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조업 엔지니어의 외국계 회사 적응기
입사 한지도 1년 정도 지나면서 다른 팀들과 의견을 조율하거나 각을 세워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럴 때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지거나 다소 흥분하는 경우가 있었나 보다. 나는 최대한 안 그렇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팀장님이 미팅 끝나고 나를 조용히 부르시더니 자제 하라고 하셨다.
LG에 있을 때 생각해 보면 그 땐 정말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생산팀, 개발팀, 연구팀등 많은 팀들과 일을 하고 또 도움을 받으면서 혼나기도 많이 혼나고 대들기도 많이 대들었다. 나 뿐만 아니라 과장님, 부장님들도 전화로 또는 미팅에서 언성을 높이시는 경우도 있었고, 미팅 중에 분위기가 안 좋거나 나가 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생산팀에 개발런(Run) 관련해서 결재를 받으러 갔을 때 신입들 혼내기로 유명한 생산과장님이랑 싸운 기억이 있다. 솔직히 막내들은 생산런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하고 주임연구원들이 만들어 놓은 템플릿에 개발 스펙만 바꿔서 싸인 받으러 가다. 당시 기분이 안 좋으셨는지 결제판을 던지시면서 이거는 런 진행 못 한다고 생산일정이랑 스펙 고려 안하고 이따위로 써 오냐고 찾아 오지 말라고 하셨다. 한두번은 죄송합니다 하고 사정사정해서 넘어갔는데 나도 이번은 못 참아서, 저도 귀한 집 자식입니다. 제가 만든 런도 아니고 저도 위에 결제 받아 오라고 해서 왔는데 이렇게 욕 하시고 집어 던지시면 저보고 어쩌라는 겁니까
"욕을 하시려면 저희 팀장님 한테 직접 욕하시죠"
그 분도 어이가 없으셨는지 그냥 꺼지라고 하셨다. 물론 다음날은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결재 맡으러 갔다.
나이키에 있으면서 단 한번도 미팅중에 언성이 높아지거나 얼굴이 붉혀지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다들 나이스 한건지 나이스한척을 하는건지 문제 상황이 있을 것 같으면 미팅 끝나고 따로 이야기 하자고 할지언정 적어도 미팅은 잘 마무리 한다. 한번은 미팅 끝나고 팀장님께 여쭤본적이 있다. 분명히 우리가 불합리한 상황이었는데 어떻게 거기서 화를 안 내고 넘아가셨냐고. 팀장님이 말씀 하시기를 자기도 화가 나지만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 적어도 나이키에서는 지는 거라고 했다. 자기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면 상무님들 사이에서 조율하게 놔두거나 아니면 완곡하게 거절하면 된다고 했다.
뭔가 명확하게 딱 떨어지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이런 애매모호한 방법은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화를 내거나 얼굴을 붉히는 것 보다는 훨씬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미국가서는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고, 그 때 당시 내 미국 매니저가 한 조언이 있었다.
"It's not professional"
짧지만 울림이 있었고, 화가 나는 상황이 생길 떄마다 이 글귀를 떠올린다. 이렇게 조금씩 성장해 가나보다.
"나이스 하지 않으면 나이스 한 척이라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