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 걷는 종로를 사랑한다. 특히나 종로 3가에서 종로 5가로 걷는 길을. 저녁 8시,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종로 3가를 벗어나 종묘에 이르면 거짓말 같은 고요함 속에 들리는 풀벌레 소리와 어두컴컴한 길을 홀로 걷고 있는 나를 사랑한다.
사람이란 게 참으로 무섭고 간사하다. 쭉 혼자였다면 몰랐을 살갗을 스치며 걷는 따뜻함과 주고받는 말들 속 안정감, 의미 없는 웃음뿐일지라도 내뱉어지는 나의 마음들. 그것들이 나를 옥죄어온다. 어쩐지 나는 그럴 주제가 못 되는데 그래선 안 되는데, 맛봐선 안 되는 솜사탕을 맛본 것만 같다. 그리고 잠결에나 그 달콤함을 그리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유달리 종묘에 이르면 나는 원래는 아니었던 혼자가 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진다. 아직 종로 5가까지는 조금 남았으니까 딱 그때까지만 내 얘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그리워한다.
어쩌면 나의 20대는 늘 그리워했을지도 모르겠다. 문득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피어나는 외로움은 마치 들켜선 안 되는 것처럼 부끄러웠다. 그렇기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삭여야만 했다. 주로 신촌에서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172번 버스의 창문이 나의 머리를 두드리며 말을 걸었다. 너는 혼자라고. 남자친구와 영화를 보고 나와 헤어지는 역 앞에서도 터벅터벅 걸어 내려가는 계단들이 모두 내게 날 선 손짓으로 혼자라고 떠들어댔다.
죄스러웠다. 삶의 조각들로 이미 나는 지쳤는데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 사치스러웠다. 하지만 매듭짓지 못하고 나의 청춘은 얼룩져갔다.
혼자 걷는 종로는 그런 나의 20대를 떠올리게 한다.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나를. 수많은 생각이 잊힌 나날들을 기억해낸다.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 어쩐지 눈물 젖은 날이 많은 것은 자기연민으로 가득하였기 때문일까? 마치 처음부터 혼자였던 것을 기억 못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나약하고 외로운 나의 모습.
하지만 나는 그런 나를 사랑한다. 공무원시험에서 2번이나 떨어졌어도. 자격지심에 친구를 만나지 못하더라도. 나약하고 외롭더라도. 혼자를 무서워하더라도. 나는 나를 사랑한다. 그렇기에 전화 대신 좋아하는 노래를 켜고 걸어나간다. 종로 5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