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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구 moon gu Jan 19. 2023

일단은 옷장 정리부터

돈이 없어서 시작한 미니멀라이프

 시간을 보내기 제일 좋은 장소는 바로 인터넷쇼핑몰이다. 앱으로 들어가서 찜해놨던 바지를 본다. 요즘 늘 입고 다니는 바지와 비슷한 스타일로 다른 색을 구매할 예정이다.


구매후기를 꼼꼼히 읽고 상세사이즈도 확인한다. 특급하비인 나를 조금이라도 날씬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바지인지 온 신경세포들의 촉을 바짝 세운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이 바지를 입고 내가 가진 다른 옷과 매칭해서 입는 시물레이션을 돌려본다. 고심 끝에 장바구니 담는데 앗, 배송료가 3,500원이네?


배송료를 아끼기 위해 다른 옷들을 둘러본다. 혹시라도 정말 괜찮은 옷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것저것 담기 시작한다. 처음 바지를 고르느라 너무 집중한 나머지 아까보다 쉽게 장바구니가 찬다. 쇼핑몰에 예쁘게 디피 된 옷들을 보면서 그 옷을 입은  내 모습을 상상하고 흡족한 마음이 든다.


분명 4만원짜리 바지 한벌을 사려고 했지만 이상하게 20만원이 훌쩍 넘는다. 그렇다고 한벌만 사기에는 배송료가 아깝다. 뭔가 비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것 같고 어차피 며칠 뒤에 또 결제해서 배송료를 두 번 쓰느니 딱 배송료 아낄 정도의 옷만 추가하기로 결정한다.


장바구니에 담긴 옷들은 다 너무 괜찮다. 기본스타일이라 날 시크하게 꾸며줄 것 같고 두고두고 잘 입을 것 같다. 옷장에는 비슷한 옷들이 한가득이지만 전혀 생각도 안 나고 입고 나갈 옷이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조바심이 난다.


이미 시간은 한 시간을 훌쩍 넘어갔고 정신줄도 함께 놓아졌다.


4만원대의 바지한벌은 30만원을 가득 채운 장바구니에 담겼고 아쉬운 맘을 뒤로하고 몇 가지를 삭제한다. 20만원으로 줄이고 보니 뭔가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지만 다 필요한 옷이고 쓸데없이 산건 아니라고 생각하며 결제를 한다.


'내가 나한테 인터넷 쇼핑몰에서 몇만 원짜리 바지, 티 하나 못 사줄 형편은 아니잖아. 백화점이었으면 니트한벌 값도 안되니 진짜 알뜰한 거지. 올겨울만 잘 입어도 남는 장사야.'



바지 한벌만 사야지 했던 인터넷쇼핑은 니트와 저렴한 덕다운 패딩까지 결제하고 끝이 났다. 며칠이 지나 받은 옷 여러 벌 중 진짜 마음에 드는 건 딱 한벌. 나머지는 그럭저럭 맞긴 하지만 상상했던 옷과는 다르다. 정확히 말하면 핏이 제일 다르달까..


반품하면 왕복배송료를 차감해야 하고 번거로우니 맘에는 딱 안 들지만 그럭저럭 입을만하니까 옷걸이에 걸어둔다. 괜히 샀다는 생각이 들지만 애써 모른척해본다. 난 쓸데없는데 돈과 시간을 쓴 사람이고 싶지는 않기에 말이다.


늘 내 쇼핑스타일은 이런 식이다.


외출할 때 입는 옷은 사실 정해져 있다. 웜톤인 얼굴을 환하게 해주는 캐시미어함량이 높은 아이보리색 니트와 하체를 커버해 주는 와이드핏 청바지, 코트 두벌과 추운 날 입는 패딩. 이 옷들을 거의 교복처럼 입고 있었다.



늘 손이 가는 건 정해져 있다. 마치 교복처럼

 단출한 이 옷들을 외에 빽빽하게 옷장과 서랍을 채우고 있는 옷들은 거의 입지 않거나 구매 후 한 두 번 착용이 전부다. 그러니 새 옷에 가깝고 아까운 마음에 좁은 옷장에 터질 듯이 고이 모셔두고 있었다.


나이론과 아크릴사가 90프로 이상인 저렴한 니트와 티셔츠들은 깨끗하긴 하지만 이상하게 손이 가질 않는다. 그 옷들은 물기를 잘 흡수하지 못해서 걸레로 사용하기도 어려웠다. 살 빼서 입을 거라고 모아논 꽉 찡기는 바지들과 살 때는 꽤 비쌌으나 유행이 지나서 차마 입지는 못하는 외투까지 언젠가 입겠다는 희망으로 다 모시고 있었다. 앞으로 이런 소비는 하지 말기로 다짐한다.


사실 옷보다는 늘어난 살들을 정리하면 무엇을 입은들 맘에 들지 않겠는가?


일단 안 입는 옷들은 정리하고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뭔지 알았으니 앞으로 소비에 방향성을 갖도록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싼 옷을 여러 벌 사면서 느끼는 만족감보다는 나를 위한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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