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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 Nov 28. 2023

좋은 사람은 있습니까.

불가항력적인 불행이 나를 덮칩니다. 물 속에 갇혀 버렸습니다. 나의 소음은 물 속에서는 전달되지 않습니다. 물이 목구멍까지 막혀버렸습니다. 눈물은 물이 되고 물은 내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를 수록 더 깊은 물에 빠져버립니다. 겉잡을 수 없는 수압은 온 몸을 짓누릅니다. 이곳에 머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 것도 말할 수 없고 들리지 않을테니. 아무 것도 볼 수 없을테니.


우리가 주고받은 말 속에 당신의 무심함이 있고 나의 예민함이 있습니다. 나의 무심함이 있고 당신의 예민함이 있습니다. 우리 둘 중에 누가 좋은 사람이고 누가 나쁜 사람입니까. 당신의 예민함은 나를 위해서도 쓰입니다. 갈기 찢겨진 마음을 내비칠 때, 우울한 웃음을 지을 때 당신은 나를 위해 다정한 마음을 내비칩니다. 당신의 무심함은 나를 위해서도 쓰입니다. 무심한 말 한 마디에 위로를 얻기도,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곁에 머물러 주기도 합니다. 이것은 꿈 속의 이야기같지만 일어남을 경험한 자에게는 애틋한 우주입니다.


좋은 사람은 어딨습니까. 무용합니다. 묻습니다. 좋은 사람은 존재합니까. 욕심, 시기, 질투, 포기, 허망, 슬픔, 분노는 나쁜 감정입니까. 그런 감정을 가지면 나쁜 사람이 됩니까. 세상에 욕심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욕심이 없으면 좋은 사람입니까. 욕심이 없다면 원하는 것은 어떻게 얻습니까. 시기와 질투가 넘쳐 납니다. 시기와 질투가 없으면 좋은 사람입니까. 시기와 질투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까. 포기없이 어떻게 다음이 있습니까. 허망함 없이 어떻게 충만함이 있을 수 있습니까. 슬픔과 분노 없이 어떻게 행복이 있겠습니까. 이런 감정없이 이런 감정을 가진 사람에게서 나의 것을 지킬 수 있습니까.


나를 비대하게 만드는 것을 사랑하는 것은 오만입니다.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것에 권리를 주는 것은 자기 기만입니다. 나를 지키는 것들과 나 자신과 나를 가두는 것들 사이의 전쟁터입니다.


언제나 낭만적인 건 가까워지려고 하면 더 멀어집니다. 좋은 사람도 마찬가지일까요. 처음부터 좋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 이상을 끊임없이 바꾸어가며 좋은 사람이라는 명사에 다양한 옷을 입혀주는 것, 이것이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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