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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덩 Apr 05. 2023

빈 커피캡슐이 남긴 단상

우리의 인격은 어떻게 도태되는가 

20대 초반 대학생이었던 시절, 이제는 별세하신 지 10년이 된 전 대한적십자사 이윤구 총재님과 개인적으로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이윤구 총재님은 인제대학 총장을 역임하기도 하는 등 굵직한 직함들을 많이 거치신 분이었다. 그런 그가 학교에서 특강을 마치고 나가시던 길에 붙잡고 말을 걸었다. 학회에서 세미나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세미나 주제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해도 되겠냐고 여쭤본 것이었다. 옆에서 총재님을 안내하던 다른 교수님은 나로 인해 적잖이 당황해 보였고 나를 말리려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총재님은 흔쾌히 내게 명함을 건네주며 연락을 달라고 말씀을 하셨다. 나는 당돌하게도 정말 연락을 했고, 이후 어느 날 총재님과 사모님을 교내의 한 식당에서 뵙게 된 것이었다.


함께 식사를 하며 내가 그 어린 나이에도 놀랐던 것은 비단 인터뷰에 대한 답변뿐 아니라 그분의 인품을 나타내는 소소한 행동들 때문이었다. 이미 70대 중반의 고령이었던 그에게선 어떤 권위의식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그분은 수저함에서 수저를 꺼내 내게 먼저 수저를 건네주려 하셨다. 내가 당황해서 재빠르게 내 수저를 비롯해 두 분의 수저와 냅킨을 챙겨드리자 "아유, 고맙습니다"라는 말로 화답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내게 깍듯한 존대어로 답변해 주셨던 것도 그분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깍듯한 대접과 의전을 받으며 지낸 지도 이미 오랜 세월이셨을 텐데, 배려와 겸손이 가득 묻어나는 그런 언행들이 내겐 무척 인상적이었다. 




꼭 그런 것은 전혀 아니지만, 많은 경우엔 나이가 들며 한동안은 사회적 지위가 조금씩 상승하기 마련이다. 학생에서 직장인이 된다거나, 직장에서 승진을 한다거나. 나 역시 삶의 영역 어디에서도 지금 무슨 대단한 대접이랄 것을 받으며 살고 있는 입장은 전혀 아님에도, 조금씩 나에 대한 타인의 깍듯함과 스스로의 오만함에 조금씩 무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고 또한 망각의 동물이기에, 우리는 자꾸 무뎌져 간다. 새로운 지위에 너무 쉽사리 적응하기 때문에 그 위치에 걸맞은 대접을 받는 것에도 금방 익숙해지고 이후에도 같은 수준의 대우를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는 올챙이였던 시절의 나 따위는 너무도 쉽게 망각해 버리는 것이다. 


문제는, 나이가 들고 사회적 지위가 올라갈수록 우리에게 진솔한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져 간다는 점이다. 청소년기의 연장전쯤에 해당되는 20대 초반을 지나, 20대 중후반 정도만 되어도 보통은 알게 된다. 다른 사람을 구태여 바꾸려 할 필요도 없고 또 어쭙잖게 말 몇 마디 한다고 해서 잘 바뀌지도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직장에서든 인간관계에서든 나에게 당장의 큰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 굳이 나서서 무언가를 지적하지 않게 된다. 험담을 하거나, 소리소문 없이 낮게 평가를 매기고 손절을 할지언정. 




최근 상담센터가 새롭게 단장하면서 센터에 커피머신을 갖다 놓았다. 센터에 상담을 받고자 방문하는 내담자뿐 아니라 센터에서 일하는 직원 및 학과 스태프들을 위한 것이기도 해서, 나도 가끔 가서 커피를 한잔씩 내려 마신다. 오늘도 그렇게 커피를 내리던 중 문득 알게 된 사실. 그동안 커피를 내리고 나서 커피가 담긴 컵만 쏙 빼갔을 뿐 쓰레기가 된 캡슐을 빼내가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무려 지난 5-6번 정도를 연속으로 그랬던 것 같다. 아마 높은 확률로 상담센터의 프런트데스크나 바로 옆 오피스에서 일하는 대학원생들 중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 치운 게 아니었나 싶다. 그리곤 범인이 나인 줄을 목격했거나 알고 있었더라면 아마 그 자리에서 속으로 내 흉을 봤을지도 모르겠다. "저 인간은 왜 맨날 커피를 내린 다음에 캡슐 정리를 안 할까?"라고. 


일부러 그런 건 분명 아녔지만 순간 뜨끔하며 얼굴에 열이 올랐다. 그리곤 새삼 깨닫게 되었다. 아, 이젠 내가 만드는 이런 소소하지만 확실한 민폐에 대해 지적해 줄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구나.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줄어가겠구나. 


커피를 내릴 때는 뚜껑을 닫기 때문에 보지 못하고 무려 5-6번 정도를 빈 캡슐을 그대로 방치하고 말았다.   




커피캡슐을 몇 번 제 때 치우지 못한 민폐는 그나마도 귀여운 수준일지 모른다. 그보다 훨씬 심한 수준의 갑질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럼에도 이 이슈는 사그라들 줄을 모른다. 주변에 갑질을 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처음부터 그런 인간은 아니었을 수 있다. 나이가 들고 지위가 오르며 나에게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잃어가는 와중에 그는 그저 자신의 위치에 걸맞게 대접하고 대우해 주는 환경에 적응했을 뿐일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죄는 그렇게 인격과 품위가 도태되는 채로 방치한 죄다. 


작고하신 이윤구 총재님을 만난 후 10년도 지난 지금에서야 알 것 같다. 나이가 지긋하셨던 그분이 햇병아리였던 대학생에게도 예의와 배려를 갖출 수 있었던 이유는 그저 타고난 성격 때문만은 아님을. 그런 수준의 겸손함은 끊임없는 자기 점검과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의도적으로 지속되어야 가능하다. 그러한 적극적인 자기 성찰이 지속되지 않을 때에 우리는 나이가 들며 더 나은 사람이 되기는커녕 아주 쉽게 인격적으로 도태되고 마는 게 아닌가 싶다. 


결론은 간단하다. 매사에 조금 더 조심하고 한 번 더 스스로를 그리고 주변을 살피는 일이다. 때로는 피드백을 마냥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주변에 묻고 수용해야 할 필요도 있겠다.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사람이, 더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이전에, 그렇게 반드시 여분의 주의를 기울여야만 우리는 최소한 현재 내가 가진 겸손과 예의와 배려, 즉 나의 인격에 제자리 수준에 머무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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