빠진 편지일 수 있겠으나,  늘 비관적인 말만 늘어놓고 색깔은 검은색만 고르던 녀석의 편지였기에 그것은 아주 특별했다.


2. 심한 ADHD... 특수학교 내에서조차 전교에서 유명한 녀석이 1ㅡ2교시가 이어진 90분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조용히 침묵 속에서 내 이야기를 듣고 편지를 썼다.


3. 또 다른 한 녀석이 조용히 나와서, 내가 틀어놓은 레퀴엠을 끄고는 V.O.S의 '보고 싶은 날엔'을 재생했다. 영문을 잘 몰랐던 나에게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시몽이가 잘 듣던 노래라고 말해주었다. 가사가 이 상황과 너무 잘 맞아떨어져서 또 한 번 울컥했다.


4. 나는 아이들의 마음을 들고 시몽이 입관 때 같이 넣어달라고 전해드리기로 했는데, 그 날 시몽이에게 가기 전 학교에 출근해서 교실 칠판 한쪽 구석에 써 둔 편지 ㅡ 선생님이 시몽이에게 너희들 마음 잘 전해주고 올게 ㅡ 가 다음 날까지 지워지지 않고 있음을 보고 또 한 번 울컥했다. 왜냐하면 그때 우리 반에는 매 시간이 마치면 꼭 판서를 지워야 마음이 편한 동헌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동헌이는 어떤 마음으로 내 글씨를 지우지 않고 남겨둔 것일까.




 사실 우리 반에서 내가 아이들과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난 뒤에, 학교에서 공식적으로는 학생들에게 시몽이의 죽음을 알리지 않기로 결정되었기에 이것은 우리 반끼리의 비밀 아닌 비밀이 되었다.      지적장애학생들, 그리고 더욱 예민할 수 있는 정서장애 및 정신질환이 있는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을 물론 이해하고, 필요한 조치였다고 생각한다. 공식적인 지침이 내려오기 전에 내가 먼저 저질러(?) 버리긴 했지만, ㅡ 당시 나는 공식적인 지침을 여쭙고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한 초짜였다. ㅡ 나 역시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시몽이와의 이별을 마주하기로  결정한 것은 담임으로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우리 반 아이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담임으로서 아이들에게 숨길 자신이 없어서 아이들을 믿기로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시몽이 내일 학교 온다, 내일은 온다...


자폐 특징 중 하나인 반향어가 많은 영주 어머님께서 알림장으로 고민을 전해주셨다. 영주가 집에서 '시몽이 내일 학교 온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고...


알림장의 글을 읽고 영주를 보았다. 창가에 서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영주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영주야, 시몽이는 지금 어디 있을까?"

"......"

한동안 말이 없는 영주에게 다시 물었다.


"영주야, 시몽이 내일 학교 올까?"

"아니"

"그런데 왜 엄마한테 시몽이 내일 온다고 했어?"


"시몽이 보고 싶다...."


영주는 이해하고 있었다.

내일 온다고 말하던 것은, 내일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볼 수 없는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나도......"


나는 조용히 옆에서 영주의 등을 토닥이며 함께 한동안 그 옆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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