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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구 moon gu Jan 19. 2023

명품가방 팔아서 미국 주식을 샀다

안녕 나의 러기지,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어릴 때부터 가방을 좋아했다. 미취학 시절의 곰돌이 가방부터 어른이 돼서 갖게 된 명품가방까지.

지금도 솔직하게 가방에 대해서는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돈만 많다면 사고 싶은 가방 리스트를 줄줄이 말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한창 혈기 왕성했을 때는 돈을 모아 원하는 가방을 갖는 일에 열을 올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소위말하는 현타가 왔다. 백만 원이 넘는 가방들은 편하게  들지 못하고 가방을 모시고 다니는 모양새였다. 데일리 백으로 모서리가 닳도록 써본 적도 있지만 그 정도로 험하게 사용해 버리면 들고 다니는 일이 거의 없어진다.  그렇게 소중히 모시던 가방들도 몇 해 지나면 유행이 지나고 선뜻 손이 가지 않게 돼버렸다.



가방들을 중고 거래로 팔았고 한동안 잠잠하게 지냈다. 에코백이나 편한 백팩 위주로 들었지만 결혼식이나 중요한 모임을 갈 때는 도저히 에코백으로는 커버할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는 스테디셀러, 로고가 크게 드러나지 않는, 어느 옷에나 자연스럽게 들 수 있는 가방들을 고심해서 들였다.


너무 갖고 싶다! 이것만 가지면 다신 가방을 안 살 것 같아!라고 생각해서 들였던 가방 중 하나가 바로 러기지다.

셀린느의 러기지나노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가방은 검정 색인데 유일한 유색 가방이었고 실물이 너무 귀엽고 예뻐서 1,2년을 마음에 담아뒀다가 갖게 된 가방이다.




코로나가 시작하고 주식이 폭락했다. 끝없이 떨어질 것 같던 주식은 무섭게 오르기 시작했고 내가 아는 주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주식을 하는 걸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선 주식은 금기어였다. 아파트를 사려고 모아뒀던 전재산을 아빠는 작전주 비슷한 거에 몰빵 하셨고 덕분에 그때부터 집안은 무척 힘들어졌다. 지금도 그 당시 부모님의 다투는 소리, 집안 분위기가 떠오르면 기분이 한없이 우울해진다. (아빠가 했던 건 주식투자가 아니라 도박이었다)


처음 산 주식은 잘 알지도 못하는 코로나진단키트 관련주였다.(어디서 주워듣고 샀던 거 같은데 정확히도 기억이 안 난다 ) 사자 마자 상한가를 쳤고 거의 하루종일 주식창을 들여다보았다. 우울하면 주식하라는 얘기에 정말 공감한다. 우울할 틈이 없다!


재미 삼아 아주 소액을 넣은 거라(다 잃어도 상관없는 금액) 더 살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주식창을 들여다보는데 갑자기 막 떨어지기 시작한다 너무 무서워서 급하게 팔았다. 쉽게 털린 개미 1등이 나였고 팔고 나니 다시 무섭게 오르는 주식창. 잃어도 되는 작은 돈이라고 생각하고 투자? 했는데 내겐 진짜 없어도 되는 돈은 없었다.


내 돈은 100원도 너무 소중하다.


그리고 한동안 이것저것 사고팔기를 거듭하며 큰 깨달음을 얻었다. 나 같은 사람은 주식을 하면 안 되는구나. 아무것도 모른 체 돈을 넣고 덜덜 떨며 오르기를 기대하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주식카페에 들어가서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을 손실 봤다는 인증글을 보면서 착실하게 저축을 해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하지만 뭔가 이렇게 그만두기엔 찜찜했다. 주식에 관련된 책을 읽고 유튜브를 시청하고 다시 한번 주식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쉽게 팔기 번거로운 미국주식 중  할머니가 되어도 쓸 거라고 생각한 애플로 결정했다. 내가 잘 알고 실제로 사용하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에 장기투자하기로!


조금씩 떨어질 때마다 한두 주씩 사모았다. 마이너스가 되는 날도 이상하게 마음이 불안하지는 않았다. 주식으로 크게 수익을 얻는 얘기를 들어도 미미한 나의 수익률에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어차피 당장 팔일은 없을 것 같아서.


2년이 지난 요즘 내가 샀던 가격아래로 내려왔고 조금 더 사기 위해 곱게 모셔둔 러기지를 중고마켓에 올렸다. 옷장에서 계속 앉아있느니 예쁘게 들어줄 멋진 언니를 만나길 바라며.




러기지의 최대 단점은 핸들, 손잡이가 짧아서 손목에 걸기가 버거웠다. 손도 그리 크지 않고 손목은 얇은 편인데도 매번 손잡이 가죽이 쓸릴까 봐 신경 쓰였다. 핸들이 조금만 더 길어서 손목에 거는 게 편했다면 어쩌면 아직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 옷장에는 아직 예쁜 가방들이 있다. 이젠 다시 수백만 원짜리 가방을 선뜻 사지 못 할 나를 알기에 저렴하게 팔아버리고 싶지 않다. 다 비워버리면 결국 다시 살게 뻔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가방은 사치재가 아니라 필수재이기 때문이다.)


소중한 가방들을 할머니가 돼서도 예쁘게 쓰고 싶다.

굿바이 러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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