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무리 Dec 30. 2015

SNS, 지극히 파편적인 공간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이곳은 모든 것이 섞여있는 혼재한 공간이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기 이전의 혼돈한 시간처럼, 미처 미륵이 등장하지 못한 창세가 속 하늘과 땅이 갈라지기 이전의 공간처럼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수히 깨어진 것들은 불확실하게 뒤엉켜있다. 대체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이다.


  20세기 초반 예술과 문화를 이끌었던 모더니즘적 세계는 권위 있는 정전과 계몽으로서의 교양, ‘모던’으로 일컬어지던 절대적 진리가 있는 공간이었다. 그와 달리 무질서와 혼종, 파편으로 가득한 세계인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엘리트주의를 비판하며 등장한 퇴행적 모더니즘이다. 이들은 모더니즘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근대 철학의 가장 기본 개념인 데카르트의 ‘인식 주체(cogito)’에 대한 불신을 기본으로 한다. 이성에 바탕을 둔 합리주의를 비판하면서 절대적 진리가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낸다. 그 결과 포스트-모더니즘은 대문자로서의 진리 혹은 지식을 부정하고 다양한 시각의 가능성을 인정하게 된다. 이들은 자신들이 존재하는 세계를 완결되고 총체적인 하나의 세계가 아닌 파편화된 세계라고 주장하였고, 세계의 불확실성을 긍정적으로 수용하였다.         


근대 철학에서 주체적 인간은 계몽될 수 있음을 믿었다 

            

  즉, 다시 말해 자본의 논리로 가득 찬 ‘포디즘’의 세계를 모더니스트들이 ‘파편화된 현실’이라 비판하면서 바라보았다면,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파편화’ 그 자체를 당연시하고 즐거워하기까지 한다. 그들은 ‘고급’과 ‘대중’의 경계와 구분을 파괴하는 것처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다. 과장되고 화려하며 이것저것을 조잡하게 섞어놓은 ‘B급’의 ‘키치문화’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추구하는 가치이다. 그들에게 현실이란 실제를 갖춘 주체 혹은 대상(Thing)들이 존재하는 곳이 아니었다. 영화와 텔레비전, 광고와 같은 이미지들의 영향력은 현대인의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현실과 상상, 실제와 환상, 표층과 심층 사이의 차이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그 결과로 둘 사이의 구별이 없어진 것이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 문화이다. 현실은 도리어 현실을 왜곡하고 감추어 버리는 ‘모상(simulation)’으로 가득 찬 공간에 불과하다.      

 

초현실주의 작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정말 실재하는 공간일까?

           

 

 모든 것이 불확실한 파편화로 뒤엉킨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가 어떤 모습인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전 세계 최대 SNS(social network service)인 ‘페이스북’을 떠올려보도록 하자. 만약 당신이 페이스북에 로그인을 한다면 그 순간 사용자의 핸드폰 화면에는 ‘타임라인(Timeline)’이라는 가상공간이 설정된다. 그 공간은 시간과 장소가 마구 뒤섞인 정보의 세계이다.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은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의 흐름과는 사뭇 다른 시간의 혼종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주체인 내가 지금 2015년 11월 10일 오후 4시라는 현재의 시간에 존재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렇지만 이러한 사실과는 관계없이 내 친구가 누른 ‘좋아요’ 버튼은 2011년 6월에 올린 ‘과거’의 나의 사진을 ‘현재’ 나의 타임라인 페이지에 올려놓는다. 이제 나의 타임라인 위에는 15년 11월의 시간과 11년 6월의 시간이 함께 존재한다. 이처럼 사용자가 페이스북을 하는 동안 그의 타임라인에는 시간의 흐름과는 무관한 무질서한 시간들이 이리저리 얹어진다.


