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무리 Dec 30. 2015

맥 칠리, 당신의 소비는 주체적인가요?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문화산업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요즘 들어 유독 눈에 띄는 단어가 있다. 'MLBB'와 ‘마르샬라’가 바로 그것이다. 혹시 당신이 두 단어를 알고 있다면 꽤나 트렌드에 민감한 사람일 것이다. 아, 혹시 저들이 무엇인지 몰라도 당신의 삶이 크게 변할 일은 없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MLBB’는 ‘My Lips But Better'란 뜻으로 자신의 입술 색과 비슷하지만 좀 더 생기 있어 보이도록 하는 색을 지칭하는 단어이며 '마르샬라(Marsala)'는 세계적인 컬러 그룹 Panton사에서 선정한 2015년의 색으로 말린 장미 혹은 붉은 벽돌 색을 뜻한다. 인터넷 검색창에 두 단어를 넣어 검색하면 셀 수도 없이 많은 화장품들이 앞 다투어 등장하는 것을 보니 두 단어가 최근 가장 '잇(it)한 키워드(keyword)'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MLBB색 립스틱과 2015년의 색 마르샬라


  유행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니 올 가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맥 칠리 대란’이 떠오른다. 2015년 한 해를 관통하는 ‘복고’라는 주제는 문화산업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었다. 특히나 《무한도전》의 특집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로부터 8090년대가 새롭게 주목받으며 대중음악 시장에서 8090 가요가 다시금 주목을 받았으며 청재킷과 멜빵, 크롭 티(배꼽티) 등과 같은 옷들이 패션업계에서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뷰티 업계에서는 1980년대에 유행했던 갈색 계열의 립스틱이 가을을 맞아 많은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러던 중 아이돌 가수이자 배우로 활약하고 있는 수지가 작년에 촬영한 화보의 사진이 갑자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시 화보 촬영에 사용된 립스틱이 무엇인지에 대해 누리꾼들의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누군가에 의해 해당 제품이 한국에는 정식으로 출시되지 않은 ‘맥(MAC)사’의 ‘칠리’라는 사실이 알려졌고, 이를 구하기 위한 소비자들로 인해 아마존에서의 연속 품절 사태가 일어나고, 직구 대행 업자들의 블로그에 하루에도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리는 등의 대란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이후 수지의 메이크업을 담당하는 정샘물 닷컴을 통해 해당 화보에 사용된 제품이 ‘칠리’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인터넷 상에서 화제가 되었던 사진 또한 원본에 색을 입힌 리터치(Re-touch)의 결과물이라는 것도 밝혀졌다. 누가 왜 그런 허위 정보를 퍼뜨렸는지 확인할 수도 없는 ‘맥 칠리 대란’은 결국 칠리가 정식으로 한국에서 판매가 되는 결과를 낳았고, 칠리로부터 시작한 브라운 계열 립스틱의 유행은 MLBB와 마르샬라 색의 유행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맥 칠리 대란’의 시발점이었던 수지의 화보 사진과 뷰티 덕후들의 마음을 표현하는 사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질문한다. ‘당신은 정말 주체적인 소비를 하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조언이 필요하다. 부르디외는 그의 책 『구별짓기』에서 개인의 사적 영역이라고 생각되었던 ‘취향’이 사실은 학습된 문화자본임을 밝혀냈다. 경제 자본과 마찬가지로 문화자본 또한 계급에 따라 불평등하게 배분되고 이것이 취향이라는 이름의 문화적 자본으로 치환된다는 것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당신의 즐겨 마시는 술이 소주이고 부유한 당신의 친구가 좋아하는 술이 럼인 까닭은 개인이 속했던 단체가 가진 문화적 소양 차이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학파이자 문화산업론자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와 아도르노(Theodor. W. Adorno)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개인의 문화적 자본을 오로지 효율과 이익을 중시하게 된 문화산업이 이용하는 지점을 폭로한다. 그들은 인간의 이성과 계몽이 진보가 아닌 퇴보를 가져오는 이유는 계몽을 이루는 ‘이성’이 도구적으로 전락하였기 때문이라 말한다. ‘이성은 다른 모든 도구를 제작하는데 소용되는 보편적인 도구’가 되어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이윤추구를 위한 효율성만으로 사용되고 이러한 과정에서 진보는 퇴보로 전환된다. 


  근대의 규칙은 다양화를 가장한 획일화(konformität)로 오히려 문화를  더욱더  동질화시켜가는 폭력이다. 비슷비슷한 영화와 잡지의 내러티브, 상품과 주거형태, 사무실의 단순화는 어디에서나 기업이 동일한 모습으로 만들어낸 산물이다. 대중매체가 단순히 ‘장사 business’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은 그들이 고의로 만들어낸 허섭스레기들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서 사용된다.


  대중문화는 팔기 위해 만들어지는 ‘문화산업’에 불과하다. 그리고 문화산업은 소비자의 욕구를  더욱더 능란하게 다룬다. 그들은 소비자의 욕구를 만들어내고 조종하며 교육시킨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속 유명 패션잡지 런웨이의 편집장 ‘미란다’와 저널리스트의 꿈을 안고 있지만 미란다의 비서로 취직을 하게 된 ‘안드레아’의 대화는 문화산업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안드레아의 ‘파란 스웨터’는유행을 주도하고 문화산업을 지배하는 힘을 확인시켜주는 계기

     

  영화 속에서 패션의 ‘ㅍ’ 자도 관심이 없는 안드레아가 무심코 집어 든 ‘파란 스웨터’ 또한 철저히 문화산업의 자본논리에 의해 제작된 상품이다. 문화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전문가라는 권위 아래 매년 새로운 유행을 만들고 그를 통해서 끝없는 소비를 이끌어낸다. 현대 사회의 모든 곳은 자본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수많은 미세한 구조들로 구성되어 있고, 개인은 이러한 구조들에 의해  구성(학습)되어진다. 그러므로 현대사회에서의 개인은 더 이상 주체적이고 총체적으로 존재하는 독립적 주체가 아니다. 개인의 소비와 선택 그리고 취향은 사회로 인해 학습된 결과물인 것이다. 지금 당신의 파우치를 열고 'MLBB색 립스틱'을 들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당신은 정말 그 립스틱이 아름다워서 구매를 한 것일까? 아니면 그것이 아름답게끔 느껴지도록 학습되어 구매를 한 것일까? 


                                                                                                                                 by 문제적 개인, S

작가의 이전글 문화로서의 스포츠 – 미디어의 영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