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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무리 Dec 30. 2015

응팔의 성보라는 어떻게 어머니가 되는가?

페미니즘(Feminism)

  ‘응답하라’ 시리즈가 2년 만에 돌아왔다. 팍팍해져만 가는 현대의 삶과 신경질적 불안에 지친 시청자들에게 이 드라마는 자신의 젊은 시대에 대한 회귀라는 감성코드를 제공한다. 《응답하라 1988》은 격동의 80년대를 배경으로 현대인들이 상실한 ‘가족애’의 가치를 그려내며 연일 기록적인 시청률을 달성하고 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을 세심하게 그려낸 덕분에 시청자들은 극 속에서 ‘과거의 나’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자기감정에 대한 복귀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 이웃들

                   

  《응답하라 1988》에서 그려지는 쌍문동은 전통적 전원생활의 가치가 존재하는 이상적인 공간이다. 쌍문동 한 골목에 모여 사는 다섯 가족은 소박한 우리네의 모습을 꼭 닮아있다. 이들은 서로의 아픔과 기쁨을 자신의 일인 것처럼 나누면서 성장한다. 극 안에서 이들을 그려내는 방식이 지극히 신파적이며, 드라마가 도리어 잔혹한 현실과의 괴리감을 만들어낸다는 비판을 받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답하라 1988》은 따뜻한 사람 냄새가 나는 드라마임이 분명하다.


  필자가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까닭은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사랑받아 마땅한 모습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답하라 1988》에서 가장 입체적이고 애착이 가는 인물은 ‘성보라’이다. 기존 드라마에서 그려내는 여성의 모습에 대한 공식과 달리 성보라는 공부도 잘하고 운동권이며 성격이 드센 문제적인 인물이다. ‘성보라’는 드라마 속에 그려지는 전통적인 두 가지의 여성상을 모두 부정한다. 우선 대다수의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여성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은 주인공인 ‘성덕선’과 같이 잘난 능력은 없지만 얼굴과 마음씨가 예쁜 여성이다. 그녀들을 구원해주는 것은 언제나 능력 있고 조건 없이 그녀만을 사랑해주는 백마 탄 왕자님이다. 드라마 속 여성들이 마주한 현실적 문제들은 판타지와 같이 오직 사랑의 획득을 통해 해결되며, 결과적으로 그녀들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신데렐라의 모습이 아니라면 여성은 가슴 절절한 모정을 가진 ‘엄마’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모성애를 가진 엄마는 가족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는 주체적이지 못한 인물들이다. 《응답하라 1988》에서 엄마를 그려내는 방식도 이와 멀지 않다.


 잘못 선 보증으로 인해 온 집안이 풍비박산 났지만 가장 ‘성동일’은 늘 당당하다. 가족들은 쌀이 떨어져서 타인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지만 그 와중에도 아버지인 동일은 길가의 가엾은 할머니가 파는 나물을 사 온다. 이런 남편에게 아내인 일화는 목소리 크게 호통을 치지만 이내 수긍한다. 동일로 인해서 온 가족이 아픔을 겪고 있지만 가족에게 동일은 늘 권위 있는 가장으로 존재한다. 일화는 그에게 불만을 품어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  남편뿐이야.’라며 그의 그늘로 다시금 들어간다.


  미란은 또 어떠한가. 남자만 셋인 집에서 사내대장부처럼 씩씩한 모습으로 가족들을 이끄는 그녀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늘 연하인 남편에게 져주는 모습을 보인다. 또 그녀가 가족들을 남겨둔 채로 시골에 방문했다 돌아오는 에피소드에서 그녀는 자신 없이도 너무나 잘 지내는 가족들에게 상처받는다. 가사 노동을 통해서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찾는 모습은 ‘엄마’에 대한 환상적이고 폭력적인 이미지이다. 이는 선영에게도 동일하게 작용한다. 일찍 사별한 남편의 연금 30만 원을 받으면서도 기죽지 않고 아들인 선우와 어린 딸 진주를 야무지게 키워내는 선영은 늘 스스로를 부끄러워한다. 그녀는 누구보다 성실히 살며 가정을 꾸려 나가지만 ‘남편 목숨 값 받으면서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시어머니의 독설에 무너지고 만다. 시어머니를 통해서 그동안 그녀가 집안을 이끌고 유지하기 위해 했던 가사노동은 그 의미를 잃게 된다.  


                                     《응답하라 1988》에서 그려내는 어머니의 모습

 

 프랑스의 페미니스트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제 2의 성』을 통해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남성이 근본적인 주체로 여겨지는 데 반해 여성이 환경의 지배를 받는 의존적 존재라는 의미의 부수적인 존재로 간주된다고 주장했다. 그녀에게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었는데, 여성은 처음부터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가부장제 아래에서 여성적인 존재가 되도록 길들여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성은 가부장제가 상정하는 것처럼 희생적이지도, 모성본능을 타고나지도 않는다.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하는 세 명의 엄마들은 이러한 가부장제 질서를 통해 만들어진 엄마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며, 그 스스로를 통해 이러한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드라마 속에서 보라는 덕선이나 일화와는 다른 선상에 서있는 여성이다. 그녀는 감성보다는 이성적이며, 자신이 중요시하는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 앞장서서 시위에 참가하는 능동적인 존재이다. 지금보다 여성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었던 80년대에 연인관계에서 주도권을 쥐고, 담배라는 기호를 통해 스스로가 새로운 시대의 여성임을 나타냈다.


  그러나 1988년 누구보다 뜨거운 청춘이었던 보라는 2015년 48살이 되었다. 지금 텔레비전 앞에서 《응답하라 1988》을 보며 추억을 회상하는 80학번 세대들의 여성들은 드라마 속 엄마들처럼 ‘어머니’로서 존재하게 되었다. 아직도 어머니들은 그들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엄마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요구받는다. 투쟁을 외치던 《응답하라 1988》의 당찬 투사 ‘성보라’는 《미생》의 ‘선 차장’으로 치환된다. 일터와 가정 모든 곳에서 완벽해야 하는, 육아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지금은 어쩌면 80년대보다 여성에게 더 폭력적이고 잔혹한 공간인지도 모른다.          


《미생》의 ‘선 차장’은 직장과 가정 모두에서 완벽함을 요구받는 슈퍼우먼이다

          

  여성이라는 집단은 억압받는 계급이나 인종적·소수자들과는 다른 형태로 억압받아 왔다. 여성들은 다른 공동체와는 달리 그들 스스로가 연합할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한 상태로 남성 중심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늘 소외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억압은 아직도 현대사회의 여성을 옥죄고 있다. 모든 ‘발달된 사회’는 가사와 양육에 대한 여성의 무급노동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가부장제는 여성을 일하지 않는 이들로 규정하고 여성들을 집 안의 역할에 한정 짓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이러한 불합리에 저항하던 여성들조차 자신에게 부여된 여성의 역할을 순종적이게끔 수행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자신의 무급노동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에 죄의식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여성은 여전히 사회적 약자이다. 성보라이자 선 차장인 이 시대의 모든 여성들을 위한 고민이 필요한 까닭이다.


                                                                                                                                       by 문제적 개인,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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