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에서 남의 스타벅스 일기 들춰보기
카페라떼 숏 사이즈만 먹던 나는 뭐했나...
오전 아들 학교 라이딩 해 주고 일주일 4회가량은 스타벅스에 간다. 딱 1시간 머무른다.
스벅 이용객 주차가 1시간 무료 이기 때문이다.
책도 읽고 글도 끄적이며 시간을 보낸다.
주차 관리소 할아버님 두 분이 삼사일씩 교대하시는데 두 분 다 내 차번호를 알아보시고 주차증조차 받지 않으신다. 감사합니다.
해외에 나가면 꼭 스벅을 간다. 온통 낯선 환경에서 스벅은 고향의 노스탤지어 감성을 다독여 준다. 항상 마주하던 분위기(다소간 차이는 있지만)와 냄새, 그리고 항상 먹던 맛. 익숙한 것이 주는 안정감이 필요하다. 보수적이다...맨날 먹는 숏사이즈 따뜻한 라떼만 먹는다. 꼭 숏사이즈여야 한다. 에스프레소 1샷에 숏 사이즈만큼의 우유양이 입맛에 딱이다. 톨사이즈의 경우 에스프레소 1샷에 톨사이즈만큼의 우유를 채워야 하기 때문에 약간 맹탕맛이 난다고나 할까...
어느 날은 자주 가는 스벅의 파트너가 나를 알아본다. 여공팔 고객님이시죠? 아 창피해. 어떻게 나를 기억하지. 어디 가나 묻히는 나인데. 날 알아보다니.
또 다른 어느 날은 옆 동네 드라이브스루 스타벅스에 갔는데, 단골 스벅에서 근무하던 파트너가 그곳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서로 알은체 없었지만, 우린 서로에게 꽃이 되었다. 너는 에이든, 나는 여공팔.
<스타벅스 일기>는 권남희 번역가님께서 스타벅스에서 일하며 그날그날의 일기를 쓰신 것을 에세이로 엮은 책이다. 도서관 서가에서 서성이다 스타벅스라는 제목에 꽂혀서 생각 없이 대출했는데, 작가가 권남희 란다. 어 이 사람 일본 소설 번역가 아닌가? 이름이 익숙하네 싶었는데, 그 권남희 작가가 맞았다.
일주일에 4회는 기본으로 들락거리고, 어느 나라를 여행하든 그 나라 스벅은 꼭 가보고야 마는 자칭 스벅의 덕후로서 이 책은 안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작가님이 스벅에서 일하며 마셨던 음료와 작가님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주위 테이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때그때 작가님 느꼈던 감정이나 생각들, 현재의 처지들을 돌아보고 위트를 더해 산뜻하게 마무리 짓는 산문들이다. 내 취향에 찰떡처럼 들러붙는다.
이 책은 소장각. 책을 어느 정도 읽다가 반납하고 교보문고로 달려가 구매하고야 말았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이런 순간도 글과 책으로 만들어내는구나 싶어서, 나는 여태껏 스벅 다니며 뭐 했나, 역시 세상엔 난 사람들이 많구나 싶다.
나는 우리 선재 변우석이 반겨주는 이디야라도 가서 이디야 일기라도 써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