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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균 Feb 24. 2019

SPC를 졸업하며 – 영웅의 생태계를 위해

  오늘도 역시나 정신없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다보니 행사장에 가야할 시간에 늦고 말았다. 오늘은 SK사회성과인센티브를 졸업하는 날이다. 사회적기업들이 발생시킨 사회적가치를 측정하여 SK가 일부를 인센티브로 지급하는 놀라운 프로젝트. 인센티브를 3년동안 받아서 이제 졸업을 하게된 44개의 기업들은 작은 룸에서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었고 나는 10여분 늦은 상태에서 빈자리를 찾아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최태원회장님, 연세대 김용학총장님, 오광성 사회적기업진흥원 원장님 등 내빈으로 참여해주신 6분의 패널들은 사회적기업가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하며 의미있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되었나?


  3년 전 우리 회사는 SK사회성과인센티브 팀에게는 상당한 고민거리였다고 알고있다. 몇몇 분들이 우리를 인센티브 대상자로 추천했지만 선정과정에서 갑론의박이 오갔고 결국 우리는 선정되지 않았었다. 이미 우리는 자발적으로 참여를 희망할 수 있는 앞선 단계를 가볍게 SKIP해버린 상태였고 타인의 추천으로 이어진 선정 단계에서 탈락했다면 애초에 없던 관심도 더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한 두 번도 아니었고. 우리를 사회적기업이다 아니다로 오갔던 수 많은 논쟁의 연장선이라고 느끼는 정도였다. 그리고 과연 SK란 기업이 진정성이 있기나 할까? 냉소적이었다.


  그런데 인센티브팀은 적극적이었다. 얼굴 한 번 뵌적이 없는 임원진 한 분이 전화를 걸어와서 ‘선정 결과에 실망하셨을 텐데 조금 더 기다려주시라’고 하질 않나 담당자들은 회사에 찾아와서 설명하고 설득하기를 반복하셨다. 개념조차 생소한 사회성과인센티브라는 것으로 생태계를 돕겠다는 목표가 있는 분들이셨다. 그리고 솔직했다. 자신들도 이 모든 것이 실험이고 어떻게 해나가야되는지도 고민이 많으니 기업들의 의견을 듣고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고. 솔직히 나는 시도는 아름답지만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었다. 우리를 비롯해 많은 사회적기업가들은 정글같은 현실 속에서 생존하느라고 거친 마인드를 가지게 된 것도 사실이라 나랑 같은 생각하는 대표님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측정이 시작되면서도 나의 냉소는 풀리지 않았었다. 아주 근본적인 데이터들을 요구했는데 구하기가 쉽지도 않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어렵게어렵게 구해내면 그것들로 예상을 빗겨가는 측정법을 개발해오셨다. 나는 측정방적식에 더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데이터가 반영되어야 한다며 연구진들분과 논리싸움을 수도 없이 했었다. 논쟁의 이유를 부정적으로 해석했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IT기업이라 전통산업에 계신 다른 사회적기업들과는 사회적 성과의 임팩트 규모가 달랐고 그것을 온전히 인정한다면 인센티브의 금액이 압도적일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나는 결과를 받아들였다. 아주 근본적인 이유 때문이다. 애초에 우리가 받을 수도 없던 인센티브를 어떠한 조건도 없이 주겠다고 하는 분들이었다. 주시겠다는데 받는 입장에서 계산이 틀렸다고 끝도 없이 따지는 것은 생산적이지 않았다. 나는 이 인센티브라는 실험에 동참 중이었다. 한 번에 정답일 수 없는 실험이었다. 주신 돈을 감사히 받았고 아주 잘 썼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인센티브팀은 역시 우리를 찾아와주셨다. 많은 것들을 물어보았고 질문은 더 깊어지고 있었다. 나는 인센티브 제도가 구체화되는 과정을 기다려주고 지켜보는데에 즐거움을 느끼는 지경에 도달했다. 대체 이 모든 것을 설계한 사람, 최태원 회장님은 어떤 생각이신지 궁금해졌다. 한 번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한 사람인데 마치 오래 대화를 나눈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우리 시지온의 사회성과를 측정한 측정방정식이 틀렸다고 생각한 상태로 3년을 마감했다. 하지만 괜찮다. 이 모든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인센티브팀이 기업마다 다른 측정 방정식을 개선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대신 더 본질적인 무언가를 도전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센티브팀은 고민하고, 고민결과를 공유하고, 그 결과로 조직을 설계해 나가느라고 바빠보였다. 이 인센티브의 철학이 맞긴 한 걸까? 맞다면 어떻게 더 제대로 측정할 수 있을까? 무엇이 더 많은 사회적 가치를 이루어낼까? 그 와중에 기업은 어떻게 성장시킬까? 이런 질문들은 그 누구도 빠르고 쉽게 내릴 수 있는 답은 아닐 것이다. 다행히 고민들 와중에도 실행은 정확하고 빨라보였다. 올해 초 SK사회공헌팀은 사회성과연구원을 조직해 독립시켰고 역할을 강화했다. 외부자본과 연계하여 펀드도 조성했다. 본격적이었다.