  시간만이 혼재하는 것이 아니라 장소 또한 타임라인 위에 뒤섞여 나타난다. 대한민국의 경기도 그것도 남양주라는 스스로가 존재하고 있는(현실에서 위치하고 있는) 나의 상태와는 별개로 나의 수많은 친구들 중 누군가가 누른 좋아요 혹은 공유하기 버튼은 나의 타임라인 위에 중국, 일본, 미국, 호주 심지어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것 같은 아프리카 어느 곳의 사용자가 올린 사진을 올려놓는다. 하나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나는 페이스북이란 세상에 접속함과 동시에 이곳에 존재하면서 곧 저곳에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의 타임라인 위에 시시각각 올라오는 글들은 때로는 지나치게 사소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하고, 전 세계가 주목하는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한다. 일상의 지루함을 날려주는 가벼운 스낵 컬처(snack culture), 또는 정치적으로 아주 민감한 사안을 다루는 뉴스처럼 많은 이들에게 공유되고 시청되는 글에는 늘 그러하듯 기업의 광고가 대롱대롱 붙기도 한다. 전 세계의 사람들은 매 초마다 수많은 글과 사진을 업로드하고, 각각의 텍스트가 담고 있는 의미는 무한하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다양한 시공간, 성격의 뒤섞임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요한 개념인 ‘다원화’의 좋은 사례이다.


  타임라인 위의 다양한 글과 사진, 동영상들은 현실을 왜곡하고 감추어 버리는 ‘모상(simulation)’이기도 하다. 그것이 보여주고 있는 것과 실제는 일치하리란 보장이 없다. 자신이 평소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과 사진들을 되돌아보자. 나와 친구로 등록된 사람 또는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보게 될 사진들은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다. 멋진 옷을 차려입은 나의 모습, 휴가를 떠나 좋은 휴양지에서 즐거운 나의 상태,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사람들 사이에서 행복하게 웃고 떠드는 나의 모습은 수많은 나의 모습들 중 아주 단편적인 모습이다. 타인들은 나의 조각들을 보고 온전한 나에 대하여 판단하고 상상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나는 전체적인 실제 내가 아니다.              


태국 사진작가 톰푸 바리톤의 작품,  보여주고 싶은 내 모습과 실제 나 사이의 괴리감

      

  기업의 광고들은 또 어떠한가. 이미지 마케팅을 위해 기업들은 페이스북에 페이지를 개설해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거나, 많은 이들이 공감할 만한 글을 게시한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는 실제와 사뭇 다르다. 환경을 보호하자는 캠페인을 진행하는 기업은 이익을 위해 제품 개발 과정에서 끊임없이 유해물질을 발생시킨다. 또 다른 기업은 지나친 경쟁시대의 청년들을 위로하지만 그들의 채용과정은 칼같이 날카로울 뿐이다. 호주의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내세우는 어떤 기업의 음식들은 사실 지극히 미국적이다.


  전체를 알 수 없도록 파편화되고 그 의미가 왜곡되어진 텍스트들은 사용자에게 무차별적으로 제공된다. 이러한 사실들을 발견할 때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미지는 공허해진다. 이렇게 비어있는 이미지로 가득 찬 페이스북이라는 공간은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의 세계다. 그동안 인류 문명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진리는 더 이상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시시각각 변하는 시간과 공간, 상황에 따라 어떠한 사실은 진실이기도, 혹은 거짓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페이스북이라는 안에서 어떤 절대적 사실을 발견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페이스북의 세계와 같이 명백한 객관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파편화된 형식과 불연속적인 서술 그리고 이질적인 소재들을 무작위로 이어 붙이는 ‘콜라주 기법’을 사용하였다. 그들에게 파편화란 영구불변의 신념체계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에서 벗어나 우리를 자유롭고 즐겁게 해주는 놀이이다.                     

  페이스북이란 공간 속의  균질화될 수 없는 다양한 정보는 타임라인 위에 나타나며 서로 동일한 가치로 재단된다. 이미지들은 실체가 없이 무질서 한 시간과 공간 사이를 떠돌 뿐이다.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란 아직까지 낯설기만 하다. 그러나 오늘도 무심코 누른 페이스북이란 세계를 통해 어쩌면 아주 조금은 파편화된 혼종의 공간을 이해해 볼 수 있지 않을까?


                                                                                                                                  by 문제적 개인, S

작가의 이전글 맥 칠리, 당신의 소비는 주체적인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