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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ssong May 29. 2021

나는 당신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닙니다.

분리배출 의무 위반 시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기획팀 업무 특성상 자료를 요청하는 경우가 꽤 많다. 내가 맡아서 하는 업무 중 하나가 미래 실적을 예측하는 일인데, 고객사에서 상주하며 일 하는 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제조업 고객사의 경우 생산 일정에 따라 forecating 일정을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해서 보고해야 한다. 하지만 한 사람이 맡아서 하는 업무가 하나뿐이겠는가. 따라서 한 번의 요청으로 여러 사람으로부터 필요한 자료를 회신받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매주 몇 번씩 동일한 자료를 요청하면서 마감 일정을 촉박하게 맞추다 보니 내 감정에도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나 보다. 무엇보다 힘든 건 ‘내가 정말 바쁜데 그렇게 자잘한 일 가지고 내 시간을 방해하지 말거라’하는 태도이다. 사실 본인 부서에서 맡아하는 일이 제일 중요하고 우선순위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나도 나름대로 담당자가 회신하기 편한 양식으로 업데이트하고, 이전에 받은 자료와의 차이점을 분석하기 위해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보기도 한다. 그런데 바쁘다는 핑계로 답변조차 하지 않는 건 조금 무례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가끔은 다들 귀찮은 일로 여기는 업무를 내가 왜 공들여서 업데이트하고 분석하고 있는지 허무하기도 하다.

  오늘 법인장님, 영업팀과 미회수 채권 관련 회의 중이었다. 회의 중 한 지사장님에게 담당 채권을 확인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자 돌아온 답변은 “제 담당 아닙니다.” 법인장님이 직접 전화로 제대로 확인해 줄 것을 요청하자 “예, 알겠습니다. 법인장님!”하며 바로 동의했다. 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왔는데 그 지사장님이 계속해서 “이게 뭔가요? 제가 왜 담당인지요?” “저희꺼 아니라는데요? 누가 저희 담당이라고 한건 가요?” “다들 월말이라 바쁜데. 저희가 담당 아닌 거 알잖아요.” “그냥 전화 주세요. 지금 여기 월말입니다.” 이렇게 짜증 섞이고 신경질적인 어투로 카톡을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전화를 걸자마자 “대리님 정말 너무한 거 아니에요? 여기 지금 전쟁터입니다! 다들 바쁜데 정말!”라며 언성을 높였다. 담당자가 아니라면 ‘저희 담당이 아니니 관련 부서에 문의해주세요.’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 다르고 ‘어’다른 법인데. 법인장님의 업무지시에는 곧바로 “예”라고 했던 사람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그 자리에서 ‘법인장님 저희 담당이 아닌데요’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그 사람은 내 직급이 대리여서 짜증내고 신경질을 내도 된다고 생각한 걸까?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사람인 걸까. 내가 바로 그 사람의 감정 쓰레기통이 된 기분이었다. 나는 몇 초간 대답하지 못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힘이 쭉 빠졌다. 그리고 겨우 “책임님, 저희도 마감 중입니다.”라고 답변했다. 그리고 몇 마디 말이 더 오간 후 “담당이 아니시니 담당자를 찾아서 제가 직접 문의하겠습니다.”하고 전화를 끊었다.

  바쁜 와중에 담당이 아닌 업무를 맡게 되면 나도 스멀스멀 짜증이 나고 ‘왜 이런 걸 나한테 요청하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것이다. 내 업무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 주장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린다’는 말이 있듯이 내 주장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도 인간관계에서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어떤 인연으로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른다.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정말 가깝다고 생각하는 친구에게 혹은 연인에게, 가족에게 내 감정 쓰레기를 버리고 있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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