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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ssong Sep 25. 2021

‘유퀴즈’ 애청자 모드

도배사 배윤슬 씨 편

  평소 유재석과 조세호가 진행하는 ‘유퀴즈’를 자주 시청한다. 연예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직업군의 일반인들도 출연해 본인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재미있어서다. 며칠 전 도배사 배윤슬 씨의 인터뷰 편을 보게 되었다. 배윤슬 씨는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노인복지관에서 2년간 근무하면서 ‘하던 대로 해라, 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있다’는 경직된 조직문화에 회의감이 들어 퇴사를 하고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퇴사를 하고 처음에는 유사직종으로, 전 직장보다 보수가 더 좋은 복지관을 찾아보았지만 처우가 안 좋아서 그만둔 것이 아닌데 처우만 보고 비슷한 직종으로 이직하면 부딪혔던 문제와 다시 마주할 것이라는 생각에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했다. 그리고 전 직장에서는 누구든지 자기를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만약 내가 숙련된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내가 속한 조직, 팀 내에서 중요하고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기술직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 달 동안 학원에서 도배일을 배워 사수와 함께 바로 현장에 투입되었다. 몸을 쓰는 일이라 처음에는 일주일만 버텨보자, 그리고 한 달 만 버텨보자 하면서 지금까지 2년간 도배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걸 어떻게 보면 예상하고  선택으로 뛰어든 거잖아요. 그렇다 보니 이렇게 힘들어도 어디 가서 응석 부리고 토로하고 그러기가 어렵고 혼자서  견뎌야 됐어서 그런 시간이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이거 내가 선택했는데 혹시   선택했나. 그렇게 해서 내가 포기를 하게 되면 내가 들였던 시간, 노력, 돈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구나. 누가  떠밀어서 시작한 것도 아니고. 그러다 보니 오히려 일단은 끝까지 가봐야겠다.”


  나도 처음 몇 년간은 멕시코 생활에 적응하면서 힘든 일이 많았다. 스페인어도 잘 못 했고 그런 이유로 직장에서 멕시칸에게 무시를 당하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매일 밤 펑펑 울었다. 하지만 내가 내린 결정이었고 아무것도 이루지 않고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일 년, 이 년 버티다 보니 직장생활에서 더 배우고 싶은 마음, 그리고 스페인어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커져 5년 반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 사이에 서로 의지하고 힘든 시간을 버틸 좋은 친구와 동료들도 만났고, 친구들이 없었다면 그 외로움을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영상 속 배윤슬 씨 어머니 인터뷰에서는 딸이 하는 일을 존중하고 딸을 자랑스러워하는 부모님의 마음이 느껴진다. 딸의 새로운 도전으로 자신의 세계도 넓혀 간 어머니.



“일 끝나고 나오는 딸을 보면 안전모를 벗어 손에 들고, 작업화를 신고 풀이 가득 묻은 옷을 입고 현장을 걸어 나오는 아이를 볼 때마다 이렇게 정직한 노동이 없더라고요. 땀 흘리는 만큼, 자기 실력만큼.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동네방네 다 이야기하고 다닙니다. 우리 아이 도배한다고. 나중에 잘하게 되면 지인 할인해드리겠다고. 세상에 이렇게 많은 일이 있구나. 직업이 있구나. 얼마나 시야가 좁았는가. 제가 바뀌었어요.”


  처음 멕시코에서 몇 달간 힘든 시간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다고 말했을 때, 아빠는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돌아오지 말라고 단호히 말씀하셨다. 거기서 제대로 해보지 않고 한국에 와서 무엇을 하겠냐고. 그때는 그 말이 괜히 서운하고 더욱 무겁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돌아왔다면 지금처럼 성장한 나 자신이 없었을 것이고 값진 경험들을 내 이야기로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얼마 전 아빠가 지나가는 말로 ’ 5년 넘게 멕시코에서 버텼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고 ‘강단 있는 아이’라고 말씀하셨다. 딸이 힘들다고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할 때 안된다고 말하는 아빠의 마음도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빠의 말에 힘들었던 시간을 위로받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배윤슬 씨는 지금 이직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주변의 시선과 평가 때문에 평생 원치 않는 일을 해서는 안되지 않겠느냐, 매일매일 출근해야 하고 직장생활은 오래 해야 되지 않냐’고 말한다. 이에 유재석은 “나에 대해 큰 애정 없는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하는 얘기에 너무 흔들리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라며 동의한다.



“많은 생각이 듭니다. 오늘 또 배워요. 윤슬 씨한테 또 배웁니다 오늘. 저는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다양한 세대, 다양한 분야의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많이 배웁니다.”


  유퀴즈를 즐겨 시청하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인터뷰 중 유재석의 표정과 말들에는 진심이 담겨 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게스트에게 가르침을 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는 국민 MC 유재석. 그 자리에 걸맞은 인성과 마음을 가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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