  인센티브팀 덕분에 나도 나의 생각을 더 꺼내고 헤치면서 더 단단히 할 기회들이 많았다. 나도 사회적기업가로서 어떤 철학을 가져나가야 되는지를 늘 고민했고 그것을 회사 식구들의 일 곳곳에 베어들도록 해야되는게 본업인 사람이니까 말이다. 졸업하는 날을 기념할 겸 그 생각들을 간단히 공유하자면 아래와 같다.


1. 사회적 기업은 사회적 성과를 성장시키는 것을 레버리지 삼아서 재무적 성과를 더욱 키워나가야 된다.


  나는 사회적 성과를 추구하는 것이 재무적 성과를 추구하는 일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를 해결하면 그 문제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지급의 의지를 가지게 되고 그것이 시장을 창출해내는 작은 불꽃같은 역할을 해준다고 믿는다. 경영학의 논리로 보면 블루오션전략일 것이다.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은 아직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강력한 니즈가 해소되지 않았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문제를 해결하면 니즈에 기반한 시장이 열린다. 경쟁자가 없는 시장에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최적의 전략인 것이다.


  또 나는 사회적 성과가 성장하는 속도보다 재무적 성과가 성장하는 속도가 더 빠를 것이라고 가정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해결로직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로직은 일단 개발되면 문제가 사라질 때까지 작동될 것이다. 또 문제는 실타래와 같아서 하나가 풀려나가면 연결된 다른 문제들도 풀려나가곤 한다. 기업가는 주변 문제들을 시장기회로 해석하고 사업화 할 수 있다. 우리 회사만 보더라도 악성댓글을 줄이는 소셜댓글을 개발하는데까지는 3년이 걸렸지만 일단 개발하고나서는 유지와 운영, 성장을 위한 비용만 발생했다. 고객사는 84%나 매년 재구매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소셜댓글만 두고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마진이 높은 사업이 된 것이다. (물론 서비스의 생애주기가 있지만 말이다.) 마리몬드도 그렇다. 위안부할머님들의 그림패턴을 활용해 핸드폰 케이스를 만들어 잘 팔렸고 이제 더 이상 이러한 생산품을 만드는데에 고민은 필요없다. 마리몬드는 패턴을 활용해 더 다양한 상품군을 늘리고 팔고 더 잘 팔고를 하면 된다. 지금의 마리몬드의 매출이 얼마나 커지고 있는지는 소비자가 더 잘 알아차릴 정도이다.


2. 사회적기업은 기업이 되어야 한다.


