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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구 moon gu Jan 27. 2023

짝퉁가방을 사려고 했다.

네, 전 사봤어요;;


  대학 다닐 때 친한 언니들을 따라서 이태원 골목 안에 운영되는 작은 가게에 갔다. 사장님은 일본어로 된 카탈로그를 꺼내오시고는 여기에 있는 건 다 있다고 골라보라고 했다. 언니 들은 이미 정해놓은 가방과 신발이 있었는지 5분도 되지 않아 사장님은 창고로 물건을 꺼내러 가셨다.


난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백팩이나 크로스백을 매고 다니는 평범한 학생이었고 언니들의 추천을 받아서 산건 프라다 백팩이었다. 실제 정품을 본 적이 없었기에 퀄리티(얼마나 허접했는지)는 알 수 없었고 명품을 잘 아는 언니들이 골라줬으니 그저 샀다.

로고는 모자이크 처리해봤다.ㅎ

한동안 그 가방을 얼마나 잘 들고 다녔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꽤나 정교했던 거 같다. 내부의 로고, 안감등 모두 괜찮았다. 하지만 몇 달 열심히 메고 다녔더니 금세 올이 풀리고 천이 마모되기 시작했다. 물건을 엄청 곱게 쓰는 타입이었는데 그렇게 몇 달 만에 망가질 정도면 그 가방의 품질이 정말 안 좋았나 보다.




두 번째는 지인이 옷가게를 오픈해서 그곳에서 사게 된 짝퉁 지갑이었다. 개업축하 인사로 들린 자리에서 지인은 (가짜) 명품상자를 잔뜩 꺼내왔다.

상자를 하나씩 다 오픈하고 정성스레 꺼내어 보여준다. 괜찮다고 안 보여줘도 된다고 했지만 계속해서 상자를 열었다. 가방의 퀄리티가 얼마나 진짜 같은지 열심히 설명을 하고 테이블에 상자와 종이, 더스트백등 잔뜩 쌓여갔다. 뭐라도 하나 산다고 해야 끝이 날 것 같아서 제일 작은 지갑을 골랐다. (개업선물로 옷을 구매하려고 했는데 짝퉁지갑을 사게 돼서 기분이 이상했다. 옷이었다면 몇 번은 입었을 텐데..)


일주일이 지나고 지퍼가 고장 났고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렸다. 다시는 짝퉁은 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짝퉁가방을 사려고 한 적이 있었다. 돈이 있어도 쉽게 살 수 없다는 H사의 가방이었다. 정품이 갖고 싶어 알아봤는데 이건 알아갈수록 더 멀어지는 기분이다. 워크인으로 매일 출근도장을 찍을 시간도 자신도 없었고 그렇다고 수백만 원이 넘는 돈을 프리미엄으로 지불하고 비싸게 사기도 싫었다. 물론 정말 비싸기도 했고 말이다.

그냥 마음 한구석에 품고 살던 어느 날, 저렴한 가격에 올려져 있는 가방을 보았다.


뭐지?


그 사이트에서는 정품의 1/5 가격으로 짝퉁가방을 판매하고 있었다. (5분의 1이란 이 가격은 다른 명품브랜드의 가방 하나정도의 큰 금액이다)이 가방은 로고도 드러나지 않고 기본 스타일이라 가짜를 든다고 해도 들키지 않고? 편하게 막 들고 다닐 수 있어서 이것도 괜찮겠다 생각했다.


실사 사진을 유심히 본다. 또 본다.

내 인생에 녹아 있는 가방에 대한 애정과 촉을 모두 써서 뚫어져라 본다.


가방의 쉐입, 가죽의 질감, 색상, 스티치의 간격


이 정도면 거의 정품인데..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근데 만약에라도 진짜 이 퀄리티면 똑같은 거 같은데(상식적으로 절대 똑같을 수 없지만 이미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힘든 상태였다.) 결제 직전에 판매자에게 배송일정을 질문하고 잠시 답변을 기다리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사이트와 구매후기를 검색해 본다.

오~다행히도 후기가 있었다.


조악한 품질이었고 사진과는 전혀 다르다. 내부가 엉망이고 마감도 허술하고 지퍼는 불량이었다. 사진과도 전혀 다르고 불량인데도 반품, 환불도 되지 않아 마음고생한 내용이었다.

그분도 그런 글을 올리면서 (그러게 누가 짝퉁사랬냐, 자업자득이다, 인간이 명품이 되어라, 한심하다, 된장녀 등) 악플을 각오하셨단다. 하지만 분명 자기처럼 이 사이트에서 속아 돈도 버리고 속상할 제2의 자신을 위해 글을 포스팅하셨다고 한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그분께 감사했다.


제정신이 돌아오고 조용히 노트북을 닫았다.


몇 시간 동안 짝퉁가방을 사려고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했다. 그리고 이런 내 모습을 지금 이 순간 나만 알고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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