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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구 moon gu Feb 10. 2023

그냥 다 내다 버리고 싶다.

언젠가는!

7년 전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 왔을 때 전에 살던 집에서 쓰던 물건을 거의 다 버리고 왔었다.

이삿짐 사장님은 이렇게 옷이 없는 집 처음 봤다고, 부부가 뭘 입고 사냐는 질문까지 하셨었다.

이사 와서 3년 정도까지는 금방 이사 들어온 집이냐는 질문도 종종 받았다.


아이 친구 엄마들이 놀러 와서 집이 정말 깨끗하다고 얘기해 주는 말에 왠지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다.

사실 난 정리정돈도 어렵고 물건을 제자리에 두는 걸 힘들어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보기엔 깨끗해 보였지만 수납장과 서랍장을 열면 물건들이 뒤죽박죽 막 쌓여 있었다. 우르르 무너질까 봐 걱정돼서 쉽사리 뭘 꺼낼 수 조차 없었다.

보이는 곳이라도 깨끗한 게 어디냐 생각하며 지냈다. 수납장은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쩌다 맘먹고 짐을 다 끄집어내고 정리하고 버리는 일도 반복했지만 물건의 90%는 결국에 다시 제자리로 들어갔다.

수북한 짐은 수납장이나 서랍에 들어가지 못하면 결국 거실이나 방으로 나와서 어딘가에 쌓였다. 아무리 청소를 하고 치워도 딱 그때뿐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나 베란다에 있는 5단 원목 책장은 블랙홀이다. 책과 이것저것 잡다한 용품들이 테트리스 블록처럼 채워져 있다. 손댈 엄두가 안 난다. 저기 있는 책들은 비록 사서 두 번은 안 읽었지만 꼭 필요한 것들이고 미술용품도 곧 다시 사용할 거니까 버릴 게 하나도 없다.

하지만 책장을 쳐다보면 숨이 막힌다. 저 책장만 없어도 넓어 보일 텐데.. 맘속에선 저 책장을 쏙 들어서 내 다 버리고 싶다.


집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마다 100리터 쓰레기 봉지를 하나씩 채워서 버렸다. 하지만 늘 물건은 비우는 속도보다 몇 배나 빠르게 늘고 있었다.


미니멀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 뒤 중고거래로 물건을 비우고 정리를 조금씩 해나가고 있지만 중고거래를 하는 일은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게 한다. 물건을 사는 건 쉽고 즐거운 일이지만 처분하는 건 힘들다. 며칠 동안 중고거래를 하며 사진을 찍고 글을 올리고 약속을 잡는 일을 반복해 보니 너무 힘들다. 첨부터 사질 말 것을!



힐링이 필요하면 미니멀라이프로 검색을 한다. 깨끗하고 정갈한 공간들의 포스팅을 읽어 내려간다. 꼭 필요한 물건들이 자기 자리에 놓여있는 사진은 마치 예술작품처럼 아름답게 느껴진다. 나도 언젠가 이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대리만족을 하고 우리 집인 거처럼 상상을 해본다.


어제 싹 치운 거실이 다시 폭탄 맞은 거 마냥 지저분해 보이는 우리 집이다.

내 언젠가 이 모든 것들을 싹 치우리라! 마음 먹지만 그 과정은 오래 걸리더라도 천천히 하려고 한다.

그냥 다 내다 버리면 가장 빠르고 쉬울 것 같지만 일단은 더 사지 말고 있는 물건들을 치우리라 다짐해 본다. 수고스러움과 죄책감을 온전히 느끼며 정리하지 않으면 결국 쉽게 다시 채워질 것이 뻔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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