  위의 가정이 맞다면 재무적 성과가 많이 발생되는 기업은 핵심적인 문제해결로직을 엄청나게 강화한 조직일 것이다. 하지만 리소스의 분배구조는 문제해결에 집중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뼈대처럼 자리잡은 문제해결로직위에 수익이라는 살을 붙여나는 것은 비니지스 모델이다. 조직은 비즈니스 모델을 발견, 운영하는데에 더 많은 비중의 리소스를 투입해야 하고 그 정도는 핵심로직을 관리하는 리소스의 몇 십배, 몇 백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기업은 수익을 극대화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당연히 수익에 집중해야된다. 그것을 해낼 의지가 없다면 사회적기업은 기업이 아닐 것이다.

  물론 재무적 성과가 높던 낮던 간에 사회적기업은 사회적기업이다. 가치를 추구하면서 지속가능하게 수익을 창출해내고 있다면 그 수익이 단돈 500원이어도 사회적기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수익을 많이 내는 기업의 단계에 돌입했다면 기업의 구조를 순수영리기업과 비슷한 구조로 만들어나가야 할 수 있다.

  그런면에서 수익이 많아진 기업들은 인센티브는 졸업해야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졸업을 목표로 해야 할 것이다. 기업은 매출과 이익으로 생명을 갖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센티브라는 지원이 없어도 자생하고도 남아야 한다. 인센티브팀에서도 졸업을 축하해줘야 된다고 본다. 만기인 3년 이전에 졸업한다면 조기졸업이다. 엄청 축하해줘야 된다.


3. 이상적인 사회적 기업이란?


  더 깊이 들여다보자. 수익이 많아져 졸업을 하게 된 사회적기업을 축하해주어야 한다는 것은 이러한 형태의 기업을 지향한다는 의미이다. 결국 우리가 이상적인 사회적기업의 모습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 모두를 위한 표준을 만들라고 한다면 당연히 불가능하겠지만 인센티브팀이라면 적어도 인센티브를 주는 대상에게 이상향을 제시하는 것이 가능해야하지 않을까. 이상향을 더 많이 상상하고 구체화해서 인센티브를 통해 그 이상향을 실현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소견을, 가치관을 공유하자면, ‘정체성은 사회적기업이지만 수익은 순수영리기업보다 많이 나오는 회사’를 이상향으로 본다고 밝히고 싶다. 이미 앞서 1,2번의 내용 안에 녹아있는 생각을 한 문장으로 결론지어본 것이다. 나는 반드시 회사를 성장시켜서 성공을 해내고 싶다. 한국을 넘어서 글로벌로 성장할 것이다. M&A를 하던 상장을 하던 회사를 우주 끝까지 성공시켜서 많은 재무적 성과를 발생시킬 것이고 그것은 곧 사회적성과를 엄청나게 강화시킨 회사, 철학이 있는 회사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사회성과인센티브를 잊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주고 수치화를 해보겠다고 설득하던 멋진 실험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충분한 수익을 얻게 되었을 때 회장님께 제안하고 싶다. 인센티브 재원의 일원으로 참여하겠다고. 내가 받았던 인센티브를 더 많은 후배들에게 전달해서 더 많은 사회적문제를 해결하는데에 기여하는 것 만큼 사회에 나답게, 우리 회사답게 공헌할 방법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사이에부지런한 인센티브팀은, 사회공헌팀은 이 제도를 더 다듬어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본인들도 답답하고 부족하다고, 근데 좀 같이 이야기하자고 불쑥 찾아와 술 한잔 기울이면서 친구가 되어준 담당자분들은 앞으로도 혼란스럽고 어려운 이 일에 본격적으로 매달리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졸업해도 이 고민을 같이 하고 싶다.


  사실 다음 스텝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졸업 기업들에게 어떤 실험을 같이하자고 할지 궁금하다. 그게 언제일지도 궁금하다. 이번엔 냉소적이었던 처음과 과연 다른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을까? 확답은 못하겠다. 하지만 ‘한 번 같이 해보시죠’라는 말에 ‘일단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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